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여신 정이' 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의 한 장면. 아역들의 활약은 이 드라마의 성공적 출발을 알렸다.

▲ '불의 여신 정이' 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의 한 장면. 아역들의 활약은 이 드라마의 성공적 출발을 알렸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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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도자기 역사는 그동안 다큐멘터리 등에서 많이 다루어왔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소재였다. 그러나 이제 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에서 바로 그 도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사기장이라는 생소한 직업, 게다가 최초의 여성 사기장에 관한 드라마라니 뭔가 색다른 것이 나올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 뭔가 가볍다. 인물들의 행동이며 말투,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입지전적 인물을 다뤘던 여태의 사극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드는데, 강하게 몰입을 이끄는 전개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도 가졌다. 도대체 어떤 점들이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일까. 

아역들의 활약 돋보이지만, 허술한 전개는 아쉬워

드라마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로 아역을 이용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방법도 없을 것이다. MBC <해를 품은 달>처럼 아역들의 이미지가 드라마 전반을 지배했던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그것은 인물들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거나 사건들에 개연성과 입체감을 부여하는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효율적인만큼 너무나 흔한 장치가 되고 보니, 웬만큼 신선한 조합이 아니고서는 화제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불의 여신 정이>에서 아역들의 활약은 드라마의 성공적 출발을 돕는 훌륭한 것이었다. 아직도 입을 열면 "이 빵꾸똥꾸야!"라고 소리칠 것 같은 유정 역의 진지희, 그리고 성인 광해 역의 이상윤과 매우 흡사한 외모를 지닌 노영학, 두 사람의 호흡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은 첫 회에서 산속 동물을 잡기위해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부터 깨진 도자기를 복원하는 과정까지, 아역들에게선 발견하기 힘든 의외의 긴장감과 재미를 보여 주었다.

특히 유정이 아버지 유을담(이종원 분)을 살리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릇을 만든 과정과 이유를 털어놓으며 오열하는 장면, 그를 바라보며 자책과 연모의 정을 동시에 드러내던 광해의 모습 등은 극에 깊이를 더함과 동시에 진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아역들의 훌륭한 연기에 비해, 아직까지 도자기에 대해 눈여겨 볼만한 장면들은 많지 않았다. 극 중 궐내에서 소중히 다룬다는 도자기 등의 각종 소품들이 엉성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등은 무엇보다 아쉬운 일이었다. 엄청나게 귀중한 것이니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 다루라고 말하면서도, 누가 봐도 허술하기 짝이 없던 보안상황 등은 실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와 함께 장면 전환이 고르게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나 인물들의 진지하지 못한 말투, 행동 등도 드라마를 가볍게 보이게 하는 큰 이유가 되고 있다. <불의 여신 정이>를 일종의 퓨전사극이라 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그러한 것들이 극의 농도를 떨어뜨리고 일정부분 몰입을 해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다.

신중함과 경쾌함의 경계 잘 지켜나가길

'불의 여신 정이' 인물들이나 상황 등의 가벼움은 드라마의 장점과 동시에 단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점이 쉬운 사극으로 다가서기 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불의 여신 정이' 인물들이나 상황 등의 가벼움은 드라마의 장점과 동시에 단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점이 쉬운 사극으로 다가서기 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MBC


그러나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볍다는 점은 애써 마음 졸이며 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분위기 뿐 아니라, 전체적인 인물들의 설정도 무겁지 않다.

악역이랄 수 있는 이강천(전광렬 분)과 그의 아들 이육도(박건형 분)의 관계는 독특하게 그려지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아버지에 비해, 노력형 천재인 이육도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고뇌하는 입체적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그 외의 악역들 또한 그리 잔악무도한 모습은 아니다.

주인공 유정은 할 말은 반드시 하고야 마는 성격으로 그려져 시원함을 주고 있으며, 광해와 그의 형 임해(이광수 분)를 비롯, 여타의 인물들의 성격 또한 크게 자극적이지 않다. 입지전적 인물을 그려내는 작품에는 주인공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무겁게 그려지거나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경우, 시청자들에게 답답함을 안겨주어 결국 외면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드라마의 전체적인 가벼운 설정들이 자칫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역사적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한 점들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불의 여신 정이>가 가진 경쾌함은 부담 없고 쉬운 사극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서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아역들의 활약은 <불의 여신 정이>의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지만, 이제 그 분위기가 성인 연기자들에게 순조롭게 이어져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 특정 시대, 특정 직업의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으니 소재를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른바 전문직을 다룬 사극들이 여럿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전문성을 얼마나 잘 그려내느냐가 드라마의 흥망을 갈랐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이런저런 아쉬움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현재 도자기에 대해 별다른 애정이 없는 유정, 그는 과연 어떤 일들을 겪었기에 사기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생소한 직업의 흥미로운 인물, 가마에서 태어나 '가마신'의 기운을 받았으며 오감을 오로지 도자기를 만드는 데 썼다는 '불의 여신' 정이의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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