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6년>에서 조직폭력배 곽진배 역의 배우 진구가 4일 오전 서울 사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26년>에서 조직폭력배 곽진배 역의 배우 진구가 4일 오전 서울 사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26년> 촬영 현장을 여러 번 찾아갔을 때 배우 진구에 대한 칭찬은 항상 어디선가 들을 수 있었다. 무술팀에서든 미술팀에서든 항상 '진구 타령'이었다. 요즘 한창 '핫'한 아역 스타 여진구가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면 <26년> 관계자들의 마음은 '여진구가 아닌 그냥 진구'가 훔치고 있었다.

<26년> 속 '그 사람' 잡던 건달들, 이미 한 식구였다

그들이 가장 높이 산 진구의 열정은 바로 영화 속 캐릭터인 '건달' 곽진배 역할에 충실했던 것 이상으로 현장 사람들을 잘 보듬었기 때문이었다. 배우가 물론 연기를 잘해야 하는 게 중요하지만,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어 주는 것 또한 주연 배우의 중요한 역할인 것. 그래서 연배가 많고 경험이 많은 배우 중에선 동료 배우뿐만 아니라 현장 스태프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대규모 인원이 맞붙는 몹신은 쉽게 배우들이 흥분할 수 있는 만큼 위험한 촬영이다. 강약 조절과 동시에 감정의 조절도 필요하지만, 충분히 합의가 안 되면 배우들이 쉽게 부상을 당하는 촬영이기도 한 것. 곽진배가 속한 수호파는 늘 이런 위험에 처해있었지만 한 번의 부상도 나오지 않았단다. 그만큼 이미 이들의 결속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수호파 식구들이 쉬는 날을 포함해서 90일 정도를 촬영했어요. 그중에 80일 정도를 저도 현장에 상주했거든요. 마침 제집이 공사를 하는 상황이라 집에 있는 게 불편해서 나가 있었어요(웃음).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수호파로 출연하는 배우들과 어울렸죠.

영화 촬영이 주연 배우마다 개인 분량이 많아서 외로울 수 있었어요. 곽진배 역시 외로울 수 있었는데 제가 오히려 그들 덕에 늘 재밌게 지냈죠. 촬영이 없을 때면 술도 먹고 늘 같이 일어나고 같이 잤어요. 숙소 앞 짬뽕집, 한정식집이 우리 아지트였죠.

오히려 우리끼리 분위기를 밝게 해서 촬영에 임했어요. 광주 항쟁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아 얘기하지 않자는 동의도 있었고요. 이번 영화에서 제 에너지의 절반은 수호파 배우들이 만들어 준 거 같아요. 육체적으로 힘든 촬영,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을 할 때는 늘 그들이 모니터에 모여 있더라고요. 서로 보는 눈빛이 따뜻했어요. 그래서 같이 갈 수 있었죠."

 영화 <26년>의 한 장면. '광주 건달' 곽진배 역의 진구.

영화 <26년>의 한 장면. '광주 건달' 곽진배 역의 진구. ⓒ 청어람


진구의 자신감, "연기로 굶어 죽진 않겠지!"

진구는 "큰 부를 누리고 싶은 생각도 없고, 빈곤하지만 않으면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 말은 연기력보다 인지도 면에서 다소 떨어진다는 세간의 평에 대한 진구 스스로의 일갈이기도 했다.

"인지도 면에서 저를 두고 너무 뜸하다 생각할 수 있어요. 근데 흥행작을 안 찍어서 그렇지 저 지난 10년 동안 딱 석 달 쉬었어요(웃음). 인지도 문젠데 그걸 제가 노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영화의 흥행 여부를 어떻게 미리 알고 출연하나요? 거대 블록버스터도 망할 수 있고, 저예산 영화라도 성공하잖아요.

물론 주연으로서 작품이 잘 안되면 제 책임도 크죠. 더 잘했다면 흥행을 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뒷걸음질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연기를 통해 굶어 죽진 않겠죠! 제겐 현장이 놀이터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곳이에요. 영화배우라는 직업과 먹고 살 걱정을 하는 고민이 없다는 게 제겐 활력입니다."

말 그대로 긍정의 왕이었다. 2003년 데뷔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지만 동시에 다소 낮은 인지도는 그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스스로 여우에 비유하던 진구는 "최대한 긍정적! 어떤 사람의 싫은 소리, 못된 평가에도 한 번 참아버리면 결국 그 사람은 내 편이 된다"며 나름의 처세술을 공개하기도 했다. 인내의 결과는 생각보다 크다면서 말이다.

 영화<26년>에서 조직폭력배 곽진배 역의 배우 진구가 4일 오전 서울 사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인터뷰에 앞서 영화 속 배역에 어울리는 인상짙은 눈빛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26년>에서 조직폭력배 곽진배 역의 배우 진구가 4일 오전 서울 사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인터뷰에 앞서 영화 속 배역에 어울리는 인상짙은 눈빛을 보여주고 있다. ⓒ 이정민


작품 선택 기준? "민폐의 유무다"

여러 배우가 작품 선택의 기준을 말할 때 시나리오나 혹은 감독을 든다. 종종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를 염두에 두기도 한다. 진구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자신이 해당 작품을 해낼 수 있는지 없는 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던 것.

"민폐를 끼치느냐, 안 끼치느냐가 문제에요. 스태프나 관객들에게 말이죠.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라는 거예요. 만약 감사하게도 누군가 저를 과대평가해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작품이 주어진다면 수억을 준다고 해도 고사해야지요. 그 작품 이후에 제가 다른 작품을 할 수 없을 정도라면 미래를 위해 포기해야지요.

그 기준은 결국 소속사 식구들과 제 주변 지인들이에요. 제가 할 수 있으면 책을 주시고, 할 수 없다면 없으면 주지 않겠죠. 돈은 상관없고 할 수 있는 작품을 했을 때 나쁜 결과들은 없었던 거 같아요. 제가 사람 복이 좀 많은 거 같아요. 그들이 절 영화배우라는 위치에 있게 해준 거죠."

소속사 식구 외에 진구의 스승은 또 있었다. 바로 근 3년간 함께 뛰고 있는 농구 모임 사람들이었다. 평소 농구를 즐기는 진구는 친구들과 연기 지망생을 주축으로 농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제 모습을 잊은 채 어떤 탑배우를 부러워하고 있으면 그들이 뿅! 나타나서 가르침을 줘요. 내가 부족함이 없는데 왜 자꾸 욕심을 내나 그런 생각에 반성하죠. 훌륭한 스승들이에요. 근데 저희 농구실력이요? 우리 중 드리블도 못하는 수준의 선수도 많아요. 그 모습에 서로 웃으며 노는 거죠(웃음)."

 영화<26년>에서 조직폭력배 곽진배 역의 배우 진구가 4일 오전 서울 사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영화<26년>에서 조직폭력배 곽진배 역의 배우 진구가 4일 오전 서울 사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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