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극장에서 열린 SBS드라마스페셜 <그겨울 바람이 분다>제작발표회에서 노희경 작가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SBS 드라마스페셜 <그겨울 바람이 분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노희경 작가 ⓒ 이정민


13일, 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첫 선을 보인다. 톱스타 조인성과 송혜교의 드라마 컴백작으로 일찌감치 화제가 된 이 드라마는 2013년 SBS 최고 기대작 중 하나로 손 꼽히고 있다. 이제 안팎의 관심은 과연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지에 집중되고 있다. 조인성-송혜교라는 보기 드문 조합을 현실화시킨 만큼 흥행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 특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집필을 맡은 노희경 작가의 마음도 그 어느 때보다 초조하지 않을까 싶다.

혜성처럼 등장했던 드라마 작가 '노희경'

1995년 MBC 베스트극장 <세리와 수지>로 드라마 작가의 첫 발을 내딛은 노희경은 간결하고 직설적인 대사, 치밀한 상황 설정,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자랑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다. 연이어 그는 MBC 단막극 <엄마의 치자꽃>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발표하며 평단의 열띤 호평을 이끌어냈고,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암에 걸린 엄마와 그 가족들의 삶을 담담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1995년 작 <엄마의 치자꽃>과 1996년 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아직까지 노희경을 대표하는 명작으로 남아 있는데, 그는 이 두 작품을 통해 '평생 존경하고 사랑하는' 배우 나문희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나문희는 <내가 사는 이유><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굿방이 솔로><그들이 사는 세상><빠담빠담> 등 노희경 사단의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듬해 노희경은 MBC <내가 사는 이유>로 첫 장편 드라마에 도전한다. 1970년대 마포를 배경으로 깡패와 작부 등 소시민들의 삶과 사랑을 실감나게 그려낸 이 작품으로 노희경은 MBC연기대상 작가상을 수상하며 훌륭한 장편 신고식을 치를 수 있었다. 업계 선배들의 반응도 좋았다. MBC 드라마의 대모격인 김정수 작가는 이 드라마를 보고 "노희경은 심지가 굳은 작가"라며 칭찬했고, <옥이이모><은실이>를 집필한 이금림 작가 역시 "맑고 따뜻한 눈을 가진 작가"라는 좋은 평을 내린바 있다.

이런 평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노희경은 운명과도 같은 작품 KBS <거짓말>을 세상에 내놓으며 자신의 이름값을 공고히 했다. 배종옥·이성재·유호정 주연의 불륜극 <거짓말>은 인간 내면의 감성을 치밀하고 지독하게 파고들며 시청자들을 전율케 한 수작 중의 수작이었다. 시청률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골수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마니아'가 형성된 것도 한국 드라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희경이 지금까지 마니아 드라마의 원조라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노희경이 <거짓말>을 통해 자신의 '페르소나' 배종옥을 만났다는 것이다. 작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멱살을 잡고 싸울 만큼 신경전을 벌였'던 그들은 <거짓말> 이후, 둘도 없는 친구이자 파트너로 돈독한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배종옥은 이 인연을 바탕으로 <바보 같은 사랑><꽃보다 아름다워><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그들이 사는 세상><그 겨울, 바람이 분다>까지 노희경이 집필한 대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시청률과는 인연이 없었던 '노희경 드라마'

 SBS 새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공식 포스터

SBS 새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공식 포스터 ⓒ SBS

이처럼 노희경은 공고한 마니아층을 바탕으로 매번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작가지만, 유독 시청률과는 인연이 없었다. SBS <화려한 시절>이나 KBS <꽃보다 아름다워> 정도가 그나마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톱스타들이 가장 일해보고 싶어 하는 작가 중 한명이자 한국에서 손꼽히는 높은 고료를 받는 그가 자신 있게 내놓을만한 흥행작 한 편 없다는 건 놀라우면서도 재밌는 일이다.

'노희경 드라마'의 흥행 부진은 1999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배용준, 김혜수 등 보기 드문 톱스타급 캐스팅을 성사시키며 20% 후반대의 높은 첫 방송 시청률을 기록한 이 드라마는 방송 6회만에 경쟁작에 추월을 허용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당시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경쟁작은 최고 시청률 53.1%를 기록한 심은하 주연의 <청춘의 덫>이었다.

2000년 <바보 같은 사랑>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MBC <허준>을 상대로 첫 방송 시청률 1.8%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노희경은 이 시청률을 보고 "10.8%인데 0이 빠진 줄 알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애국가 시청률보다 더 낮은 이 시청률은 한국 드라마 방송 역사상 최저 시청률로 기록됐고,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외에도 이미숙-류승범 주연의 <고독>, 천정명-윤소이 주연의 <굿바이 솔로>, 현빈-송혜교 주연의 <그들이 사는 세상>, 정우성-한지민 주연의 <빠담빠담>까지 노희경의 드라마 대부분은 흥행에 실패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출연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손에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항간에서는 노희경을 두고 '시청률에서 자유로운 작가'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드라마 작가는 시청률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직업이다. 노희경 역시 자신의 저서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에서 저조한 시청률로 힘들어 할 때 "희경 씨는 하늘이 참 사랑하나봐. 큰 사람 되라고, 그러니까 시청률을 안 주지"라던 나문희의 다독임이 달콤한 위로가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노희경,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 명예회복 노린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흥행여부는 노희경에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동안의 부진을 설욕할 절호의 기회일뿐더러, 드라마 작가로서 자신의 흥행력을 재확인시켜 줄 시점이기 때문이다.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조인성이 군 제대 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송혜교 역시 5년 만에 TV 브라운관에 복귀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캐스팅만 보자면 경쟁작들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방송사의 지원도 전에 없이 전폭적이다. 대규모 제작발표회와 시사회를 열었을 뿐 아니라, 틈날 때마다 예고 영상을 광고로 내보내고 있다. 여기에 13일에는 2회 연속 방영이라는 파격 편성까지 기획했다. 새롭게 시작되는 수목 드라마 대전에서 반드시 승기를 잡겠다는 의지의 피력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드라마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SBS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31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극장에서 열린 SBS드라마스페셜 <그겨울 바람이 분다>제작발표회에서 오수 역의 배우 조인성과 오영 역의 배우 송혜교가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SBS 드라마스페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오수 역을 맡은 배우 조인성과 오영 역의 배우 송혜교 ⓒ 이정민


노희경 스스로도 욕심을 접었다. 보조 작가들을 대거 충원했을 뿐만 아니라, 방송사와 연출자가 대본을 수정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토씨 하나 바꿀 수 없었던 대본을 자랑하던 노희경이 보다 대중성 있는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한 셈이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전작보다 '덜' 마니아적일거란 기대도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우선 대진운이 좋은 편은 아니다. MBC <7급 공무원>이 15~1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 KBS는 장혁-이다해를 앞세운 <아이리스2>로 안방 공략에 나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각 방송사가 심혈을 기울여 편성한 기대작인 만큼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선 피말리는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수목 드라마 시장자체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작년 하반기 최고 화제작 중 하나였던 KBS <착한남자>조차 시청률 20%의 벽을 넘지 못하고 끝났을 정도로 최근 수목 드라마 대부분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선 한정된 시청률 파이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편, TV를 떠난 시청자 층을 다시 끌어 들여야 하는 부담까지 감수해 내야 하는 셈이다.

이처럼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과연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까. "드라마는 꼭 재밌어야 한다. 굳이 재미없는 걸 이 재미없는 세상에 쓸 필요가 있나 싶다"던 드라마작가 노희경이 이번에야말로 그토록 고대하는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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