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족의 나라> 포스터

영화 <가족의 나라> 포스터 ⓒ (주)미로비젼

양영희 감독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일본에서 출생한 재일한국인 2세로 <디어 평양>(2006)과 <굿바이 평양>(2011) 같은 기록영화로 관객에게 알려졌다. 두 편의 영화에서 그녀는 조총련계 재일동포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친다. 이번에 관객과 만나는 <가족의 나라> 역시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기록영화가 아니라 극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가족의 나라>에서 사건의 발단을 제공하는 것은 북송사업이다. 그것은 1959년부터 20년 동안 조총련계 재일동포 9만4000여 명을 북송한 사업을 일컫는다. 전후 일본에서 차별과 멸시, 냉대에 시달리던 재일동포들이 지상낙원으로 선전된 북한에 자발적으로 찾아들어간 것이다. 그들은 일본과 북한정권의 협약 때문에 지금도 일본 재입국이 금지된 상태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 처한 성호가 일본에 일시 귀국하면서 겪는 갈등과 가족문제, 나아가 개인과 국가의 관계까지 다각도로 성찰한다. 한국인들은 까맣게 모르거나 망각하고 있던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의 가슴 저미는 사연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채 고립되어 살아가는 일군의 인간들과 만나면서 관객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성호와 순이

성호는 열여섯 살 나이에 북송선에 오른다. 조총련에 속한 아버지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세월은 화살처럼 흐르고 드디어 25년 만에 그는 꿈에 그리던 가족에게 귀환한다. 하지만 그의 일본 귀환은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제한된다. 뇌에 악성종양이 발견되었기에 의료기술이 발전한 일본에서 치료가 허락된 터였다.

북한으로 가기 전에 성호에게는 첫사랑 여인이 있었다. 그녀 이름은 순이! 어린 나이였지만 장래를 약속한 두 사람. 하지만 한 번의 이별로 그들의 인연은 영원히 끊어져버렸다. 성호는 평양에서, 순이는 동경에서 각각 결혼한다. 성호의 귀환 축하잔치에 나타난 순이와 예전에 불렀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성호의 표정이 잠시 상기되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없다. 3개월로 예정된 체류허가 기간이 너무도 빨리 느닷없이 종결되기 때문이다. 일본을 떠나기 전날 성호는 순이와 재회한다. 신사 앞에서 만나 강변으로 길을 나서는 그들이지만, 그들 흉중에는 다른 생각이 자리한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성호에게 내일 돌아간다는 말을 듣는 순이의 망연자실함이라니!

<가족의 나라>에서는 영사기가 자주 흔들린다. 감독의 의도적인 '흔들기'로 보인다. 등장인물의 내면이 요동칠 때면 화면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은 예외다. 차창을 열고 순이와 불렀던 노래를 불러조는 성호. 갑작스레 창문이 닫히고, 성호의 노래는 중지된다. 개인의 마지막 선택마저 봉쇄되는 장면이지만, 화면은 정갈하고 단정하다.  

성호와 아버지

 영화 <가족의 나라>의 한 장면

영화 <가족의 나라>의 한 장면 ⓒ 미로비젼


성호의 비극적인 운명은 아버지가 결정했다. 아버지는 사회주의 조국인 북한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물이다. 사상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굳세기 그지없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옆에는 그림자처럼 동생이 자리한다. 성호가 일시 귀국하여 치료를 받게 되는 배경에도 작은아버지의 경제적인 지원과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열여섯 살 성호가 입북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한다고 절규하는 작은아버지. 그러나 아버지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버지의 가슴과 사유는 무척 깊고 넓다. 성호가 일본으로 귀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동생 리애와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한다. 아주 늦게 귀가한 남매. 그들은 이층 계단 앞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그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를 발견한다.

아버지는 시종일관 말수가 적고 근엄한 표정이다. 하지만 얼굴에 서려 있는 수심을 도저히 가릴 수 없다.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 25년 동안 생이별해야 했던 장남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과 아픔이 배어 있다. 성호가 리애에게 북한 당국이 제안한 과업수행을 말할 때 우연히 엿듣는 아버지의 표정은 얼마나 딱딱하게 굳어 있는가!

