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나 아렌트> 포스터.

영화 <한나 아렌트> 포스터. ⓒ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 영화는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잘 보여준다. 나치즘에 쫓겨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유태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 그녀의 말, 철학적 언어들이 더 큰 오해와 논쟁의 화약고로 그녀를 가혹하게 집어 던질 때, 이미지와 사운드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언어의 쟁투를 어떻게 명료하게 찾아가고 밝히고 옹호할 수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가 '말'을 조명할 수 있는가?
잘 알려진 대로 영화는 라디오가 아니다. '말'만 하는 미디어가 아니다. 페미니즘 영화의 선구자인 독일의 마가레테 폰 트로타는 <한나 아렌트(2012)>를 통해 '말' 영화, 특히 여성의 '언어'를 보여준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삶은 서사이다>라는 책에서 "언어, 자아, 신체, 정치적 공간과 삶"을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이해하는 주요 개념으로 설정한다. 크리스테바는 "아렌트가 철학을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또한, 정치이론가 세일라 벤하비브는 <어두운 시대의 정치: 한나 아렌트와의 조우>라는 편저에서 9·11 사태 이후의 당대와 호흡할 수 있는 아렌트의 주요 사유의 목록을 "도덕적, 정치적 평등성, 행위, 탄생성, 판단, 자유, 주권, 국제법, 인종 학살" 등으로 논거를 두고 있다. 

아렌트의 사유와 언어를 둘러싼 여성 철학자, 정치학자들의 반가운 향연과 더불어 영화감독 마가레테 폰 트로타는 <로자 룩셈베르크>, 독일의 대 수녀 원장인 힐데가르트를 다룬 <위대한 계시·2011>에 이어 <한나 아렌트>를 만들게 된다. 3부작에 이르는 셈이다. 이 3부작의 각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는 바바라 수코아다. 배우로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영화 <한나 아렌트> 한 장면.

영화 <한나 아렌트> 한 장면. ⓒ <한나 아렌트>


영화는 1960년에서 64년까지 아렌트가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예루살렘에 가서 지켜보고, 뉴요커에 관련 보고서를-이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1963, 1965)>라는 제목으로 출간-게재한 이후 쏟아지던 비판과 분노, 아우성, 협박의 장면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전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8> 등의 저서를 출판했고,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 재판 과정에서 보여주는 양태를 들어 그 유명한 "the banality of evil(악의 진부함, 평범함)"이라는 생각을 제출한다. 무사유가 악의 다른 이름이며, 악의 진부함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고 전체주의의 명령, 법을 따르는 것. 따르면서 가속화 시키는 것. 그것이 아이히만적 악의 평범함이다.

아렌트는 또한 유태인 지도자들이 협력하지 않았다면 대량 학살된 유태인의 숫자는 축소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낸다. 여기에 유태인들은 반론, 격론을 제기한다. 아렌트가 뉴 스쿨의 학생들에게 강연하는 시퀀스, 서재에서의 독서, 글쓰기 등 영화는 철학자, 정치 사상가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을 충실히 보여준다. 사상, 언어의 장면들이다.

 영화 <한나 아렌트> 한 장면.

영화 <한나 아렌트> 한 장면. ⓒ <한나 아렌트>


반면, 아렌트의 사랑과 우정, 끽연의 장면들도 활달하게 제시한다. 실천적인 삶(vita activa!)의 논쟁적인 메리 메카시와의 우정, 예루살렘의 친구(아렌트와 거숌 숄렘과의 서신교환에서 가장 분명히 조명된다),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와의 신뢰 등. 여성은 일반적으로 감정적이고 히스테릭하다는 혐의를 받는 반면 <한나 아렌트>에서 그녀는 조국, 민족의 아픔에 냉정한 보편주의자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 부분이 흥미롭다. 감정과 이성의 양 극단에 있는 증오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자리. 그러나 폰 트로타는 이 극단의 질타로부터 아렌트를 지켜낸다.

그녀의 말, 언어, 연설, 강연, 강의를 그 어떤 시각적 장치, 미장센느, 미장아빔, 내러티브 보다 그 우위에 놓고 존중한다. 또, 그녀의 말에 대해 수사학적 의미가 아니라 여성의 언어, 그것도 대중을 앞에 두고 발화하는 그 언어를 전면화하는 것이다.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진저와 로사>·<탐욕의 제국> 등 다양

<한나 아렌트>는 메가박스 신촌에서 5월 24일부터 5월 30일까지 열리고 있는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다.

영화제 개막작으로는 영국 여성 감독 샐리 포터의 <진저와 로사>가 선정돼 보여졌다. 60년대 초반 냉전시기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사상적으로나 성적으로 자유로운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진저 (엘르 패닝)의 성장담이다. 같은 날 태어난 소울메이트 로사 (앨리스 엔글레르트)가 자신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지고, 세상은 핵 위협에 무방비 상태다. 진보적 부모 세대를 다음 세대의 시선으로 불안하게 질의하는 영화다.

삼성을 다룬 <탐욕의 제국>부터 남성 감독들도 참여하는 오픈 시네마의 <마이 플레이스>, 홍재희 감독의 <아버지의 e-mai>까지 모두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들이다.    

덧붙이는 글 김소영님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입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다. 19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민교협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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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다. 19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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