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의 2012년 한 해를 돌아보며 다섯 개의 히트 유행어를 꼽아 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단 이번 분석은 파급력 컸던 유행어를 중심으로 한 것으로, 코너의 파급력으로 분석하면 그 결과는 달라진다. 동시에 2012년 하반기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졌음을 밝힌다. 이 와중에 "감사합니다~람쥐"(꺾기도)는 아쉽게 탈락했다.

다섯 개는 "궁금하면 오백 원"(거지의 품격), "고뤠?!"(비상대책위원회), "사람이 아니므니다."(멘붕스쿨), "브라우니 물어!"(정여사), "소고기 사묵겠지"(어르신)로, 나열된 순으로 글은 진행됨을 일러둔다.

"궁금하면 오백 원", 매력적인 커뮤니케이션 기법

 <거지의 품격>에서 김지민, 허경환(우)

<거지의 품격>에서 김지민, 허경환(우) ⓒ KBS


드라마 <신사의 품격>(SBS) 제목을 패러디한 코너 '거지의 품격'은 "아, 나 이 그지가"라는 말로 일반인이 가진 거지의 비루한 삶에 대한 혐오감을 노출하다가도 '꽃거지'(허경환)라는 스타일리시한 잘생긴 거지의 매력이 어느새 매드 소울 차일드의 'Dear'가 흐르며 팬덤을 부르는 아우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 혐오감과 끌림이 뒤섞인 채 커피전문점 커피를 마시는 보통의 여자와 무일푼 거지 간의 '밀당'이 생겨난다. 여기에는 '궁금하면 오백 원'이라는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생계의 방식까지 품위 있게 유지하는(?) 거지의 품격이 형성된다.

이후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 원"은 일상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잠시 문장의 단락을 끊고 한층 주의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보통의 구문이 되었다. 그냥 거지가 아닌 '꽃거지 허경환'의 품격으로 격상한 채, 대화에 흥미를 돋우는 유행어가 된 것이다.

무안함 넘기는 상관의 언어유희, "고뤠?!"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 ⓒ KBS


감탄사이면서 의문부호가 결합한 "고뤠"(그래?)는 '비상대책위원회'란 코너에서 매회 김준현 소장이 어간 '그'를 '고'로 호흡을 바싹 당겨 발음한 데 이어 어미 '래'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단 두 음절만으로 집중도를 상당히 높였다.

'고뤠'는 시민의 생사가 걸린 매우 급한 상황에서 실현될 수 없는 이상적인 안을 내놓고, 부하의 이의 제기에 문득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무안함을 놀라움으로 넘기며 사용한다.

원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작은 행위가 운명 전체를 바꾸는 경찰 본부장인 김원효의 말이 중심이 된 코너였으나 김준현의 '고뤠'가 갑작스럽게 튀어 오르며 코너의 중핵이 되었다.

김준현은 자신의 시간에 굉장한 관객의 집중을 끌어당기는 측면이 있다. 다만 최근 '네가지'에서 그의 이야기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으나 다소 지루한 편이다.

"사람이 아니므니다" 소수자의 항변

 <멘붕스쿨>(방송캡처)에서 박성호(좌), 송준근

<멘붕스쿨>(방송캡처)에서 박성호(좌), 송준근 ⓒ KBS


'갸루상 박성호'는 스스로 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의 영역으로 건너뛴다. '멘붕'을 부르는 그의 존재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상식에서 이탈한다.

박성호는 짙은 눈 화장이라는 특정 메이크업의 고수를 통해 갸루족의 정체성과 공통분모를 형성하며 세일러문의 복장을 고수한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성적으로 모호한 4차원 세일러문은 선문답과도 같은 선생의 '존재 물음'에 "사람이 아니므니다"로 답변하며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 바로 이 존재는 단지 갸루족이 아닌 '봉숭아학당'에서의 '스테파니'를 잇는 박성호만의 독창성(singularity)을 가진다.

이 친근하지 않은, 사람이 아닌 갸루상이라는 캐릭터는 '브라우니'와 달리 곳곳에 편재하지 않으며 소수자적 정체성을 가진 스타로서 등장만으로도 곧 사건이 된다. 사람이 우리가 아는 상식 선상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라면, 이는 소수자에 대한 억압임을 갸루상의 존재는 넌지시 일러준다.

'소통의 아이콘', "브라우니 물어!"

 <정여사>에서 브라우니(중앙)

<정여사>에서 브라우니(중앙) ⓒ KBS


브라우니는 정태호의 극적 환영 속에 명명 행위를 통해 생명을 얻는다. 하지만 이는 일회적 사건이었다. 브라우니는 일종의 상품이었던 것이다. 곳곳에 편재한 브라우니는 다양한 스타들의 커플 샷에 함께 등장하며 동해 번쩍 서해 번쩍했다. 입을 다문 브라우니는 말하지 않는 '케~시크함'으로 우리와 동등선상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스타가 된 브라우니는 단순 상품이 아닌 물신적 존재가 됐다.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닌 존재', 개의 형태로서 관리 비용이 들지 않는 일종의 말 없는 반려동물이자, 그가 직접 말하는 대신, 우리에게 말하게 하는 현대인이 지닐 수밖에 없는 소통의 절박함과 절절함을 담아낼 수 있는 매체이자 셀레브리티 아이콘이 됐다.

"소고기 사 묵겠지", 동물화된 현대인의 욕망

 <어르신>에서 김대희(KBS 개그콘서트 방송캡처)

<어르신>에서 김대희(KBS 개그콘서트 방송캡처) ⓒ KBS


쇠고기는 소위 비싼 고기다. 그래서 쇠고기를 사 먹는 것은 송년회나 뒤풀이같이 특정 프로젝트나 함께 했던 일이 끝났을 때 함께 하는 특별한 의식(意識)의 차원에서 거론되는 음식이기도 하다. '어르신'에서 김대희의 결국은 "소고기 사 묵겠지"(쇠고기 사 먹겠지)로 끝나는 심드렁한 투의 이 유행어는 일이 끝나고 시작됐다 다시 끝나는 '평이한 순환적 인생의 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점점 개인적 의식이 팽배해지며 탄탄한 공동체의 형태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쇠고기는 회포를 풀고 공동체의 결합 의식을 일시적으로 만드는 현대인의 회식 성격의 자리에서 중요한 상징물로 떠오른다. 한편 가장 먹고 싶은 것 하면, 쇠고기의 일종인 꽃등심이 떠오르듯 쇠고기는 단순 배부름의 차원을 떠나 개인적 쾌락을 심도 높게 달성하는 기제가 된다.

그리고 더한층 들어가면 이러한 고기 말고는 크게 우리의 고차원적 심리적 만족을 실현할 것이 없어진 디스토피아적 사회의 일면을 드러낸다. 이 심드렁한 말투는 그래서 이 "소고기 사묵겠지"로 귀결되는 '변화 없는 현실'을 나타내는 데 적격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그콘서트 정여사 어르신 비상대책위원회 멘붕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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