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어린 예승 역을 맡은 아역배우 갈소원과 임민섭 프로듀서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어린 예승 역을 맡은 아역배우 갈소원과 임민섭 프로듀서 ⓒ 임민섭


2013년 첫 1000만 영화가 나왔다. <7번방의 선물>이 그 주인공이다. 1000만 명이 넘는 이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관객과 '소통'했다는 의미다. 적어도 이런 결과를 통해 <각설탕> <챔프>에 <7번방의 선물>까지 만든 이환경 감독은 '착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소신을 지키게 됐고, 류승룡 오달수 박원상 김기천 정만식 김정태 박신혜 갈소원 등은 '천만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만 결코 감독 혼자는 만들 수 없다. <7번방의 선물> 또한 마찬가지. 이 영화에는 지금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감독과 배우 외에도 중요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스태프'다. 개봉 시기가 늦춰지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들은 그저 영화 말미 엔딩 크레딧에 이름 석 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가슴 벅차했다.

그중 <7번방의 선물>의 프로듀싱을 맡은 임민섭 프로듀서는 촬영 현장과 투자사, 제작사 등을 오가며 영화가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엄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촬영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일하는데 행여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을까 꼼꼼하게 챙기는 것도 그를 포함한 제작 부서의 몫이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지만 잘하면 본전이요,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욕먹기 일쑤다.

"<특수본> 막바지 때쯤 제안을 받았다. 시나리오가 재밌어서 하게 됐다. <특수본>이 액션물이라 위험한 적도 많고, 로케이션도 많아서 현장 자체가 힘들었다. 하지만 <7번방의 선물>은 대부분 세트 촬영이겠더라. '좀 여유롭게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공부해서, 작품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웬걸. 지금까지 했던 영화 중 제일 힘들었다.(웃음)"

스포트라이트 옆 어두운 곳엔 스태프의 '책임감' 있었다

 영화 <7번방의 선물> 포스터

영화 <7번방의 선물> 포스터 ⓒ NEW

<7번방의 선물>은 2차례나 개봉이 미뤄졌다. 원인은 태풍. 세트가 무너졌지만, 천재지변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11월에 개봉하려다 다시 연말로, 그때까지 영화가 완성되지 않아 결국 2013년 1월 빛을 봤다.

개봉 당시에는 배우도, 감독도 시기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천운'이었다. 개봉 후 무대 인사를 하면서 임민섭 프로듀서는 관객의 반응을 몸소 느꼈다. 임 프로듀서는 "대놓고 울 수 있는 영화, 부모들이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되었더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참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일단 감독님의 연출력이 빛을 발했고, 배우들 또한 자신의 최대치를 했다고 생각한다. 초반에는 류승룡 선배가 캐릭터를 잡는 데 힘들어했다. 항상 메모하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주위 사람들과 의논했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연기의 퀄리티가 올라간 게 아닌가 싶다. 너덜너덜해진 시나리오를 보면서 '류승룡이라는 배우가 잘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아니구나. 이렇게 전면에 나서서 상의하고 조율하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스태프들의 얘기도 안 할 수가 없다. 촬영 감독, 조명, 미술, 의상, 분장, 소품 할 것 없이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다. 분위기가 좋지 않을 법도 한데 어느 하나 튕겨져나가지 않았다. 열정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희생했다. 큰 그림을 위해서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한 거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었다. 촬영이 지연됐기 때문에 논리대로 따지면 스태프들이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얘기 없이 영화를 끝까지 완성해줬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은 스태프들을 향한 시선이나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다."  

제작부 막내에서 프로듀서 되기까지 "다시 태어나도 같은 선택"

 영화 <7번방의 선물> 임민섭 프로듀서

임민섭 프로듀서 ⓒ 임민섭


초등학교 때부터 극장에 가는 게 행복했던 소년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그러기를 4년. 당시 <처녀들의 저녁식사> 연출부였던 중학교 동창 김태경 감독의 제안으로 <태양은 없다>(1999) 제작부 막내로 들어갔고, 스크린을 스쳐 가는 자신의 이름을 보는 순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임민섭 프로듀서는 <안녕 유에프오> <사랑따윈 필요없어> <므이> 등을 거쳤고, 본격적으로 프로듀서를 맡아 <채식주의자> <페스티발> <특수본> <7번방의 선물>을 만들었다. 5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한 셈이다.

"프로듀서라는 직업의 매력은 감독만큼 뼈를 깎는 고통의 창의력을 요하지 않고, 감독보다 많은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에서 연출을 공부하며 단편영화를 찍어서 상도 받았지만 난 지금도 감독이 될 생각은 전혀 없다. 다시 태어나도 무조건 이 일을 택할 거다. 일단 현장이 좋고, 기획 의도를 영화로 대변해서 많은 사람이 보게 하는 것만큼 희열 있고 재밌는 일이 있을까 싶다. 다만 다시 태어난다면 대학은 한 번에 가고 싶다.(웃음)"

임민섭 프로듀서의 지론은 "내가 하는 일을 티 내지 말자"이다. 영화는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결합. 그 중 보이지 않는 부분을 담당하는 이가 프로듀서요, 제작부다. 이쪽저쪽의 하소연을 듣고, 때론 싫은 소리도 해야 하는 존재라 농담처럼 "나는 누구를 붙잡고 위로받아야 하나"라고 얘기할 때도 있다. 행여 흔들리는 모습을 들킬까 싶어서 현장에서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표정을 감추고, 머리 아픈 일도 가득하지만 그의 역할은 '평온한 현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스크린 너머 현장을 바라본다.

'미래의 프로듀서'를 위한 '선배'의 조언

"한 우물을 파라. 일단 정확히 목표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일을 하는지 명확하게 들어서 파악한 후에 하고 싶고, 적성에 맞는 포지션을 택해야 한다. 그리고 순리대로 가라. 지름길로 가려고 하지 말고, 막내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가야 나중에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에게 제대로 지시할 수 있다. 포지션을 한 번 정했으면 힘들어도 끝까지 업종을 변경하지 말고. 이것저것 들쑤시면 아무도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론이 바탕이 되면 좋겠지만, 그보다 현장에서 배우는 실무가 큰 도움이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 만큼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어도 깨지고 느껴야지. 나 역시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느끼고 배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을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지, 공부해서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힘들어도 간절히 원한다면 길은 열릴 것이다."


==== 2013년 첫 천만 영화된 <7번방의 선물> 특집 기획기사 ====

'관대한' 관객 있어 '7번방의 선물' 천만도 가능했다
천만 쾌거 '7번방의 선물'의 흥행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7번방' 천만 주역 임민섭 PD, 스크린 너머 현장을 보다

7번방의 선물 임민섭 류승룡 이환경 천만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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