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베를린>에서 베일에 싸인 통역관 연정희 역의 배우 전지현이 29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안혁모 원장님의 제자인 배우 전지현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 연기를 배운다는 것은 전지현이나 송중기를 꿈꾸는 연기 지망생에게만 해당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이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조인성·장혁·전지현 등 톱스타들의 연기 선생님인 안혁모 원장님(관련 기사:조인성·장혁도 이 사람 앞에선 '제자'가 됩니다)은 현재 연예기획사 싸이더스(sidus) HQ에서 연기자를 책임 지도하고, 'C.A.S.T. by iHQ' 연기아카데미 원장을 맡아 연기 지망생을 연기자로 키워내고 있습니다.  

이분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연기는 배우를 꿈꾸는 이들만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 앞에서 자신을 마음껏 표현해본 적이 있던가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딱딱한 조직 문화 속에서 눈치 보며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펼쳐 본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요즘에야 유치원 때부터 토론 수업을 받으며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표현한다지만 4, 50대는 물론 30대만 해도 "어디 두 눈 똑바로 쳐다보고" "네 할 말 다 하냐"며 타박을 받는 유교적인 예의범절의 틀 안에서 자신을 억압해야 하는 구조에 맞춰야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갈등은 그런 구조와 관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죠. 급기야 그런 갈등이 내적으로 쌓이다가 폭발하고 종국에는 상사의 책상 위에 조용히 사직서를 올려 두고 홀연히 제주도로 떠나거나, 부모님의 곁을 떠나서 자취생의 길로 접어듭니다. 겉은 어른이지만, 속은 아직도 어린 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 문제들을 요즘에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현대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신경정신과를 매주 찾아가서 상담을 받으면 바로 해결이 되는 일일까요. 신경정신과까지 찾아가기에는 마음의 부담이 많이 크고, 그렇다고 수십 년 동안 쌓아 왔던 자신만의 틀을 확 허물기도 쉽지 않습니다.  

 안혁모 원장님

ⓒ 조경이


안혁모 원장님은 연기를 배워서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 갈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일단 연기를 배우는 것의 기본은 '목적의식'입니다. 그러니까 관계와 상황 속에서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 "뭘 원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목적이 뭐야"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육체노동 외에 감정노동도 해야 합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밝게 웃어야 하죠. 어느 정도 규격화된 조직 안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튀면 안 되는 것을 강요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객센터의 직원들은 그런 고충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안혁모 원장님은 고객과 나(직원)와의 '목적의식'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나(직원)의 존재 이유는 바로 고객의 불편함을 들어주고 해소하도록 연결하는 것입니다. 고객의 목적은 불편을 모두 쏟아내는 것이고요. 자식이 아무리 투정을 부려도 엄마가 아이를 달래듯, 나(직원)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고객에게 '엄마와 같은 케어'를 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관계 가운데 상대의 목적과 나의 목적이 분명히 섰다면 곁가지들은 정리가 훨씬 쉬워집니다. 안혁모 원장님은 "목적의식이 깊이 뿌린 내린 사람은 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그러면 그 관계 속에서 상처를 덜 받게 된다"면서 "상처로 인한 회복도 훨씬 더 빨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안혁모 원장님 '현대인들을 위한 힐링 액팅'

ⓒ 조경이


목적의식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표현'입니다. '목적의식'은 분명히 있는데, 그걸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마음이 있는데 무뚝뚝한 한국의 아버지처럼 말이죠.

"과거 아이들이 태어나면 부모님들은 '에비~ 안 돼~ 지지' 등 표현을 제한하고 안 되는 것부터 가르쳐요. 그러면서 해도 되는 것은 칭찬을 많이 하지 않고 그냥 뒀습니다. 계속 제재를 가하되 칭찬에 인색한 것이죠.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님의 습성에 익숙해져서, 설사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관계와 구조들을 계산하면서 주저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속 시원하게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또 불평과 불만, 칭찬 등을 속으로 삼키면서 점점 말수가 줄어들기도 합니다. 이런 표현의 문제 또한 연기를 통해서 연습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상세히 들어가면 '눈 마주치기'가 있습니다. 상대의 눈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셨어요? 사람은 눈으로 먼저 상대를 바라보면서 교감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조차 눈은 스마트폰을 향해 있으니까요.  

안혁모 원장님은 눈을 제대로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2인 1조로 3분 동안 서로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말없이 눈을 보게 했습니다. 

"3분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라고 하면 처음에는 피식 웃고 난리가 납니다. 하지만 1, 2분이 지나고 안정감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인 눈의 교감, 마음의 교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표현의 노하우 두 번째는 '칭찬하기'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티끌을 보는 사람들은 많지만, 장점을 보고 칭찬하는 사람들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눈을 바라본 후에 상대를 칭찬하세요. 목소리가 좋다든지, 머릿결이 좋다든지, 피부가 좋다든지. 칭찬할 거리를 계속 찾습니다. 처음에는 '칭찬할 게 없는데...' 하는 마음이 들겠지만 계속 찾다 보면 저절로 칭찬이 나와요. 칭찬은 마음의 거리를 훨씬 좁혀줍니다."

표현의 세 번째 방법은 서로 역할을 바꿔 연기해보는 것입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직장 상사와 성과를 내지 못해 구박을 받는 직원. 그 두 관계가 있다면 입장을 바꿔서 연기해보는 것입니다. 서로의 고충을 직접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죠.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좀 더 깊이 있고 유연한 관계로 변할 수 있습니다. 

 안혁모

ⓒ C.A.S.T. by iHQ


자. 그럼 이제 요약해볼까요? 그러니까 연기를 배우기 전, 가장 먼저 '목적의식'을 파악해야 합니다. 목적의식이 바로 섰을 때 '표현'의 단계로 넘어가는데,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칭찬하고 역할을 바꿔보면서 자연스러운 표현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럼 실전에 적용해봐야겠죠? 다음 편에서는 거만한 연예인과 그를 인터뷰해야 하는 기자의 관계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풀어 보고, 연기 연습을 통해서 해결책을 찾아보겠습니다.

안혁모 힐링 액팅 전지현 송중기 싸이더스 연기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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