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의 역주행은 현재의 가요계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벚꽃 엔딩'의 역주행은 현재의 가요계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 CJ E&M


최근 음원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 하나 발생했다. 발매한 지 1년이 지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화제를 모은 것이다. 몇몇 차트에서는 실시간 1위를 고수하고 있을 정도다. 봄기운이 완연해지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벚꽃 엔딩'을 찾아 들으며 생긴 현상이다. 버스커버스커의 이러한 '역주행'은 현재의 음악 시장에 상당히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강북 멋쟁이' 논란, 찬반으로 갈라졌던 가요계

지난 1월, 대한민국 가요계는 이른바 '강북 멋쟁이'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MBC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작곡에 도전하며 만든 노래 중 하나인 '강북 멋쟁이'가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하자 연예 관계자 중 일부가 강하게 반발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당시 소녀시대, 백지영 등 유명 가수들은 '강북 멋쟁이' 열풍을 이기지 못하고 차트 2, 3위로 내려앉았다.

아마추어 작곡가인 박명수의 음악에 대한 퀄리티 논쟁으로 시작한 '강북 멋쟁이' 논란은 한국연예제작사협회(이하 연제협)가 "방송사가 프로그램 인지도를 앞세워 음원 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것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하면서부터 음원 시장을 둘러싼 일종의 주도권 싸움으로 확장됐다.

"국내 음원 시장의 독과점을 발생시켜 제작자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고, 내수 시장이 붕괴되면 장르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와 한류의 잠재적 성장 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연제협의 주장은 뜨거운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반 대중은 물론이거니와 전문가와 가요 관계자들, 심지어 가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정도로 정답 없는 공방이 계속된 것이다.

당시 작곡가 김형석은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방송사가 자체 제작한 음원을 대놓고 홍보하는 콘셉트가 문제.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라며 연제협에 힘을 실어줬지만, YG 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은 "인기 콘텐츠란 대중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어떤 단체나 제작자들이 결정할 권한이 아니다"며 정반대의 의견을 펼쳤다. 가수 이승철은 "이것은 프로들이 건드릴 만한 게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라며 조속한 사태 수습을 주문하기도 했다.

사실 '강북 멋쟁이'를 둘러싼 양 측의 의견은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었다. 아쉬운 점은 이 논란이 '옳고 그르다' 차원의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일회성 이슈로 소모되고 말았단 사실이다. 이러한 논란이 왜 생겼는지, 문제의 근간에는 어떤 담론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접근이 사라진 자리에는 산발적인 개인의 의견과 깊게 팬 감정의 골만 남았다. 모두가 새겨들을만한 정답에 가까운 결론은 도출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5일 발매한 MBC <무한도전-박명수의 어떤가요> 타이틀곡 '강북멋쟁이'를 부른 정형돈

지난 5일 발매한 MBC <무한도전-박명수의 어떤가요> 타이틀곡 '강북멋쟁이'를 부른 정형돈 ⓒ MBC


'벚꽃 엔딩'의 역주행, 정답을 보여주다

그런데 최근 '강북 멋쟁이' 논란 2개월 만에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발매된 지 1년이 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숱한 최신곡들을 물리치고 차트 1위를 점령한 것이다. 리메이크가 된 것도 아니고, 광고 CM 송으로 쓰인 것도 아닌 노래가 부지불식간에 음원차트 상위권을 휩쓴 것에 대해 가요 관계자들은 적잖이 놀란 눈치다.

현재의 음원 시장은 짧은 주기와 빠른 교체를 특징으로 한, 무엇보다 유행과 이슈에 민감한 소비 시장 중 하나다. 차트 1위를 오랜 시간하기도 힘들뿐더러 한 번 순위권 밖에 밀려나면 그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가요 관계자들은 빠른 시간 내에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이며, 보다 파격적인 음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냈다. 중독성 있는 후크송, 아이돌을 내세운 격렬한 군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무대 콘셉트는 결국 음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요악'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한탕주의, 치고 빠지기 전략은 장르의 다양성을 해치고 대형 기획사의 독과점이라는 폐해를 낳았으며 상업주의가 판치게 만들었다. 연제협이 '강북 멋쟁이'를 비난하자 다수의 대중이 음원 시장의 아이돌화부터 해결하라며 반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인들 스스로도 들을만한 노래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서 대중이 선택한 박명수의 노래에 딴죽을 거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란 지적이었다.

 MBC 에브리원 <주간아이돌> MC이자 '형돈이와 대준이'로 활동하고 있는 정형돈과 데프콘

대표적인 '개가수'로 꼽히는 형돈이와 대준이. ⓒ MBC 플러스미디어


이런 측면에서 '벚꽃 엔딩'의 거침없는 역주행은 현재의 가요계에 매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좋은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대중이 반드시 찾아서 듣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환기시키며 음악을 하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결국 '강북 멋쟁이' 논쟁에서 궁극적으로 살펴봐야 했던 것은 방송사의 음원 시장 진출, 개가수 논란 등의 지엽적 문제가 아니라 음악 콘텐츠 그 자체였던 셈이다.

'벚꽃 엔딩'이 제시한 '강북 멋쟁이' 논란의 정답이 바로 이것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진짜 노래, 그리고 그것을 만들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하루 이틀 만에 듣고 소비되는 음악 대신 세대와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을 음악을 만드는 건 음악인들이 짊어진 평생의 사명이다. 이 사명의식이 투철히 발현된 이후에야 불합리한 음원 시장에 대한 의견 역시 제대로 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강북 멋쟁이' 같은 이벤트성 음악에 시장을 뺏겼다고 한탄하기 전에, 대중이 오래 듣고 즐길만한 노래를 먼저 만들어 들려주길 바란다. 음악을 선택하고 듣는 것은 온전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려주고,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내실 있는 콘텐츠로 승부를 보는 정공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구조가 정착되면 '강북 멋쟁이'가 1위를 했다고 호들갑 떨 필요도 없어진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실을 튼튼히 하고, 좋은 음악이 더 많이 살아남을 수 있는 토양을 다져갈 때에만 차갑게 식어버린 대중의 마음도 돌려세울 수 있다.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대중은 '제 2의 강북 멋쟁이'가 아니라 '제 2의 벚꽃 엔딩'을 갈망하고 있단 사실이다. 이제 모든 공은 음악을 만드는 그들에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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