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남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건 '그' 때문인지 모른다. 다부진 잔 근육과 살짝 처진 듯 한 어깨. 누구와 싸워도 결국 이길 걸 아는 자의 표정.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아도 확신에 찬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젊다는 것 하나로 충분했다. 헐리웃은 안거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열정과 성실함이 그림자처럼 비추는 배우 톰 크루즈의 진가를.
자폐증 형인 더스틴 호프만의 동생<레인맨(1989)>역도 술집 매니저인 브라이언 브라운과 친형제처럼 지내는 가난한 바텐더 청년<칵테일(1990)>역도 신예 톰에게 거칠 것이 없었다. 실제로 파일럿이 되게 만든 영화 <탑건(1987)>과 데미 무어와 호흡을 맞추며 법정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준 <어퓨굿맨(1992)>까지 그의 신선한 입지는 갈수록 광범위 하고 탄탄하게 자리 잡았다.
1996년 시작된 <미션임파서블>은 색다른 액션으로 홀린 후 스스로 얼굴가면을 벗어가며 4편의 작품을 더 만들어 낸다. 몸을 날리지 않아도 끝내주는 연기가 가능함을 보여준 <제리 맥과이어(1997)>와 <7월 4일생(1990)>, 또 상업적인 영화에서 살짝 벗어난 <매그놀리아((2000)>까지 박차를 가하는 톰의 연기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허나 만년 소년 같은 매력과 남성다운 섹스어필로 세계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도 이제 52세가 됐다. 그간 세 번의 이혼과 사이언톨로지에 심취한 모습까지 지나치게 다채로운 면모를 드러낸 끝에 헐리웃에서 잠깐 소외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그는 한결같은 자신감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가 선택한 작품<오블리비언>은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와 <우주전쟁(2005)>에 이은 그의 세 번 째 SF대작이다. 톰은 약탈자인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핵의 오염으로 더 많은 것을 잃고만 지구의 마지막 정찰병 잭 하퍼를 연기한다.
5년의 기억이 삭제된 채 스카이 타워에서 잭 하퍼를 돕는 빅토리아(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아무런 의문 없이 기간을 채워 생존인간들이 머물고 있는 우주 정거장 테트로 떠날 기대에 부풀어 있다.
▲ 스카이 타워에서 원격조정으로 잭을 돕는 빅토리아 ⓒ UPI코리아
잭 하퍼는 약탈자와 싸우는 로봇무기 드론을 수리하다 추락하는 우주선을 발견한다. 캡슐과 같은 우주선 안에 수면상태로 나타난 여자가 매일 밤 자신의 꿈에 나타난 여자, 줄리아(올가 쿠릴렌코)임을 확인한 후 잭은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된다. 또한 핵 오염으로 살 수 없다던 지구에 남아있는 생존자들을 발견하며 외계인의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잭 하퍼는 누구며 지구에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솔직히 <오블리비언>은 톰의 전작들과 비해 덜 재밌고 은근히 복잡하며 초반엔 살짝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소니의 시네알타 F65카메라로 담아낸 화면 덕이다. 기존보다 4배 더 밝은 화면으로 담아낸 2077년의 지구는 핵전쟁으로 폐허가 됐음에도 아이러니하게 아름답다. 영화의 주 촬영지인 아이슬란드와 하와이 마우이 섬, 할레아칼라 분화구등 많은 제작비를 투입한 덕에 압도적인 자연 경관을 볼 수 있다.
구름 위 허공에 떠 있는 스카이 타워나 잭이 타고 다니는 버블쉽, 그리고 약탈자들만을 인식해 공격하는 동그랗고 귀여운 드론 역시 쏠쏠한 볼거리다. 바닷물을 에너지로 바꿔 생존 인간들이 머물고 있다는 우주정거장 테트에 보내주는 장면역시 시각적인 호사가 아닐 수 없다. <오블리비언>은 중심축을 이루는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내용의 설득력보다는 비주얼에 따른 시각효과를 앞세우는 영화라 할만하다.
원톱으로 등장하는 톰 크루즈는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자신의 몸에 꼭 맞게 디자인된 항공기 버블십을 직접 운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모터바이크 점프 연기역시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고 한다. 사실 끝내주는 볼거리와 연기를 보증하는 배우가 있다면 그 영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것이다. 톰 크루즈라는 이름이 <오블리비언>이라는 제목보다 우선으로 영화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버블쉽을 뒤로하고 드론을 고치기 위해 약탈자와 싸우는 잭 ⓒ UPI코리아
보이 스카우트를 연상시키지만, 고등학교 시절 운동선수였고 부모의 갈등으로 불화한 가정에서 자란 그가 슈퍼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타고난 성실함과 열정 때문일 것이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촬영현장에 200% 머문다는 톰 크루즈. 일본작가 칸바야시 쵸헤이의 동명소설(1979) 원작의 <유키카제>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톰이 또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지 기대를 해본다.
영화인생 30년, 나이 따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한결같이 스팩타클한 액션을 선사하는 톰 크루즈는 이제 덜 팽팽하지만 더 정감 있는 미소로 자신의 이름을 믿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들을 책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