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를 위해 굴착기에 올라가는 이들. 윙윙거리는 전기톱에도 아랑곳 않는 사람들. 서울의 대표 마을공동체, 성미산 마을의 성미산 지킴이 활동이 다큐로 나온다. '별종 마을'의 유쾌한 분투를 그린 다큐, <춤추는 숲>이 지난 23일 개봉했다. <오마이뉴스>는 송호창 무소속 의원,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 김우형 <고지전> 촬영 감독의 리뷰를 싣는다. [편집자말]
마을에서 마주친 강석필 감독은 늘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촬영하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었기에 그가 마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웃이듯, 그의 카메라는 마을 사람들에게 너무 당연한 그의 일부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그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의 촬영에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와 같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키웠고 가까운 곳에 살며 비슷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그의 작업에 거의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관계자가 아닌 객관적인 한 명의 관객으로 <춤추는 숲>을 관람할 수 있었다.    
 다큐 <춤추는 숲>은 서울 마포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눈물 겨운 성미산 지킴이 활동을 그렸다.

다큐 <춤추는 숲>은 서울 마포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눈물 겨운 성미산 지킴이 활동을 그렸다. ⓒ 스튜디오 느림보


극영화건 다큐멘터리건 간에 결국 핵심은 사람 사는 이야기, 즉 스토리다. 우리는 있을 법한 이야기에 수긍하고, 그럴듯한 인물에 감정이입해 영화를 감상하다가 불현듯 찾아오는 그 어떤 결말에 감동하곤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부실한 극영화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일 뿐이며, 이야기 없는 다큐멘터리란 존재할 수조차 없다.

다큐지만 극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강석필 감독은 <춤추는 숲>을 통해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마치 극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자주 빠져들었다. 그 착각은 시각적으로 별로 기대할 것이 없었던, 우리 사회문제를 다룬 기존 다큐멘터리들에 대한 나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무거운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화면에서 정보전달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던 탓에, <춤추는 숲>의 만듦새는 가히 놀라웠다.

자전거 타는 아이들을 뒤쫓는 쇼트로 시작되는 <춤추는 숲>의 오프닝은 특히 훌륭하다. 마을의 골목길을 헤엄치듯 유영하는 카메라의 움직임 때문만이 아니다. 마주치는 카메라를 향해 아무런 주저함이나 거리낌 없이 인사하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반응이 놀라울 따름이다. 연출된 극영화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인물들과 동시에 소통하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오프닝은 촬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메라를 든 사람과 대상과의 소통이라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숙련된 카메라 오퍼레이터는 강 감독을 대신해 좀 더 부드럽게 움직이는 화면을 구현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단언컨대 외부의 그 어떤 촬영자도 마을 주민들로부터 그토록 자연스러운 일상의 리액션을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이렇게 성공적으로 구현된 경쾌함을 맛본 적이 과연 언제였던가? 그건 시나리오들이 현실을 담아내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극영화의 카메라와 조명, 그립 장비들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극영화 연출자들의 부족한 실력 탓일까?

<춤추는 숲> 곳곳에 사용된 아름답고 정교한 인서트들, 정확한 포인트에 제대로 삽입되어 기능하는 적절한 사이즈의 풀 쇼트들, 주민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 맞춰 시공간을 교차시키는 편집, 불안한 듯 흥겨운 전자음악 시퀀스에서 전기톱에 쓰러진 마을 주민으로의 전환 등, 강 감독의 내공이 드러나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영화 중반, 승혁이와의 야외 인터뷰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먼저 멀리서 망원 롱쇼트로 나무와 아이가 보이고, 카메라가 다가가며 질문을 건네는 쇼트가 이어지고, 다음은 앉아서 이야기하는 아이의 풀 쇼트, 아이의 손과 개미들이 보이는 클로즈업까지, 실로 놀랍도록 정교하고 물 흐르는 듯 한 쇼트 구성이다. 사실 '생명에는 주인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 이외에 그 어떤 쇼트가 더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기교를 위한 기교가 아닌 강석필의 카메라는 잘 구조화된 커트 분할로 다시 한 번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장면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 놓았다.

엘리스, 시원, 호호가 아이들과 노래를 연습하는 셀프카메라 장면들은 좀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어느 영화에서건 방 안에 혼자 앉아있는 인물이 나오는 장면들을 많이 접한다. 그렇지만 그때의 카메라 시선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카메라에 찍힌 인물의 행동을 3인칭 소설의 전지적 묘사처럼 받아들이게 훈련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울로 카메라의 존재를 드러내며 이야기하는 엘리스나 카메라를 향해 말하는 시원이의 장면은 다른 장면들과 달리 이질적으로 튀어 보일 위험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확인했듯이 그것도 여기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유는 바로 엘리스와 시원이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있다 할 것이다. 강 감독의 카메라 앞에서 보여 왔던 '연기'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 자연스러움 때문에, 우리는 그 장면이 셀프카메라 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은밀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어깨 위의 고양이'로 마을을 담아낸 강석필 감독의 역작

