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 업>의 포스터

<라운드 업>의 포스터 ⓒ 팝엔터테인먼트

살다보면 '결단코 바로잡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일본 아베 총리의 왜곡된 역사발언에 쉽게 분노하는 이유는 역사문제가 그중 하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자국의 잘못을 슬며시 드러내는 나라가 있다. 바로 <라우드 업>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말이다.

흑백화면에 에펠탑이 등장하고 부드러운 샹송이 울려 퍼진다. 스크린의 모든 것은 프랑스를 상징하고 있지만 배경 속 인물은 히틀러를 포함한 나치군이다. 파리의 거리에 등장한 나치군은 한동안 그렇게 낮은 샹송이 깔리는 프랑스 거리를 활보한다. 그리고 화면 속 자막은 '모든 내용은 가장 극적인 부분까지도 1942년 여름에 실제로 있었던 일'임을  알린다.

1942년 6월. 프랑스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가슴에 노란별을 지니고 있다. 선생님은 어린아이들에게 노란별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유대인 출입을 금하는 놀이공원과 빵집이 있으며 '쓰레기'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또 타이타닉호의 침몰도 유대인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럼에도 어린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요새를 만들거나 동생을 떼어 놓고 뛰어 놀 궁리에 바쁘다.

대형 자전거 경륜장에 강제 수용된 유대인들

7월 16일. 한밤중에 들이닥친 경찰들은 유대인들을 대형 자전거 경륜장에 강제 수용한다. 프랑스 정부가 나치의 '인종정화정책'에 협조한다는 이유다. 자국민 중 1만3152명의 유대인을 체포한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유대인을 색출해야 했기에 어린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좁고 더러운 경륜장에서 만여 명의 유대인이 살아간다. 마실 물도 음식도 제공되지 않았고 여자들은 수치심을 견디며 사방이 뚫린 구석에서 용변을 봐야했다.

7월 21일, 그들이 옮겨진 곳은 마구간과 같은 냄새 나는 수용소다. 그럼에도 웃을 수 있는 것은 엄마 아빠, 가족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7월 30일엔 엄마와 아빠가 격리된 채 따로 끌려갔으며 그곳엔 어린아이들과 그들을 돌볼 간호사 몇 명만이 남는다.  며칠 후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 아이들은 또 다른 차에 몸을 싣는다. 아이들은 과연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라운드 업>은 프랑스정부가 자국민이던 유대인을 체포 감금했던 '벨디브(Vel' D'hiv)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동참했던 프랑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체포된 1만3152명의 유대인 중 아이들은 무려 4051명이었으며 그중 살아남은 자는 단 25명이다.

그 누구도 아이들의 희생을 막지 못했다

영화의 끝은 참담하다. 감독은 프랑스의 잘못된 선택으로 낳은 수많은 희생자 중에는 4천여 명의 어린아이들이 있음을 말한다. 그럼에도 절망적으로만 흐르지 않은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고 떠들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꼭 살아남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대로 탈출을 감행하는 조와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 꼬마 노노. '유대인 체포하기'마저 재밌는 놀이가 될 수 있는 이 아이들이 돌아올 수 없는 차를 타기까지 프랑스 간호사 아네트(멜라니 로랑)가 고군분투할 뿐 그 누구도 아이들의 희생을 막지 못했다.

감독은 역사의 진실을 담는 대신  대량학살의 장면은 외면했다. 대신 순수한 아이들의 웃음을 통해 그들의 행동이 더 가혹했음을 각인시킨다. 영화평론지 <인디펜던트>는 '프랑스를 이해하려면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한 것은 1995년 시라크 정부 시절이며 기자출신 감독 로젤린 보시는 2010년 이 영화를 제작했다. 프랑스는 <라운드 업>을 통해 감추고 싶었던 이면을 드러내며 속죄하고 있다. 적어도 그들은 잘못을 인정할 용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 역시 용기를 얻기 바란다. 자국의 잘못으로 희생된 수많은 영령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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