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FC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희망FC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박기석


[기사 수정 : 13일 오후 3시 48분]

유난히 한파가 기승을 부린 올 겨울. 찬 공기는 남쪽 지방인 경남 창원에까지 스며 있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중리초등학교는 낙동강 지천과 100m 정도로 가까워 바람까지 자주 분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이곳에 축구 장비를 갖춘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모여든다.

1월의 한 일요일, 오늘은 일곱명이 전부다. 축구를 하기에는 적은 숫자지만 개의치 않는다. 초등학생답지 않게 눈빛이 매섭다. 날숨마다 나오는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몸을 풀기 시작한다. 다부진 체격의 감독은 준비 운동부터 시작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공을 잘 간수하기 위한 드리블, 패스된 공을 잘 받을 수 있게 트래핑(trapping, 패스된 공을 발·허벅지·이마·가슴 따위로 멈추게 하는 일)과 리프팅(lifting, 볼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차는 기술) 연습까지. 감독의 훈련 방법과 따라하는 아이들 모두 꽤 전문적이다. 경남 지역에서 공 좀 찬다는 아이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이 축구단의 이름은 '희망FC'이다.

영화감독의 아이디어에서 태어난 유소년 축구단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김태근 감독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김태근 감독 ⓒ 박기석


희망FC는 축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의 감독 임유철(40)씨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그는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경남지부에 사업을 제안했다. 경남지부에서 지원받는 조손 가정, 편부모 가정 등 소외된 계층의 고학년 초등학생(4, 5, 6학년)이 모여 지난 2월 축구단이 꾸려졌다.

당시 경남지부 사업위원장이던 함안 사랑샘지역아동센터장 이은경(여, 47)씨가 단장을 맡았고 축구 지도자 김태근(40)씨는 감독으로 아이들을 선발했다. 축구의 생태를 전혀 몰랐다던 이 단장은 어떻게 축구단을 운영하게 됐을까.

"지금까지는 아동 복지나 교육 등이 모두 어른들의 머리에서 나왔어요.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잘 맞는 것도 있었지만 아닌 것들이 더 많았죠. 저는 정책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욕구, 재능에 맞는 복지사업을 진행하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제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저희가 꼭 성공적으로 정착해야 해요."

이렇게 뽑힌 아이들이 총 19명. 그러나 축구단 운영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경남 곳곳에 살다보니 훈련장소에서 거리가 먼 아이들은 점점 오지 않게 됐다. 저학년인 4학년 학생들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기도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대상이라 부모님들이 자존심 상해 하고 불편함을 느껴 아이들이 억지로 포기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결국 함께 운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현재 열 명 남짓이다.

김태근 감독은 초등학교 때 시작한 축구로 프로선수와 지도자 생활까지 두루 경험했다. 현재는 주중에 회사를 다니며 매주 일요일 김태근 축구교실을, 지난해 2월부터는 희망FC까지 맡고 있다. 희망FC에는 무료로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다부진 체격과 까랑까랑한 목소리와는 달리 김 감독은 항상 싱글벙글 웃는다. 아이들이 훈련에 잘 따라오지 못한다고 해도 혼내는 일은 없다. 인성과 노력은 희망FC 단원에게 실력보다 중요하다.

"다른 데(축구단)서는 실력도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공 못 찬다고 혼나지 않습니다. 연습을 열심히 하고 안 하고 차이로 혼나긴 합니다. 다른 데서는 특별히 칭찬받는 일이 없는데 여기서 연습만 열심히 하고 착하게 생활하면 제가 칭찬을 많이 하니까 애들 눈빛이 달라지죠. 칭찬을 받고 싶다는 눈빛이 보여요."

땀흘리고 축구하면서 천사가 된 아이들

  희망FC 아이들과 축구교실 아이들이 함께 뛴 결과 희망FC는 2012년 유소년축구클럽리그 경남 남동부 리그에서 준우승했다.

희망FC 아이들과 축구교실 아이들이 함께 뛴 결과 희망FC는 2012년 유소년축구클럽리그 경남 남동부 리그에서 준우승했다. ⓒ 희망FC 제공


그러나 김 감독이 호랑이처럼 변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예절을 지키지 않고 버릇없는 행동을 할 때 그렇다. 김 감독은 운동을 할 때나 일상에서나 항상 예의를 강조한다. 황병재(가명, 12)군은 이날 점심식사를 하던 도중 호되게 혼났다.

"병재야. 여기가 네 집 안방이가. 어디 사람들 많은데 누워있노. 퍼뜩 안 일어나나."