 마을 사람들이 포클레인에 올라타 성미산 파괴를 막아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굴착기에 올라타 성미산 파괴를 막아내고 있다. ⓒ 스튜디오 느림보



 서울 마포구에서 유일한 친환경 생태공원 성미산은 인근의 아이들에게 생태체험학습장이었다. 한 교육재단이 성미산에 학교를 이전하면서 산 일부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유일한 친환경 생태공원 성미산은 인근의 아이들에게 생태체험학습장이었다. 한 교육재단이 성미산에 학교를 이전하면서 산 일부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 스튜디오 느림보


강 감독은 자연스러운 화면 내용의 확보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어떤 형태의 카메라 워크에 담아낼지 오래 고민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여러 가지 우려와 고민이 있었겠지만 그는 결국 훌륭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해냈다. 그런 극영화의 감독스러운 고민과 실천이 오로지 그만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독특한 다큐멘터리를 완성시킨 것이다.

한 마을의 주민들을 오랜 시간 동안 밀착해서 촬영해 나가다보면, 언젠가는 예상할 수 없었던 크고 작은 사건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조금 더 촬영해 그 주민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피고 내친 김에 좀 더 나아가 운 좋게 갈등의 해결까지 촬영하게 된다면, 그렇게 오래 한 곳에 카메라를 지속적으로 들이대고 기다릴 수만 있다면, 누구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붓을 쥐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 없듯이 영화는 기다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요인들 중 가장 근원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또 무엇이 강석필 감독의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

1947년 프랑스, 영화 촬영용 카메라를 만들던 '에클레어'라는 회사는 작고 가벼워서 어깨에 메고 찍을 수 있는 영화용 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이 작고 가벼운 카메라는 촬영하는 사람의 어깨에 착 달라붙는 형태로 설계되었기에 멀리서 보면 어깨 위에 검은 고양이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에클레어 카메라에 '어깨 위의 고양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이 '어깨위의 고양이'는 즉각적으로 다큐멘터리 촬영에 새 시대를 열어주었으며, 곧이어 극영화의 스타일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고다르와 트뤼포의 누벨바그(뉴웨이브-새로운 물결)도 여기서 시작될 수 있었고 이후 영화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분기점으로 고전 영화와 현대 영화를 구분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그 작은 카메라의 출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에는 일본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6mm 카세트테이프에 디지털로 영상을 저장하는 '미니DV' 포맷이 등장한 것이다. 새 포맷을 사용하는 소형 3CCD 디지털 캠코더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캠코더들이 녹화하는 디지털 이미지는 당시 아날로그였던 공중파 방송국의 화질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자연스럽게 프로와 아마추어가 만들어내는 화면의 경계가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소규모 '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은 날개를 달게 되었다.  
혁신적인 소형 카메라의 등장이 영화 매체의 질적 변화를 야기하며 전 세계 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소형 캠코더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들에게 거추장스런 장비로 무장한 방송국 스탭들이 포착하기 힘든,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순간으로의 접근을 허락해주었다.

카메라의 크기는 이제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겠지만, 카메라의 위치와 쇼트의 사이즈, 카메라의 움직임은 영화가 어떤 형태로 진화하건 언제나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카메라와 피사체와의 관계가 여전히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마을에 대한 사랑이 그려낸 다큐, <춤추는 숲>

 1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린 성미산마을다큐 '춤추는 숲' 언론시사회에서 강석필 감독과 유창복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 배우 고창석, 정인기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린 성미산마을다큐 '춤추는 숲' 언론시사회에서 강석필 감독과 유창복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 배우 고창석, 정인기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강 감독은 이미 작은 카메라가 일반화된 시대를 살고 있으며, 또 그는 처음부터 누구보다 마을 일의 핵심 가까이에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그의 영화의 특별함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강 감독의 집 지하 작업실엔 카메라는 물론 여러 종류의 삼각대, 소형 크레인, 경량형 스테디캠 등 많은 촬영 보조 장비들이 가득 차있다. 그는 감독이기 이전에 유능한 촬영감독이며, 또 그 이전에 성미산마을에서 아이를 키우며 삶을 영위하는 마을주민인 것이다. 그는 '어깨 위의 고양이'의 중요성을 몸으로 알고 있기에 쉽게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며, 마을과 마을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넘어선 사랑으로 영화 작업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제 강 감독에게는 <춤추는 숲>이 바로 '어깨위의 고양이'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 첫 번째 영화의 성공적인 완성을 디딤돌 삼아, 더 진일보한 시도와 노력으로 새롭고 놀라운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온갖 장점을 다 포함하고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2013년 서울의 마포에서 우리는, 세그웨이를 타고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쥔 신예 강석필 감독을 발견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영화 <돈의 맛>, <고지전>에서 촬영감독을 맡은 김우형 감독입니다. <춤추는 숲>의 관람 정보는 누리집(http://d_forest2013.blog.me)에서 참고 바랍니다.
<춤추는 숲> 성미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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