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궁금한 이야기 Y>는 여러 시사프로그램 중 비교적 우리 곁에서 가까운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큰 사회문제는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사건들의 뒷이야기를 다루며 매주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곳곳을 파헤치는 시사프로그램의 기본은 다름 아닌 '오지랖'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긍정적 의미에서다. 나와는 다른 방향에 있는 것들, 일상과는 다른 세상의 일들, 혹은 들여다보기 어려운 곳에 있어 전혀 알 수 없었던 어떤 일들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오지랖은 필수다.

'궁금한 이야기 Y' '27개월 지향이의 죽음' 편은 아기를 둘러싼 안타까운 의혹과 더불어 사망진단서 발급의 불합리함에 대해 다뤄 경종을 울렸다.

▲ '궁금한 이야기 Y' '27개월 지향이의 죽음' 편은 아기를 둘러싼 안타까운 의혹과 더불어 사망진단서 발급의 불합리함에 대해 다뤄 경종을 울렸다. ⓒ SBS


'오지랖'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풀어내는 프로그램

오지랖이란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천차만별의 느낌을 주는 단어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으로 쓰이는 단어라 하겠다. '오지랖을 떤다'라는 말은 있지만 '오지랖을 베푼다'라는 말은 없지 않나. 그러나 실제 우리 사회에서 '오지랖'의 범위는 매우 모호한 편이다. 그것은 때로 '정'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불필요한 '간섭'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궁금한 이야기 Y>에서도 종종 불필요한 오지랖으로 여겨지는 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선행을 베풀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을 끝까지 추적하는 등 말이다. 선의를 보인다는 명목으로 당사자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들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시청자들의 찬반은 엇갈릴 것이다.

<궁금한 이야기 Y>의 오지랖이 그 미덕을 한껏 발휘할 때도 있었다. 지난 1월의 '짐승이 되어가는 남자' 편에서 41세의 나이에 집에 감금되다시피 한 한 남자의 사연을 파헤쳐 낸 것, 지난달 26일의 '보도블록 위 분필낙서' 편의 주인공을 끝까지 추적해 도움의 손길을 건넨 것 등이다. 전자의 경우엔 인권단체와 제작진의 도움이, 후자의 경우엔 도로 위에 적힌 힘들다는 하소연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제보자의 오지랖이 큰 몫을 했다.

<궁금한 이야기 Y>는 꽤 굵직한 사건을 다루기도 한다. 지난달 12일의 '냉동시신과 천사 아버지' 편에서는 숨진 입양자녀들을 10여 년이나 냉동고에 보관한 비정한 목사에 대해 다뤘고, 지난 5월 3일 방송인 '김이장 변사사건' 편은 조용했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을 다뤘다.

또한 지난달 26일엔 아동학대를 다룬 '27개월 지향이의 죽음'에서는 아기를 둘러싼 의혹 외에도 엉터리 사망진단서 발급의 문제점 등을 꼬집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이런 사건들은 언뜻 매우 소소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경종을 울려 변화를 이끌어 낼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궁금한 이야기 Y' 이 프로그램의 미덕을 잘 보여준 '보도 블록 위 분필 낙서'편의 한 장면. 도로 위의 낙서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한 제보자의 '오지랖'이 큰 몫을 했다.

▲ '궁금한 이야기 Y' 이 프로그램의 미덕을 잘 보여준 '보도 블록 위 분필 낙서'편의 한 장면. 도로 위의 낙서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한 제보자의 '오지랖'이 큰 몫을 했다. ⓒ SBS


공익과 선정성 사이의 고민, 중용을 지키는 좋은 프로그램이 되기를

매주 방송되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궁금한 이야기 Y>와 같은 프로그램이 주목받기 위해선 여러 요소가 필요할 것이다.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하고, 효과적인 사건의 재구성도 필요하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요소가 자칫 프로그램을 선정적으로 흐르게 할 위험도 있다. 별것 아닌 사건을 과대포장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지난달 12일 방송한 '사라진 아내' 편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제목만 보면 마치 큰 사건인 듯했지만 실상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사로운 일로 인한 단순 가출이었다.

그렇듯 흥미와 공익, 그리고 선정성 사이에서의 줄타기는 제작진이 가진 고민을 말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사회고발 프로그램들의 어려운 현실은 물론 짐작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건 이해당사자들의 상반된 입장이 불러올 여러 분쟁도 고려한다면 말이다. 프로그램의 '오지랖'이 크면 클수록 파장의 크기도 커진다. 그 책임을 어깨에 짊어진 제작진의 고민은 여타 프로그램들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나만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필요한 '오지랖', 그 모호한 의미 속에서 중용을 지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궁금한 이야기 Y>가 매주 보이는 사회의 한구석 웅크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지랖'의 긍정적 의미를 드러내는 좋은 예라 하겠다.

궁금한 이야기 Y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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