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스킨십을 해 오고, 싱글인 자신을 외롭냐며 짓궂게 놀리는 후배 홍석천에 대해 "과거에도 그런 (게이 같은) 느낌이 있었다"고 말하던 김국진은 그의 고생담을 듣고는 이렇게 평했다.

 

"소수라는 것은. 다수도 더 많은 사람이 있으면 소수가 되니까. 차별당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차별하는 건 참 좋아하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비단 김국진 뿐만이 아니리라. 김국진이 '민머리 특집'으로 출연한 홍석천, 엄경환, 윤성호, 숀리, 이 4명의 출연자 옆에 딱 붙자 그는 졸지에 풍성한 머리 숱을 지닌 '소수자'가 되었다. 그리고 <라디오스타>(이하 <라스>) 멤버들은 그것을 개그의 소재로 활용했다.

 

자사 드라마 홍보는 물론 여러 기획 아이템을 소화해 오며 전방위 게스트를 소화하고 있는 <라스>가 2일 선보인 '민머리 특집'은 대놓고 민머리 남자들의 애환을 웃음의 소재로 활용했다는 점 이외에도 특히 눈여겨볼만한 방송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민머리라는 특징은 어느 순간 외모적 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시선을 연결시켜주는 고리로 승화됐다. 그리고 그 중심엔 커밍아웃 1호 연예인을 고수하고 싶다는 홍석천이 자리했다.

 

 

듣도 보도 못한 '민머리 특집'을 성공시킨 <라디오스타>의 활력 

 

사실 '민머리 특집'은 지상파에 오랜 만에 출연한 홍석천의 한풀이처럼 보였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선 오로지 진행자 규현에게 하트를 날리는 그를 제작진도, MC들도 제지할 수도, 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에 대한 공격에도 스스럼없는 리액션으로 응대하는 그는 천상 방송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방송인이었다.

 

민머리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풀어나가며 <라스> 특유의 직설화법들이 난무했던 '민머리 특집'. 엄경환과 외모 순위를 경쟁하고, 후배 윤성호의 공격도 능수능란하게 받아치는 홍석천의 예능감은 특히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세상에 잘 알려진 그의 성정체성을 놓고 농담과 직설이 오고가는 <라스> 특유의 분위기는 누구에게는 불편하고, 누구에게는 무리없을 수 있을지언정 지상파에서 좀체 볼 수 없는 풍경임엔 틀림없었다. 유세윤이 "이런 미국식 유머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홍석천만 가능할 것"이라고 인정한 것 처럼.

 

그리고 그의 유머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깨나가는 과정일 수 있다는 걸 일깨운 것도 '민머리 특집'의 또 하나의 수확이다. 김국진에게 "멋있다"를 연발하는 홍석천을 두고 윤종신은 "우리가 가진 편견인 것 같다. 홍석천이 멋있다고 하면 크게 반응할 필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에 이어지는 "이 몸을 어디다 쓰겠냐"고 응수하는 홍석천은 이미 세상의 편견에 무뎌지고 또 그간의 아픔을 체화해낸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에 대한 홍석천의 조언들은 분명 새롭진 않지만 지상파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그것이었다.

 

 

소수자를 환기시킨 <라디오스타>와 홍석천의 궁합 

 

"민머리 얘기 안 하려면 가세요"라던 윤종신의 딴죽은 분명 <라스>만의 개성이었다. 여기에  출연자들에게서 홍석천의 유아인과의 광고 에피소드와 엇비슷한 윤성호의 유지태와의 과거 일화, 그리고 김구라, 김동현 부자와 염경환, 염은률 부자와의 비교를 이끌어내는 재간이 곁들여지며 '민머리 특집'은 새해에도 <라스>가 굳건할 것이란 믿음을 던져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어쩌면 초기부터 <무릎팍도사>에 밀리며 "다시 만나요, 제발"을 갈구하던 <라스>는 이렇게 신인이나 묻혔던 게스트나 주목하지 않았지만 <라스>만의 기획으로 되살릴 수 있는 게스트들을 섭외할 때 시너지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머리 특집'이 케이블에서 열심히 활동 중인 홍석천의 방송인으로서의 끼와 무궁무진한 소재가 지상파에서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반갑다. 다음 주로 예정된 '민머리 특집' 2회가 각자의 애환과 웃음을 다루는 동시에 '차별'에 대한 고민까지 좀 더 던져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마이너 정신'이야 말로 그렇게도 부르짖던 '<라디오스타>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그것 아니었던가.

 

2013.01.03 14:32 ⓒ 2013 OhmyNews
라디오스타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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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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