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를 쓰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들을 가능한 한 엷게 그리고 늦게 노출하고 싶은 것은 창작자들의 마음가짐일 터이다. 바로 이러한 욕망에 도움을 주는 것이 소위 떡밥 던지기, 씨뿌리기일 터인데 그런 의미에서 영화 <설국열차>는 정말 잘 영근 씨들을 영화 초반에 잘 숨겨 놓았다. 내가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이토록 흥분하는 것은 씨들을 따라 움직인 끝에 진실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설이 좀 길었다. <설국열차>에서 심어 놓은 씨들을 건져 올리는 작업부터 시작하련다.
설국열차는 기상이변으로 살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마지막 방법으로 선택한 기차이다. 한정된 식량, 한정된 공간이기에 앞쪽칸과 꼬리칸으로 나눠지는 부익부 빈익빈이 최절정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꼬리칸 사람들

꼬리칸 사람들 ⓒ CJ엔터테인먼트


바로 이런 이유로 아이들은 쉽게 희생자가 되어버린다. 감독은 아이들을 비극을 드러내는 주요한 등장인물로 설정하면서 여기저기 씨뿌리기를 꼼꼼히 해나간다. 꼬리칸 사람들의 주식량인 단백질 블록을 뺏고 뺐기는 실랑이를 통해 감독은 흑인 아이를 노출시킨다. 바로 이 아이가 후반부에 나타날 비극을 여실히 보여줄 상징이다.

실랑이를 통해 앞쪽칸 어딘가에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알려주는 알 수 없는 존재까지도 보여준다. 이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앞쪽칸 소위 아이를 좋아한다는 기차 엔진의 핵심인물이자 권력자인 윌포드에게 끌려간다. 아이는 그곳에서 윌도프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뒤로 하고 영화는 굉장한 빠른 속도로 사건들이 계속 이어진다.

이런 까닭에 극 후반에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발견한 관객은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그 진실은 잠시 흔들린 커티스의 마음을 다잡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데…. 감독은 가볍게 아이의 등장을 터치하면서도 뒤에 있을 반전에 믿음을 줄 만한 요소들로 중간 중간 채워놓는다.

두 번째로 꼬리칸에서는 직사각형 모양의 단백질 블록이 주식량이다.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감사한 식량이지만 이후 앞쪽 칸의 주방에서 보게 되는 참혹한 진실은 구역질이 난다. 상상도 못할 만한 일들이 그 휘황찬란한 주방에서 일어나고 있을 줄이야. 감독은 야속하게도 그 진실을 현미경을 들이밀듯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덕분에 얻는 건 인생의 구역질적인 면을 느끼게 되는 것.

꼬리칸 주식량 단백질 블록 꼬리칸 주식량 단백질 블록

▲ 꼬리칸 주식량 단백질 블록 꼬리칸 주식량 단백질 블록 ⓒ CJ엔터테인먼트


"균형"이라, 그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앞쪽칸 사람들은 그토록 사람들을 죽여대는가. 그들의 논리를 따르자면 사람들의 숫자들을 일정하게 맞추어야 한다는 것. 순간 사람은 인간이 아닌 그저 숫자를 맞춰야 할 사물로 전락된다. 이 기막힌 성비맞춤놀이를 위해 앞쪽칸 군인들은 꼬리칸의 반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이것은 꼬리칸 지도자 길리엄과 앞쪽칸 절대권력 윌포드의 공작이었다는 것이다.

감독은 실제로 반란을 어떤 식으로 진압시키는지 보여주는데 그것은 긴 터널을 지나는 타이밍을 잘 잡아 어두울 때 앞이 안 보이는 꼬리칸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여대는 것. 다행히 꼬리칸의 차기 지도자 커티스는 남궁민수에게 받은 성냥을 기억해내어 횃불로 이 위기를 모면한다.

 절대권력 윌포드

절대권력 윌포드 ⓒ CJ엔터테인먼트


가장 통쾌했던 것은 남궁민수(송강호)와 그 딸(고아성)의 활약이다. 초중반은 고개를 돌리고 싶을 만큼 더러운 인생의 조각들이었다면 후반부 그들의 등장은 다소 해학적이고 희망적이며 그로테스크한 면을 보여준다.

특히 희망을 발견한 남궁민수의 믿음은 크로놀을 모으는 것으로 이어지고 때론 마약으로 취급되는 그것을 통해 마약장이로 희화화되는 남궁민수와 딸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초중반의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를 참지 못해 뛰쳐나오는 관객들도 있었기에 후반의 그들은 관객들에게 위안을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겠다. 크로놀을 뭉쳐 폭탄을 제조한 남궁민수 덕분에 동양인 여자아이 요나와 흑인 아이는 새 삶을 얻게 되었다.

 남궁민수(송강호)와 그의 딸

남궁민수(송강호)와 그의 딸 ⓒ CJ엔터테인먼트


개인적으로 학교로 상징되는 칸을 통과할 때 본 인간 군상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런 식의 묘사를 가장 좋아하기도 하다. 바로 신으로 추앙받는 윌포드에 대한 무한 존경이 이토록 우스꽝스럽게 보여질 수 있었던 것은 임신한 여교사의 미칠 것 같은 연기력 덕분이다.

조울증 환자를 눈앞에서 보는 듯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잘 보여준 인물을 내세운 만큼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한껏 고조된 상태에서 총을 집어 들어 꼬리칸의 반란(?)자를 겨누는 모습은 정말이지 그로테스크하다. 광기어리기조차 한 이 장면은 웃기도 울기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감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도 몇 번이나 느끼곤 한 익숙한 감정이라는 것. 구토와 함께 말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SNS에도 올려놓았습니다.
설국열차 봉준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