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 앞    해뜰 무렵. 너무 추워서 사진에 보이는 인포데스크에 몰래 들어가 있기도 했다.

▲ 메가박스 앞 해뜰 무렵. 너무 추워서 사진에 보이는 인포데스크에 몰래 들어가 있기도 했다. ⓒ 주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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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JIFF 4.25~5.3)가 한창 진행중이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JIFF는 필자에게 특별한 추억 한 장을 남겼다. 아직 끝나지 않은 JIFF의 이야기 한토막을 전한다.

4월 27일 토요일 2시 '숏숏숏 2013'이어야만 했다. 4월 25일부터 5월 3일까지 이어지는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숏숏숏 2013'은 총 세 번의 상영스케줄이 잡혀있었지만, 굳이 그날이어야 했다. 왜냐면, 'GV'였으니까.

GV란 'Guest Visit(게스트 비짓)'의 약자로, 영화의 감독·배우들이 영화 상영 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을 뜻한다. 27일 숏숏숏 GV에는 내가 사랑하는 배우, 한주완이 나올 예정이었기에 꼭 그날이어야 했다.

하지만 토요일 2시를 기약하는 일이 녹록지가 않았다. 일반 상영작 예매 오픈이 있던 지난 11일 11시, 영화제 홈페이지는 1시간이 넘게 열리지 않았다. 1시간 15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연결된 홈페이지에서 예매를 시도했으나, 매진이었다.

전주에서 학교를 다닌 나로서는 전주영화제를 굳이 예매해서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좀 놀란 마음에 기사를 찾아보았다. 31초 만에 매진된 대기록의 영화, 내가 예매하려던 '숏숏숏 2013'이었다. 대학시절 수강신청 불패역사에 빛나던 내가 전주영화제를 통해 처음 좌절을 배운 것이었다. 한편으로 '이건 꼭 봐야만 되겠어!'라는 묘한 오기가 생겼다.

예매오픈을 기다리는 시간 아직 정리되지 않은 메가라운지 내부와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그 와중에 돗자리까지 챙겨온 꼼꼼한 지수씨.

▲ 예매오픈을 기다리는 시간 아직 정리되지 않은 메가라운지 내부와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그 와중에 돗자리까지 챙겨온 꼼꼼한 지수씨. ⓒ 주현정


사활을 건 현장예매, 새벽 두 시에 만난 '동지'

예매 실패 후 울적한 기분으로 트위터를 하다가 '그 분'을 만났다. 스스로에게 오타쿠의 한국식 표현인 '덕후'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배우 한주완을 아끼는 박지수씨. 지수씨도 나처럼 예매를 실패해서 우울한 상태였다. 

영화표는 인터넷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도 구할 수 있다. 현장 예매분 15%를 따로 떼어 놓기 때문이다. 이 자리들은 전 좌석을 통틀어 조금씩 분산되어 있고, 당일 상영작은 당일에만 예매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현장 예매가 시작되는 9시에 줄을 서면 표를 못 구할 것 같았다. '31초 매진'의 위엄에 빛나는 영화표라면 현장에서도 그만큼 빨리 매진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작심하고 첫 번째로 표를 끊겠다는 각오를 다졌고, 지수씨에게 함께 하기를 권했다. 우리는 그렇게 뭉치게 되었다.

돈도 시간도 여유롭지 못했던 나와 지수씨는 26일 각각 광주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막차를 타고 27일 새벽에 전주에 도착했다. 27일 첫차를 타고 왔다가는 다른 이들에게 선수를 빼앗길 것 같다는 우려에서였다. 우리 둘은 2시 20분 경 만났고 첫 인사를 나눈 후 '메가라운지' 현장매표소를 찾아 메가박스로 향했다.

여기부터 한 줄로 한 줄 서기가 이렇게 공정하게 느껴진 때가 내 인생에 또 있었던가.

▲ 여기부터 한 줄로 한 줄 서기가 이렇게 공정하게 느껴진 때가 내 인생에 또 있었던가. ⓒ 주현정


편의점에 들어가 잠깐 동안 따끈한 차로 몸을 녹인 시간을 제외하곤, 3시부터 8시까지 새벽의 찬 공기를 맞으며 영화관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평소 우리 집 주변보다 조용하다"고 말하던 지수씨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와 같은 치열한 예매현장을 예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어서 밖에서 기다렸다. 새벽부터 기다렸는데 혹시나 새치기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8시부터 따끈한 국밥의 환영에 시달리다 9시까지 버텨낸 나와 지수씨는 결국 1등으로 예매를 할 수 있었다. 15%라곤 해도 25석에 불과했던지라, 현장예매소 네 곳에서 9시에 동시 발매를 시작하면 금방 또 매진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마지막 1분까지 마음 졸이던 터였다. 예매를 성공하고 둘 다 너무 기쁜 나머지 표를 들고 국밥집으로 뛰어가느라 뒤늦게야 알게 된 이야기. 현장에서 예매를 기다리던 지인에 따르면 '숏숏숏'은 현장에서 3분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6시간만에       

         표를 받고나니 고생했던 기억이 사그라드는 듯 했다.

