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의 한 장면. 위조 호패를 만들기 위해 막봉을 찾아온 최원.

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의 한 장면. 위조 호패를 만들기 위해 막봉을 찾아온 최원.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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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이하 <천명>)은 자극적 설정으로 전체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요즘 드라마들에 비한다면 무척이나 온건한 드라마다.

그러나 드라마의 그러한 온건함은 조금은 심심하다는 평을 이끌기도 한다. 시청자들을 극적인 상황으로 강하게 몰입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부족한 탓이다.

자극 없는 설정, 서로의 부적이 되어주는 선량한 인물들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어 모으기 위한 장치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황을 자극적으로 풀어내는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것이 시청자들의 원성을 듣는다 하더라도 일단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과정이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어서 종종 개연성이 무시되기도 하고, 단순한 자극으로 그치는 탓에 결국 작품의 전체적 흐름을 해치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천명>이 풀어내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드라마 속 여러 인물들과 배경을 살펴보자. 계모인 문정왕후(박지영 분)에 의한 독살설이 있는 조선 12대 왕 인종, 그의 선왕인 중종 말기 대윤파와 소윤파의 극심한 대결 양상 등에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딸과 살인누명을 쓰고 쫓기는 아버지, 그리고 그를 쫓는 냉혹한 추격자 의금부도사, 그리고 흑석골 도적패들의 이야기까지. 참으로 복잡다단하고 음험해질 수 있는 내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토록 복잡한 얼개를 가진 이 드라마에는 자극적이라 할 만한 장면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씨실, 날실로 촘촘히 얽힌 비밀스런 음모와 배신, 격렬한 격투, 추격 등 소재로만 본다면 자극적 흐름으로 갈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비교적 순리적이며 착한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주인공 최원(이동욱 분)은 딸 최랑(김유빈 분)에게, 필두(김형범 분)는 친구 최원에게, <천명>의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부적'이 되어주고자 노력한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내의원 사람들과 흑석골 도적패들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일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 인정을 지니고 있다. 그 착한 주인공들 사이로 궐내 암투를 주도하는 등의 악역들이 간간이 그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세자 이호(임슬옹 분) 측과 문정왕후(박지영 분) 측의 물고물리는 기 싸움도 그리 도발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 중에 살인사건을 주도하는 극악무도한 인물도 있고,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물들도 많지만, 현재까지 크게 무리 없는 수준으로 펼쳐내고 있다. 그것은 최근의 드라마들에서의 화제성만을 노린 연출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라 하겠다.

늘어지는 분위기, 캐릭터와 이야기의 힘으로 풀어내길

 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의 한 장면.

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의 한 장면. ⓒ KBS


<천명>은 비교적 복잡다단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 최원이 쫓기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급속도로 긴장감이 풀어지는 단점이 있다. 긴박한 액션과 추격신, 부성애의 애틋함 등을 잘 표현해내고 있음에도 무언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 그것은 주인공들이 겪는 고초에 관한 비밀이 이미 다 드러나 있는데다, 앞으로의 상황전개 또한 충분히 예상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까지 주인공들의 멜로 라인도 채 구성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그저 쫓기고만 있는 주인공의 처지, 그리고 궐내의 암투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임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드라마의 초반 시청자들의 눈길을 충분히 사로잡지 못했으니 그 추세가 계속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명' 세자 이호는 문정왕후를 상징하는 꽃 한송이를 물 속에 던져버렸다. 이 드라마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장면.

▲ '천명' 세자 이호는 문정왕후를 상징하는 꽃 한송이를 물 속에 던져버렸다. 이 드라마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장면. ⓒ KBS


그렇다고 이 온화하고 착한 드라마가 자극적 설정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일을 바라는 시청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일회용 요법으로 드라마를 살리려는 시도는 자칫 드라마 전체의 품격을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 설정은 작품에는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다. 반짝 시청률 상승의 효과는 누릴 수 있을 것이지만 작품이 가진 고유한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자극적 설정은 피해야 할 일이지만 이야기나 인물들이 아무런 매력이 없는 쪽으로 흐르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자면 보다 깊이 있는 캐릭터 구축과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의 전개가 시급하다. 

이제 세자 이호는 계모 문정왕후를 상징하는 꽃 한 송이를 물속에 던짐으로서 그와의 오랜 애증관계를 끝내려 하고 있다. 지지부진했던 이야기의 한 얼개가 비로소 풀리려 하고 있는 것. 살인범으로 지목된 '거북 구'의 주인공도 덕팔(조달환 분)이 아님이 밝혀졌다. 최원과 홍다인(송지효 분)의 애틋한 관계도 이제 막 시작되었고, 최원의 도움을 받은 도적패들의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되는 점이다.

<천명>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극적 설정에 의해서가 아닌 순전한 이야기의 힘, 캐릭터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좋은 드라마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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