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심야 예능의 강자 <세바퀴>가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26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2TV <인간의 조건>에 같은 시간대 1위 자리를 내주는 돌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이 예상되기는 했지만 <세바퀴>가 이렇게 쉽게 동 시간대 1위 자리를 뺏길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세바퀴>의 새 진행자로 발탁 된 MC 박명수

<세바퀴>의 새 진행자로 발탁 된 MC 박명수 ⓒ MBC


<세바퀴>의 부진, 박명수에게 남겨진 책무

최근 <세바퀴>는 <인간의 조건>의 편성에 맞서 내부 전열을 가다듬는 시기를 가졌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박명수 기용' 카드였다. 박명수를 통해 재미를 극대화 시키는 한편 관계 설정에 변화를 줘 다양한 캐릭터를 운영하고자 하는 나름의 전략을 펼친 셈이다. 박명수에게도 MBC 간판 예능인 <세바퀴>에 투입된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세바퀴><일밤> 등 MBC 주말 예능을 책임진다는 상징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박명수 효과'가 채 나타나기도 전에 <세바퀴>가 좌초 위기에 몰리고 있다. 첫 방송을 시작한 <인간의 조건>이 생각보다 막강한 전력으로 시청률 경쟁에 뛰어들면서 <세바퀴>는 3년 만에 처음으로 동시간대 1위 자리를 내주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박명수 특집까지 꾸미면서 화려하게 <세바퀴>에 입성했던 박명수로서는 다소 뻘쭘한 상황이 됐다.

물론 <세바퀴>의 부진이 아주 생뚱맞은 일은 아니다. 최근의 <세바퀴>는 방송 5년 차를 넘어서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고, 딱히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기 어려운 상태에 접어든 차였다. 여기에 <인간의 조건>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면서 그동안 곪아 있던 문제점이 터져 나온 것이다. 예상보다 시청자 이탈이 빨랐던 까닭은 <세바퀴>가 예전보다 식상하고 재미없어진 데 기인한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사실은 <세바퀴> 제작진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박명수'라는 카드를 적기에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박명수는 제작진이 기대한 역할을 충분히 해줬어야 했다. 새로운 캐릭터 설정을 통해 프로그램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고, 더욱 역동적인 진행으로 퀴즈쇼 본연의 재미를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한다.

하지만 박명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 비록 두 번째 방송을 마쳤을 뿐이지만 박명수의 한계는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새로운 캐릭터는커녕 <무한도전><해피투게더>에서 늘 봐 오던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차용하고 있고, 패널들과의 관계 설정 역시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바퀴>의 침체한 분위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만한 카드라기엔 너무 '식상'하고 '지루'하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인간의 조건>이 아주 새로운 포맷의 예능을 선보이는 이 때, <세바퀴>가 내놓은 비장의 카드인 박명수가 지금껏 해오던 스타일의 개그를 계속 답습한다는 건 직무유기다. <세바퀴> 제작진의 의도와도 맞지 않을뿐더러 2012년 MBC 연예대상 수상자로서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세바퀴>처럼 큰 프로그램에 MC로 투입됐다면 혁신과 변화는 필수요소다. 제자리에 머무르는 건 퇴보나 다름없다.

 2012년 MBC 연예대상을 수상한 박명수

2012년 MBC 연예대상을 수상한 박명수 ⓒ MBC


쉽지 않은 박명수의 홀로서기, 이번에는 성공할까

박명수에게 <세바퀴>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다. 지금껏 박명수는 유재석과 함께한 프로그램을 제외한 대다수의 작품에서 그리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런 시점에서 잘 나가던 <세바퀴>마저 투입되자마자 부진의 늪에 빠져 버린다면 예능인 박명수의 흥행력에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세바퀴>의 메인 MC로서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펼쳐야 한다.

선행해야 할 작업은 캐릭터 형성과 관계 설정이다. 대신해오던 것 말고 아주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프로그램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휘재와의 앙숙 관계 설정이라든지, 조혜련과의 절친 콘셉트라든지 기존 MC들과 패널들을 충분하고도 폭넓게 사용하면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 좋다. 여러 시도를 하다 보면 좋은 결과는 분명 도출되기 마련이다.

이와 함께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MC로서 무게감을 갖춰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전임 MC였던 김구라는 전체적인 진행은 이휘재-박미선에게 맡기는 대신 게스트들의 말에 적절한 멘트와 리액션으로 프로그램의 빈틈을 메워주면서 긴장감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에 적절히 치고 빠지는 개그로 예상치 못한 웃음까지 유발하는 수완마저 갖추면서 그의 진행은 거의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현재 박명수는 이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이휘재, 박미선은 자타공인 방송가 최고의 베테랑 MC들이다. 분위기를 조율하고 정리하는데 이만큼 능한 파트너들도 드물다. 이들 사이에서 박명수가 할 일은 적재적소의 애드리브와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멘트를 통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지속해서 띄우는 일이다. MC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세련된 방식으로 이를 구현하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박명수가 지금껏 그래 왔듯이 <세바퀴>에서도 안일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의 홀로서기는 이번에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유재석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세바퀴>의 부활을 이끌 선봉장 역할은 반드시 박명수 스스로 자처해서 나서야 한다. 만년 이인자 꼬리표는 이미 작년 연예대상을 통해 떼어버렸다. 이제는 일인자로서의 위엄을 갖춰나가야 할 시기다.

시청자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한다. 이 속에서 박명수 또한 변해야 할 것이다. 변하고, 또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예능계다. '호통 개그'로 지금까지 버텼다는 말은 더이상 칭찬이 아니다. 20년 차 개그맨 박명수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는 과연 이 어려운 때에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세바퀴>의 운명에 박명수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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