▲ 6시간만에 표를 받고나니 고생했던 기억이 사그라드는 듯 했다. ⓒ 주현정


생고생이 아깝지 않은 즐거운(?) '멘붕'의 시간

'숏숏숏 2013'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스크린에 녹여냈다. 이상우·이진우·박진성/박진석 감독이 참여했고, 각각 <비상구><피뢰침><마지막 손님>을 각색해 영화화했다.

각 영화의 원작이 한 명의 작가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여겨질 정도로 세 작품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원작소설을 이해하는 과정과 그것을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 중에 '개성적 해석'이 이뤄진 까닭이다. '감독 각자만의 시선'. 재미의 포인트는 거기에 있었다.

숏숏숏 2013 GV 감독, 배우, 그리고 관객과의 만남의 시간

▲ 숏숏숏 2013 GV 감독, 배우, 그리고 관객과의 만남의 시간 ⓒ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영화가 끝나고 GV시간. 여성 관객 한 명이 제일 먼저 이상우 감독님에게 질문을 던졌다. 감독님 영화는 왜 만날 ○○, △△(남녀의 생식기를 이르는 말) 얘기냐고.

질문이 던져진 순간 아연한 몇몇 사람들과 함께 관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누가봐도 19세 등급을 받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을 <비상구>를 연출하신 이상우 감독님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오히려 답변에 있어서 더 음탕한 말들을 쏟아냈으니,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소위 '멘붕'상태가 되어 웃는 것 외엔 방도가 없었던 것 같다.

이어지는 감독님의 말. "저 변태 아니에요. XX이는 가끔 쳐도..." 순간 급히 마이크를 전해 든 <번개와 춤을>의 이진우 감독님이 "어제 술 마시고 말 트기로 했는데,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라고 그의 말을 잘랐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음탕한 말들에, 감독님의 국가대표급 센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GV시간에는 또 한 번의 반전이 있었으니, 질문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다. 첫 질문이 너무 세서 다들 할 말을 잃었는지, 관객석은 잠잠했다. 대신 사회자가 질문을 하고 답을 받는 시간이 이어졌다. '누군가 나 대신 질문해주겠지'하며 손 놓고 있었더니 사회자는 어느덧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주마등처럼 후루룩, 지난 6시간의 생고생이 떠오른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JIFF 홈페이지에 고스란히 남았다. 하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내 사진이 배우들보다 더 크게 나왔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질문하는 나 질문없던 관객들 중 유난히 도드라졌던지 배우보다 더 큰 단독샷으로 찍혔다.

▲ 질문하는 나 질문없던 관객들 중 유난히 도드라졌던지 배우보다 더 큰 단독샷으로 찍혔다. ⓒ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영화제 덕분에 만난 작가·감독 그리고 사람

한 배우에 대한 애정과 틀어진 계획에 대한 오기로 이번 여행은 시작됐다. 하지만 그 작은 관심사 덕분에 나는 잘 몰랐던 김영하 작가님의 작품을 읽었고 이상우 감독님을 비롯한 유쾌한 감독님들을 만났으며 같은 관심사를 공유한 지수씨를 알게 됐다.

'한주완 덕후'라고 스스로를 명명했지만 지수씨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제가 정말 좋아했던 " 혹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oo" 둘 중 하나였다. 영화, 음악, 소설에 대해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낼 지점을 찾지 못할 만큼 관심사의 외연이 넓었던 지수씨. 음악 얘기가 한창 이어지던 때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그렇게 좋아하는 밴드가 많아요?" 지수씨의 대답, 단순하고도 정확했다.

"어떤 밴드를 좋아하다보면 다른 밴드들과 합동공연을 하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공연하는 것을 보다 보면 괜찮은 밴드가 눈에 띄게 되고 그러면 또 좋아하게 되고 그러는 거죠."

짧은 영화들의 합동공연과도 같았던 '숏숏숏 2013'. 좋아하는 배우의 작품을 보러 갔다가 꽤 괜찮은 감독님과 배우님들, 그리고 이야기를 발견한 기분이다. 앞으로도 쭉, 애정을 갖고 바라보게 될 것 같다.

결국 찍었다 오징어가 될까봐 걱정했지만 결국엔 팬심이 걱정을 앞섰다는.

▲ 결국 찍었다 오징어가 될까봐 걱정했지만 결국엔 팬심이 걱정을 앞섰다는. ⓒ 주현정



전주국제영화제 JIFF 숏숏숏 2013 이상우 한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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