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의 한 장면.

MBC 의 한 장면. ⓒ MBC


'다급하게 죽지 마라. 자기 혼자 몸이 아니다'

일본 후쿠이현의 유명 관광 명소인 도진보라는 곳에 위와 같은 글귀가 적힌 팻말이 있다고 한다. 25미터 높이의 주상절리 암벽이 절경인 이곳을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동시에 1년에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곳이 지닌 두 얼굴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MBC < PD수첩 >이 지난 2월 26일부터 '생명 존중 기획'을 진행 중이다. 1부에선 '자살률 1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소제목으로 우리나라의 실상을 사례 중심으로 꼽아 방송했다. 지난 5일 방송된 2부에선 해외 사례를 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에 대해 국가와 개인이 어떻게 대처하고 치유해 나가는지 담아냈다.

의미 있는 소재, 다루는 방식은 적절했나

OECD국가 평균보다 2.6배나 높은 자살률, 하루 평균 43.6명이 목숨을 끊는 국가. 가히 1위를 지키고 있는 불명예를 생각했을 때 '자살'이라는 소재는 충분히 짚고 넘어갈만한 하다. 언제부턴가 각종 시사·기획 프로그램에서 자살 문제가 단골 소재가 되는 데엔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

사례는 바뀌지만 다루는 방식에선 대동소이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그리고 피해를 받는 주변 사람들, 여기에 복지 선진국들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 PD수첩 >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버스로 뛰어든 사람으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 받는 버스 운전자, 철로로 뛰어드는 승객으로 고통 받는 전동열차 운전자를 소개하며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를 주목했다. 재인식 차원에서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인식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것은 중요했다. 하지만 사례 중심의 열거 그 이상의 의미를 두긴 어려웠다.

인식에 대한 경종의 차원이었을까. 1부에서 힘을 준 내용은 고 조성민씨의 누나 조성미씨를 독점 인터뷰한 부분이었다. 고 최진실과 최진영에 이어 조성민의 죽음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자살'을 논하며 소비될 대로 소비된 아픈 사례다. 유명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카메라를 비춘다는 건 그 의미가 아무리 좋고, 동의하에 진행한 일이더라도 기성 언론의 선정주의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들게 했다.

특히 2부에서 핀란드의 사례를 언급하며 핀란드 언론의 윤리강령을 들었는데 이 부분에도 배치되는 기획이었다. 핀란드 언론은 1960년에 이미 언론 윤리 강령을 통해 '개인의 자살은 조명하지 않는다'는 항목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자국의 한 유명 가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한 유명 가수가 자택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는 보도 외에 일절 다른 보도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소개했음에도 < PD수첩 >은 고인의 친족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물론 어떤 의도였고 뜻이었는지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다른 방식의 접근을 고민할 순 없었는지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MBC <PD수첩> 방송 화면.

MBC 방송 화면. ⓒ MBC


해결책 모색, 문제는 사회와 국가 아닐까

< PD수첩 > 2부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해결책 역시 이미 다른 언론을 통해 언급된 부분이었다. 1965년부터 1990년까지 세계 1위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했다는 핀란드가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세우며 이후 자살률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는 내용, OECD 국가 중 한국에 이어 자살률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이 민간과 지자체 중심으로 캠페인을 벌이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의미는 있다. 특히 핀란드는 일명 '심리적 부검'을 통해 자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한다. 심리적 부검이란 유가족과 경찰수사기록을 토대로 그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조치를 말한다. 이를 통해 정신과 전문 간호사와 이미 아픈 경험이 있는 '경험전문가'가 짝을 이뤄 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을 상담하는 시스템도 마련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온전히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PD수첩 >이 방송 마지막 부분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가족이 함께 세상을 등진다거나 하는 현상은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또한 우울과 스트레스에 대해 쉽게 남에게 터놓지 못하는 태도 역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이기도 하다.

사례와 대안 소개라는 기계적 배치가 아닌, 사례를 더 파고들며 그 안에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얻도록 하는 미시적인 접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직장과 학교 혹은 각종 조직이 현대인들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닐까.

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다루기 이전에 왜 사람들이 이런 불행한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아쉽다. 우리나라 사람들 개개인이 어떤 부분에서 절망을 느끼고 병들어 가는지를 천천히 조명하다보면 원인과 해결책은 의외의 부분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자살이라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 부끄러운 자살률을 개인과 한 가족의 비극으로만 치부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부대끼며 스쳐가는 사람은 많지만 마음을 터놓을 사람은 줄어드는 현실, 고질적인 경제난, 성과 중심주의 사회 분위기가 팽배한 한국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비극은 개인이 아닌 곧 사회적 타살에 있는 건 아닐까. 죽음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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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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