병재는 처음 희망FC에 들어올 때부터 무척이나 벌을 많이 받았다. 병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한 티가 많이 났다고 한다. 서로가 날카롭게 반응해 여름에 합숙할 때는 다툼이 많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 관계와 실력이 크게 좋아졌다. 김 감독은 "오늘 또 혼나긴 했지만 병재가 당돌한 태도를 많이 벗었다"고 말했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교육과)는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현실적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은 교류할 친구들이 부족하다, 학원에 가기도 힘들고 집에서 혼자 있기 쉽다,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 운동에 몰두하니 그 즐거움에 빠진 것이다, 운동하는 게 더 즐거우니 자연스럽게 나쁜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라고 분석했다. 아이들이 단체 운동을 하며 사회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희망FC와 함께 운동하는 김태근 축구교실 회원들, 그 부모님들도 희망FC의 팬이다. 축구교실에 갑자기 껴든 희망FC지만 기존 회원들과 잘 어울렸다. 3년째 축구교실에 아들 다찬(10)군을 보내는 빈명진(41)씨의 말이다.

"아이들끼리 위화감은 없어요. 김 감독도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고 정확하게 가르칩니다."

축구교실 부모님들이 희망FC를 응원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실력으로 뽑힌 학생들인 만큼 축구교실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희망FC는 2012년 유소년축구클럽리그 경남 남동부 리그에서 준우승했다.

"요즘에는 클럽축구가 성행합니다. 우리 축구교실도 클럽대회에 출전했으면 했는데 지난해까지는 그러지 않았어요. 김 감독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 거죠. 희망FC 아이들을 맡고부터 축구교실 아이들과 함께 팀을 짜 대회에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축구교실 회원들에게도 도움이 됐죠. 아무래도 희망FC 아이들이 축구교실 회원들보다 전문성이 있거든요."

주위의 관심과 사랑으로 성장하는 '희망FC'

희망FC 선수들이 걱정 없이 운동할 수 있던 것은 지역사회의 도움 덕분이었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경남지부는 아이들이 합숙할 수 있는 장소와 숙식을 제공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지난해 여름방학부터 11월까지 금, 토, 일 거의 매 주말을 함께 지냈다. 그런데 11월 이후로는 예산이 부족해 합숙을 할 수 없게 됐다. 경남 전 지역에서 모이기 때문에 합숙 위주로 훈련을 했던 이들은 잠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단장은 훈련장소를 찾느라 백방으로 뛰었다. 이 때 희망FC의 소식을 듣고 흔쾌히 운동장 대여를 허락해준 곳이 중리초등학교다.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은 학생들이 운동하기 안성맞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남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단 경남FC는 팀 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을 제공했다. 이 단장은 올해 경남FC로부터 추가 지원을 받을 계획이다.

  경남FC가 후원해준 축구 유니폼 세트

경남FC가 후원해준 축구 유니폼 세트 ⓒ 희망FC 제공


"경남FC가 원래 금전적인 지원도 약속했는데 도의 행정이 흔들리니 투자가 원활하지 못했어요. 경남FC는 도지사가 구단주인 도민구단인데 김두관 전 도지사가 사퇴하며 구단주 자리가 공석이었어요. 이제 도지사가 새로 뽑혔고 현재는 도지사와 면담을 요청해둔 상태입니다."  

임유철 다큐멘터리 감독은 희망FC의 활동을 필름에 담아 올 5월 개봉할 계획을 세웠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의 사연을 알리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이 단장은 올해 목표를 경남 지역의 '새싹꿈터' 유치라고 말했다. 새싹꿈터는 폐교를 새롭게 꾸며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들이 캠프나 단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새싹꿈터를 만드는 '드림투게더'는 기업, 정부기관,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 사회공헌 모임이다. KT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등 3개사로 시작해 현재는 24개 회원사가 함께하고 있다.

"드림투게더는 경기도 양평에 새싹꿈터 1호점을 만들었어요. 올해는 영, 호남에 각각 1개씩 새싹꿈터 2, 3호점을 연다고 해 제가 영남권의 새싹꿈터를 유치하려 합니다. 경쟁지인 대구는 이미 사회복지시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죠. 대구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좋은 경험을 할 여건이 충분해요. 경남지역은 이런 시설이 전혀 없어요. 경남지역에 새싹꿈터가 생긴다면 희망FC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지역아동센터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희망FC가 다시 합숙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됐으면 해요."

이 단장과 김 감독은 올해도 변함없이 희망FC를 이끌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의 힘만으로는 힘에 부친다. 아이들의 식사에서 장비 구매 비용까지 언제나 예산이 부족했다. 그때마다 그들의 뒤에는 기업과 지역사회의 도움, 개인 후원이 있었다. 희망FC의 발전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주위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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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통해 받는 원고료 전액을 희망FC에 기부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원고료와 동일한 금액을 추가로 기부합니다.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희망FC 김태근 감독 이은경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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