아버지의 말 못할 흉중은 성호의 급작스러운 북한 귀환명령이 하달된 이후에 현저하게 드러난다. 아주 오랜 세월 사회주의 조국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던 아버지. 때로는 조국의 바람 이상을 관철하려고 필요 이상의 노력까지 했던 아버지. 그러나 이제 생의 늘그막에 그는 가족의 분열과 해체까지 경험하면서 고통의 극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성호와 리애

아버지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 리애. 일본인의 사고와 국가관에 익숙하고, 개인적인 삶의 지향을 소중히 생각하는 리애. 그녀는 오빠의 부탁 아닌 부탁을 단숨에 거절해버린다. 그것이 자신의 사적인 사유와 행동을 제한하고 억압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이해한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도 오빠나 오빠 가족에게 닥칠 불이익 때문에 괴로워한다.

사무치도록 성호를 그리워하고, 오빠와 상봉한 다음 누구보다도 행복해하는 리애.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밤 집 밖으로 나간다. 거리에 주차해 있던 승용차를 향해 삿대질해대는 리애. 차 안에서 성호를 감시하는 임무를 띠고 동행한 '양 동지'가 나온다. 양 동지에게 거침없이 속내를 털어놓으며 공세적으로 대응하는 리애.

리애는 저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분노와 슬픔과 절망을 주체할 수 없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좁은 골목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리애. 그녀의 작은 몸에서 분노한 야생동물의 저항본능이 끝없이 분출하는 듯하다. 리애의 이런 모습과 달리 어머니는 언제나 차분하고 수더분하다. 인내심 하나로 세상을 살아온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성호의 귀환통보를 듣고 망연한가 싶더니 어머니는 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 아들과 양 동지에게 선물을 마련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선물을 전달하며 활달하게 넘어가는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자식이 떠나가기 무섭게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절규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관객은 국가권력의 잉여와 압제를 절감하게 된다.

개인과 국가

 영화 <가족의 나라>의 한 장면

영화 <가족의 나라>의 한 장면 ⓒ 미로비젼


<가족의 나라>에서 한국의 관객들은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국가권력의 실체를 목도한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30년 국가폭력의 양상이 이웃나라 일본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다. 일본에서 차별받고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북한권력의 폭력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우리는 1987년 전국에서 떨치고 일어선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 노태우의 야만적인 반동이 민주주의의 물길을 잠시 뒤로 돌렸지만, 토건족 앞잡이 이명박의 천박한 경제 제일주의가 우리 목을 졸랐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그런데 북한은 어떠한가! 북한의 지령이나 명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의 삶은 어떤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가 일상화되고, 폭압적인 아랍세계 정치지도자들이 대거 몰락한 21세기. 개인의 사상과 행동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는 21세기 광명천지에서 자행되는 국가폭력의 실체가 아프게 다가온다.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생각하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라!" 

언젠가 제국 아메리카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 케네디가 국민들에게 일갈했던 말이다. 이제 이런 말은 얼마나 생소하며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가!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전면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고 양영희 감독은 힘주어 말하고 있다.

글을 맺으면서

13개 영화제에서 수상한 <가족의 나라> 포스터에 큼지막한 활자로 이렇게 쓰여 있다.

세계 영화제를 휩쓴 최고의 화제작! 드라마틱한 실화가 전하는 깊은 감동!

영화를 보다보니 시나브로 포스터가 떠올랐다. 상을 받을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인 배우들의 연기도 대단하고, <똥파리>의 양익준이 맡은 양 동지 배역도 나무랄 데 없이 좋다. 그런데 영화관에서나 영화가 끝난 다음에나 마음이 시종 불편하고 찜찜하기 이를 데 없다. 아하, 아직도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구나, 하는 아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자주 있어. 그곳(북한)에서는 생각하면 안 돼.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야. 단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살아남는 것, 그것뿐이야."

성호가 리애한테 들려주는 북한의 실상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 언제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깊은 한숨이 절로 새나오는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다.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19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영화를 읽다>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www.professornet.org)에도 함께 올라간다.
민교협 영화를 읽다 김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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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다. 19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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