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사람들이 자꾸 종합편성 채널로 리모컨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는 편하기 때문이다. 지상파에서는 진부하다고 밀려난 콘셉트와 스타일이 종편에서는 한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익숙함에는 살아온 세월 속에서 더 익숙해진 사고와 관념의 스타일 또한 자리 잡는다. 새롭게 맞출 필요도,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는 그런 것들. 우리는 이런 것을 '보수적'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보수적인 것을 꼭 종편 채널에서만 만날 필요는 없다. 젊은이들이 조금씩 외면하기 시작하는 지상파 방송 시간대는 자꾸 중장년층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맞추려고 애쓴다. 그런 의미에서 4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 '홍석천 편'은 조금 용감했고, 모처럼 '힐링' 캠프다웠다.

 지난 4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

지난 4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 ⓒ SBS


이경규는 방송 중 여러 번에 걸쳐 "나는 홍석천을 게스트로 부르는 것을 반대했다"고 밝혔다. 그 말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지배적으로 자리한 이른바 '보수적'인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여배우가 시상식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성적 성향을 밝히는 현재, 홍석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역설적 토닥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경규의 질문은 더욱 돌직구성이었을 수 있고, 홍석천은 모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홍석천은 바로 몇 주 전에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그의 표현처럼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라디오스타>라는 웃자고 판을 벌이는 곳에서 홍석천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을 희화화하며 사람들이 조금은 편하게 '성적 소수자'를 바라보게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힐링캠프>는 그저 웃고 떠들며 홍석천을 편하게 보자는 방식을 버렸다. 대신 그 누구보다 '보수적'이라며 편견 어린, 그리고 일상의 우리도 사실은 궁금했던 질문을 마구 던졌다. 동성애는 정신병인가? 동성애자의 사랑은 어떤가? 당신의 부모님은 당신을 이해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홍석천은 '성적 소수자'로 대한민국을 사는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지난 4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

지난 4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 ⓒ SBS


대한민국 대표 '게이'인 홍석천의 입을 빌려 알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어느 나라는 동성 결혼이 허용되고, 동성애 부부의 입양이 허용되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성적 취향이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버려야 하고, 그들의 죽음조차도 '성적 비관'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덮어져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그저 우리가 무심히 혹은 그저 편하게 자신의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가 사회적 압사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그것이 본원적으로 뇌의 형성 과정에서부터 타고난 것이라던가, 청소년기 질풍노도의 감정에서 그런 것이거나 구분조차 할 시간도 없이 선이 그어지고, 가족과 친구, 사회 밖으로 밀쳐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가 쉽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덧붙여 그저 "동성애를 이해할 수 있어"라고 편하게 생각한 뒤에 숨겨진 많은 사실과 편견을 깨닫게 되었다.

홍석천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게이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열 배 이상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던 이 '성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통해 굳어 있던 우리 뇌의 한 부분이 조금은 말랑말랑해졌다.

그 누구보다 '보수적'이라고 주장한 이경규도, 스스로 깨어있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보수적인 면이 많다는 김제동도, 그리고 그 '보수'에 한 표를 더한 한혜진도 홍석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 홍석천이 자신이 '게이'임을 밝히고, 지상파를 통해 그것을 이해받을 수 있기까지 13년의 세월이 걸렸다.

힐링 캠프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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