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하다. 첫 장면부터 19금답다. 하지만 곧 등장하는 줄리엣 비노쉬가 중간지점의 평정을 찾아준다. '무표정'만으로도 최선을 다해 슬퍼지는 줄리엣 비노쉬. 폴란드 신예감독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는 이 '품격있는 배우'를 통해 뭔가를 말하고 있다.

성매매 이야기다. 방세와 학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시작하게 된 두 여대생. 소재는 이미 식상하다. 다룰 만큼 다뤄진 이야기며 그보다 더한 현실, 이를테면 10대 가출 소녀의 성매매나 그것이 여느 할머니들에겐 유일한 생계수단이라는 보도를 접한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르>는 조금 이상하다. 이상하게 더 찜찜하다. 감독의 의도가 이 '조금 더 찜찜함'의 언저리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영화 <엘르>의 포스터

영화 <엘르>의 포스터 ⓒ (주)미디어데이

안느(줄리엣 비노쉬)는 잘나가는 프랑스 매거진 <엘르>의 에디터다. 눈뜨면 게임을 하는 어린 아들과 이틀씩이나 학교를 '땡땡이'치고도 대책 없이 긍정적인 큰 아들, 그리고 바쁘고 능력있는 남편, 이렇게 세 남자와 함께 산다.

오늘은 원고 마감일이며 남편 상사를 초대한 다채로운 날이다. 기획기사인 '성매매를 하는 파리의 대학생'이란 주제는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힌 소재다. 두 명의 여대생과 인터뷰를 마쳤으며, 끝내주는 기사가 될 거라 믿지만 왠지 끊으려던 담배를 피워 문다. 영화는 요리를 준비하며 글을 쓰는 안느의 하루를 전한다. 그 중간 중간 여대생들의 인터뷰를 회상하거나 여대생의 이야기 속으로 널을 뛰며 교차 편집된다. 

성매매가 의식적인 결정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룰라'. '그만두려고 맘먹어도 담배와 같이 끊기가 힘들다. 밤에 하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와 보모 일을 하며 시험을 준비하기 어려워 일을 시작했다. 광고를 내면 하룻밤에 50~60명 가량의 남자에게 연락이 온다. 시간당으로 돈을 받는 것이 만족스럽고, 오럴보다 끔찍한 것은 임대주택의 냄새다. 섹스 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뻘의 남자들이 흥미롭다. 가족이나 남자친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지겨워진 유부남'들이 고객이라는 '알리샤'는 폴란드 유학생이다. '고급아파트에서 가진 자의 부를 즐긴다. 파리로 유학 온 첫 날 가방을 잃어버리고 학교 기숙사는 장학생이 아니어서 갈 수가 없었다. 자신을 위해 돈을 보내주는 엄마의 생색이 지겹다. 방 구조를 설명하다 난데없이 가슴을 보여달라는 집주인 남자가 미친 것 같았지만 결국 성매매를 시작했다. 수수한 룰라와 달리 매혹적인 눈빛을 지닌 알리샤는 거침이 없으며 경제학자 맨큐를 공부 중이다.'

 수수한 표정으로 성매매를 즐기는 여대생 룰라

수수한 표정으로 성매매를 즐기는 여대생 룰라 ⓒ (주)미디어데이


1만2000자를 8000자로 줄이라는 편집장의 전화를 받았지만 특종감이니 상관없다. 한 상차림 차려내야 하는 저녁 준비도 짜증인데 일진 사나운 일만 벌어진다. 냉장고 문이 말썽이고 장을 본 카트의 바퀴가 빠지거나 와인 병은 안 따지고, 뜨거운 냄비에 손까지 댔다. 아들의 담임에게 이틀 째 결석이라는 전화를 받은 것도 모자라 남편의 컴퓨터에서 음란한 영상까지 발견했다. 누군가의 음모가 있는지 사소하게 재수가 없는 날에 불과하지만 안느는 왠지 불안하고 위태롭다. 갑자기 들이닥친 커다란 자괴감이 어깨를 치고 지나간 듯한 이 느낌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여대생의 성매매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 미디어에 문제의식을 느낀 감독.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의 내면과 소통하고자 한다. 같은 여성의 입장으로 말이다. 충격적인 것은 돈에 익숙해진 여대생들은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다는 것이었다. 남자들 또한 집에서 말이 없는 평범한 중년층 남자로 사회적 부정응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감독은 성매매의 폭력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와인 병을 성기에 집에 넣거나 몸에 소변을 뿌리는 등의 변태행위가 벌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허나 여대생들에게 성매매는 이제 자본사회를 버텨내는 방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어떻게 성매매를 시작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들 둘을 둔 평범한 엄마지만 완벽한 에디터로 살아왔던 안느는 인터뷰 후 이성의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여대생들의 성매매는 결국 학비로 인한 사회문제로 시작했지만 남편과 아들의 이야기일 수 있으며 그것은 결국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인 여대생 알리샤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인 여대생 알리샤 ⓒ (주)미디어데이


중년층 여성의 위태로움과 그에 뒤따르는 외로움을 표현한 64년생의 줄리엣 비노쉬. 그녀의 연기는 뛰어났다. 성형이 없는 주름까지 '연기자다움'을 표현하는 그녀의 얼굴은 성매매 여대생을 향한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한다. 이를테면 '가관이다'와 '안쓰럽다'를 70대 30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표정이 되는지의 디테일이다.

작가 둘과 감독, 주연 배우 세 명이 모두 여자인 <엘르>는 철저히 여성의 관점이다. 감독이 "내가 말하려는 것은 사회적인 신분 상승을 위해 성매매를 하는 젊은 여성들이다,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려는 영화가 아니며, 주인공들의 책임과 욕망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전한 것처럼 남자들은 그저 성매매를 하거나 할 가능성이 있는 대상일 뿐이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크다. 무심한 표정으로 가족과 아침을 먹는 안느. 그것은 가장 큰 것을 포기하고 났을 때의 두려움 없는 표정과도 같았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회문제를 지적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소리없이 막을 내린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성매매 여성을 직업적으로만 바라보던 시각이 변해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본사회의 어디부터 잘못됐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성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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