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방영한 KBS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 한 장면

지난 10일 방영한 KBS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 한 장면 ⓒ KBS


지난 10일 방영한 <내 딸 서영이> 44회에서 간통죄로 몰린 차지선(김혜옥 분)의 에피소드는 예상대로 진행됐다. 행여나 아내가 불륜 사건에 휘말린 것이 세상에 들통이 날까 봐 걱정된 강기범(최정우 분)은 아들 우재(이상윤 분)와 이혼한 서영(이보영 분)을 시켜 아내 사건을 조용히 잘 처리하라고 당부한다. 결국 차지선 여사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은 서영이 몫이다.

뜬금없이 간통 사건에 휘말린 차지선의 위기는, 서영이와 우재(이상윤 분)의 재결합을 트기 위한 이야기의 물꼬로 보인다. 그런데 차지선의 간통 사건은 서영이의 기지로 예상외로 쉽게 해결된다. 대신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남편에게 화가 난 차지선이 이혼을 선언하며 더 큰 갈등으로 번졌다.

시댁에서 내쫓긴 며느리가 결국 시댁의 위기를 해결해준다는 설정은 그동안 아침, 주말, 일일 드라마에서 흔히 본 소재일 뿐이다. 하지만 기존 주말 드라마에서 자주 본 익숙한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색다른 요리법으로 그릇에 담아내는 <내 딸 서영이>의 사건 풀어내는 솜씨는 역시 달랐다.

서영이가 없는 짬을 내 차지선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제비 부부를 퇴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영이를 대하는 강기범 부부의 태도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이 틈을 타 차지선은 집을 나갔고, 애써 덤덤한 척 아내의 가출을 내버려뒀던 강기범의 속은 날로 타들어 간다.

 지난 9일 방영한 KBS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 한 장면

지난 9일 방영한 KBS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 한 장면 ⓒ KBS


애초 강기범과 차지선은 사랑 없는 정략결혼으로 이뤄진 사이다. 거기에다가 강기범은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캐릭터로 설정되어있다. 억울하게 간통녀로 몰린 아내를 걱정하기보다 행여나 밖에 소문이 퍼질까 봐 이혼시킨 전 며느리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냉혈한이다. 

막강한 재력과 능력을 거머쥔 강기범은 운영하는 사업체에서도, 집안에서도 자기 뜻대로 군림하고자 한다. 가부장적 세계관을 가진 강기범에게 아내와 자식들이 자기 뜻을 거스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딸 서영이> 강기범은 기존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했던 완고하고 권위적인 전형적인 가부장적 캐릭터다. 가족 내에 아버지의 권위가 추락하는 시대임에도 강기범은 막강한 경제력을 앞세워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소불위 가장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경제적 무능으로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실종된 삼재(천호진 분)과 민석(홍요섭 분)에 비해 강기범이 집안 내 행사하는 권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런데 자신을 하늘처럼 섬겨야 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서서히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설날 명절 텅 빈 저택에서 자기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사실을 알게 된 강기범은 그제야, 수십 년간 아내 혼자 겪어야 했던 극도의 외로움을 체감으로 느끼게 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 한 가족 구성원 내에서 유일하게 경제적 능력이 있었던 가장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변했고, 유일하게 경제권을 쥐고 있는 가장과 어른임을 내세워 아내와 자식들 위에서 군림하고자 하는 발상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기존 KBS 주말 홈드라마를 즐겨보는 기성세대에게 "패륜아"라는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 <내 딸 서영이>가 기존 주말 드라마와 달리 젊은 세대들로 지지층을 넓힌 배경에는 서영이와 아버지가 겪는 갈등의 상징성이 있었다.

극 중 서영이는 똑똑한 재원이지만, 사사건건 서영이의 발목을 잡는 아버지 때문에 이루고 싶은 꿈이 좌절되는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자신의 거듭되는 괴롭힘에 절규하는 딸의 눈물을 보고 정신 차린 아버지는 그동안 딸을 힘들게 했던 지난날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기 이른다.

 지난 10일 방영한 KBS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 한 장면

지난 10일 방영한 KBS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 한 장면 ⓒ KBS


아무리 못난 부모라고 해도 자식은 결코 부모를 버릴 수 없다는 기존 가부장적 질서에 비추어볼 때, 부모를 등진 서영이는 호래자식에 가깝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를 버린 서영이의 불효를 탓하기보다, 아버지와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는 서영이의 힘든 사정을 촘촘히 그려낸다. 아버지를 이해해야 하는 서영이의 희생만 강조하기보다 달라진 삼재를 통해 기성세대 또한 자식 세대에 발맞춰 나아가야 하는 인식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반면 경제력을 앞세워 가부장적 리더십 유지를 공고히 하고 있는 기범은 오직 아내와 자식들의 복종만을 강요한다. 기범에 대한 가족들의 반발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이상 기범의 가부장적 가족 운영에 참을 수 없었던 아내 지선은 집을 나간다.

간통녀로 몰린 차지선의 에피소드는 서영과 우재 가족들을 다시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였다. 그러나 <내 딸 서영이>는 예측 가능한 전개를 서영이와 우재 가족들의 재결합 수준에서 엉성하게 봉합하는 수습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서영이를 부르는 촌극을 벌이긴 했지만, 차여사의 이혼 선언으로 이어진 혀를 찌르는 의외의 전개는 어쩌면 서영이, 삼재와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던 강기범의 가부장 판타지의 허울을 한 꺼풀씩 벗겨 내려간다.

우리 아버지는 요지부동이라는 우재의 회의적인 반응과 달리, 서영은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어." 하면서 예전과 달라진 삼재의 변화를 떠올린다.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 무작정 가족들을 짓누르기만 했던 강기범은 변해야 하고, 또 변할 것이다. 서영이의 말대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도저히 구제불능일 것 같은 서영이의 아버지도 환골탈태하지 않았나.

무작정 자식 세대의 어른 세대의 복종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 간의 허심탄회한 이해와 포용을 강조하는 드라마 <내 딸 서영이>. 그 어느 때보다 세대갈등이 극심해지는 시대, 완벽한 해법은 아니지만, <내 딸 서영이>가 그려내는 부모와 자식, 그리고 무늬만 가족이었던 부부의 진정한 화합 과정이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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