영화 <관상>은 역사적 사건에 관상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결합 된 작품.

영화 <관상>은 역사적 사건에 관상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결합 된 작품. ⓒ 쇼박스


역사는 그리 달콤하지 않다. 흔히 지키려는 욕망과 바꾸자 하는 욕망이 부딪혀 어느 한쪽의 처절한 패배로 끝나기 마련이다. 물론 이긴 쪽의 영광도 그리 오래가진 않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다시 모든 것을 안고 싶은 욕심은 종종 결국 골육상잔의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말이다.

현재의 대한민국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조선의 역사도 그 원칙에서 비켜가진 못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태조 이성계의 꿈은 성공했지만, 아들 방원의 피를 부르는 야망을 꺾진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광화문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굽어보는 조선 최고의 군주 세종대왕은 그런 방원의 아들이다.

역사는 다시 알 수 없다. 세종대왕은 보지 못 하고 눈을 감았지만, 아들 수양대군은 조카와 여러 고명대신을 피로 덮고 왕위에 올랐다. 역사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세종이었지만, 닥쳐올 왕실의 비극을 막지는 못한 것이다.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년에 일어난 왕실 쿠데타. 아직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문학과 드라마의 단골소재가 되는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단순히 역사를 재해석한 것이 아니라 관상이 주요 모티프가 됐다.

관상으로 개인의 미래와 역사를 꿰뚫는 남자

 송강호는 관상으로 미래를 점치는 내격 역을 맡았다.

송강호는 관상으로 미래를 점치는 내격 역을 맡았다. ⓒ 쇼박스


관상이 우리나라에 전해들어온 것은 신라시대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상술로 불리기도 하다가 조선시대 이후 많은 이들의 연구와 구전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인간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들었다'고 믿는 관상쟁이 내경(송강호 분)은 처남·아들과 함께 깊은 산 속에서 은거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이 알려지며 한양에서 눈치로 관상을 보는 기생 연홍(김혜수 분)이 동업을 제의한다.

역모 누명을 쓴 집안이었기에 아들의 벼슬길을 극구 말리던 내경은 돈으로 집안을 일으켜보고 싶은 생각에 응한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살인현장. 칠순까지 장수할 여인이 상극의 관상을 가진 남편에게 살해 된 것을 짚어내자,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좌의정 김종서 대감까지 만나게 된다.

그가 만난 김종서(백윤식 분)는 범의 상을 가진 남자였다. 내경은 김종서를 통해 당시 임금인 문종까지 만나게 된다. 임금의 청은 간단하다. 병약한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임종 후 역모를 계획할 만한 이들을 짚어달라는 것. 특히 수양대군(이정재 분)을 잘 살필 것을 주문한다. 물론 이를 어느 정도 짐작한 수양 쪽도 대비를 한다. 역사의 물결이 크게 일렁이고 등장인물들의 모략과 갈등이 시작된다.

역사에 끼어든 관상, 흥미로운 상상력과 어울리다

 수양대군으로 분한 이정재의 연기가 돋보인 작품이다.

수양대군으로 분한 이정재의 연기가 돋보인 작품이다. ⓒ 쇼박스


송상호가 연기한 관상가 내경은 단순히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요동치는 역사의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 고민하며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던가를 보여준다. 왕이 아니었지만, 결국 조카를 제치고 군주의 자리에 오른 수양대군의 모습도 잔인하지만 실감나게 그려졌다. 특히 선 거친 연기를 보여준 이정재의 변신이 눈에 띈다. 흔히 통치자의 인상은 맹수와 비교되곤 하는데, 이정재가 그 역할을 딱 떨어지게 소화했다.

<관상>은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대상작이다. 당시 '꼼꼼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세조의 왕위찬탈이라는 묵직한 역사 드라마 위에 개인의 삶을 촘촘히 직조해 나간 창의성이 돋보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송강호는 물론 기생 연홍으로 분했던 김혜수 역시 시나리오 자체에 빠져 출연을 결심했다고 할 만큼 배우들로부터도 격찬을 받았다고 한다. 예상치 못했던 소재를 싸늘하고 냉정한 역사에 버무린 감각이 탁월하다.

영화는 한편 화려한 볼거리의 향연이기도 하다. 시대를 고증한 의상은 물론 근정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세트 역시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백윤식,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조정석, 이종석 등 신구가 조합된 캐스팅도 화려하다. 누구 하나 크게 빠질 것 없는 연기력으로 영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조정석의 경우, 송강호와 함께 극의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다소 길게 느껴진 러닝타임, 이야기의 압축성은 아쉬워

 영화를 보고 나면 통치자들의 얼굴을 떠 올리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통치자들의 얼굴을 떠 올리게 된다. ⓒ 청와대


다만 2시간 20여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은 관객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여지가 있다. 계유정난에 집중하기보다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함께 끌고 나가다보니 후반부에 이르러 다소 이야기가 늘어지는 느낌도 있다. 

애초 시나리오는 계유정난에 보다 무게가 맞춰져 무겁고 남성적이었다고 한다. 이에 한재림 감독이 밝은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극중 인물을 추가했다고 한다.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 될 것 같다. 

역사 속 쿠데타가 대개 그러하듯 성공한 역모의 계획은 빈틈없고 결과는 잔혹하다. 김종서·황보인·정분 등 삼재상은 물론 친동생인 안평대군까지 죽음으로 내몬 참혹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해진 사실을 관상이라는 특이한 소재로 바라본 상상력은 한국영화의 힘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나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를 통치했던 정치가들의 얼굴도 떠올리게 된다. 영화와 다른 것은 현실에선 국민의 힘으로 직접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책이 우선되어야겠지만, 얼굴부터 떠올리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게 곧 민중이 바라보는 관상일 것이다.

관상 송강호 백윤식 이정재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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