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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2008년 인수위 시절부터 영어몰입을 주장하더니 초등 3~6학년 영어시간을 늘리고, 늘어난 영어수업시간을 위해 영어회화전문강사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교육계는 노무현 정권 말기 2007개정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를 실험 중이었고 주5일제 논의가 나오던 때라 영어교과만 늘리는 것은 전인교육 측면이나 학습부담 면에서 신중하게 다뤄야 했지만 속전속결로 이를 강행했다. 때문에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국어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은 줄어들었다.

2008년 6월 25일 초등영어교육 11년 평가와 영어정책, 영어수업시수 증가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2008년 6월 25일 초등영어교육 11년 평가와 영어정책, 영어수업시수 증가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 전교조 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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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처음이 아니다. 초등 영어는 1995년 도입될 때부터 늘 전체적인 교육과정 개정과 별도로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도입 당시부터 체계적인 연구나 교육방법론도 제대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이 모든 부담은 사교육과 학생들의 학습고통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영어 학습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초등영어가 우리 교육에 어떻게 들어오고, 어떤 경로를 거쳐 세력을 확대됐는지 알아보자.

1995년, 대통령 한마디에 열린 '초등영어시대'

초등영어교과 도입이 결정된 것은 지난 1995년으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을 다녀와 초등영어수업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1997년 초등학교 3·4학년부터 영어를 배우게 됐다. 학교에서는 이때 6차교육과정이 막 시작될 때라 새로 교과를 신설하기 어려웠지만, 세계화추진위원회가 추진해 결국 6차교육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진 학교 재량시간(이후 재량활동·창의적 체험활동으로 바뀜)에 영어가 들어오게 됐다.

초등영어도입 당시에는 찬반논쟁이 치열했다. 찬성 측은 세계화시대에 맞춰 영어를 배워야 하고 영어 사교육비와 학생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초등영어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대 측은 정체성이 형성될 시기에 모국어 교육이 잘 이뤄지고 대도시의 영어과외과열·도농 격차·초등 교과의 영어쏠림현상을 우려했다. 이런 논란에도 교육부는 초등 영어를 도입했는데, 사회적 비판 때문인지 교육 목표를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키우고 놀이와 활동 중심 교육'이라고 설정했다.

현장 교사들은 "1982년부터 영어 특별활동반이 있어서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배우게 하는 것이 더 교육적"이라며 반대했다. 당시는 6차교육과정이 적용됐는데 교사들에게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가르치라 하고 열린 교육이 도입돼 다양한 현장 실천이 이뤄지고 있었다. 또 학교재량시간이 도입돼 학교마다 환경교육·인성교육 등 특색있는 활동이 막 시작될 때였다. 그래서 제대로 연구를 하고 시범 학교도 거친 뒤에 정식으로 도입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대학에서 초등 영어교과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현장교사들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바로 초등 3~6학년에 영어 교과(주당 2시간)를 도입하고, 교사들은 영어CD를 틀어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에서 영어교과를 통해 학생들을 어떻게 발달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도 없었다. '콩글리쉬' 발음을 우습게 여기고 원어발음을 쫓아가게 된 계기도 이때부터다. 교사연수도 급하게 시작됐지만, 연수 규모가 워낙 적어 당장 영어수업에 부담을 느낀 교사들은 영어학원을 다니게 됐다.

7차부터 정식교과 되다

시작부터 '새치기'로 들어온 영어교과는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12월에 고시된 7차교육과정부터 정식 교과로 채택됐다. 대신 영어수업 효과보다 사교육비 증가가 더 많아서였던지 3·4학년 수업시간이 1시간씩으로 줄고, 교과서도 교과부가 만드는 국정체제로 전환됐다. 이 교육과정은 2010년까지 10년간 적용됐다.

2006년에는 또다시 영어교육과정 개정(2006년 8월 고시)이 이뤄져 7차교육과정 시가와 시간은 같고 내용은 조금 더 어려워지고, 배우는 낱말 수도 늘어났다. 교과서는 다시 검정교과서 체제로 변해 3·4학년은 10개가 넘는 출판사에서 교과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수학과 영어는 2006년에 개정돼 2006개정교육과정, 나머지 교과와 총론은 2007년 2월에 고시돼 2007개정교육과정으로 불림).

2006년에는 국가인적자원개발 기본계획의 하나로 '영어교육 활성화 5개년(2006~2010년) 종합대책'이 나왔다. 내용은 초등1·2학년 영어 조기교육연구를 포함해 ▲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연차적 확대 ▲ 영어체험학습센터 설치·운영 확대 ▲ 경제특구 및 국제 자유도시 영어몰입교육 시범실시 등이다. 이때 시작된 영어몰입교육이나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수업인증(TEE)제는 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과 영어회화전문강사 제도로 확대·발전됐다.

1·2학년 영어 요구는 경제계의 요구가 컸다고 하는데, 교육계에서는 '조기 영어 열풍으로 영어 유치원에 가는 상류층 자녀들이 초등학교 3학년까지 영어를 잊어먹을까봐 그러는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결국 영어시범학교에서 사교육비가 더 늘어나고, 영어수업이 가능한 젊은 교사들이 1·2학년 담임을 하다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어 부정적 의견이 많아 실험으로만 끝나고 말았다. 그렇지만 2008년 초 다시 미래형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1·2학년을 6교시까지 수업하고 영어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왔다.

잘못 낀 첫단추, 야만적인 설소대 수술로 이어져

영어학자들은 '우리 나라가 평소 영어를 쓸 일이 없고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기 때문에 국가 수준의 영어교육 목표나 외국어로서의 영어교육론(EPL)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영어권 국가에서 제2외국어로 영어를 배우거나 식민경험이 있는 나라에서 주로 쓰는 ESL 영어를 배우게 했다. 많이 듣나보면 말이 터진다는 원리다. 1997년부터 2009년까지 학생들은 영어를 읽을 수 있는 파닉스(문철법)을 배우지 않아 4년 영어를 배워도 수 백개의 단어를 통째로 외우기만 할 뿐 읽지는 못하는 '눈뜬 장님'이 돼야 했다.

영어가 초등 3학년부터 배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9살이 넘으면 원어발음을 하기 어렵다는 가설 때문'이라는 주장이 많았는데, 아직까지 제대로 된 학문적 근거는 보지 못했다. 대신 교과서나 사회적으로나 영어발음에 치중하니 교사들은 학생 발음을 망칠까봐 영어 CD를 대신 틀어줘야 했다. 그런데 자기 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학생들이 CD로 영어를 조금 듣는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맘 놓고 영어를 말하지 못했다. 미국 영어연수를 다녀와 영어 문제를 같이 연구한 동료교사는 교과부 CD의 발음이 "미국 텍사스 백인 남성의 발음"이라며 "본토발음 운운하는 게 사대주의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올바른 연구나 교육체계도 없이 발음만 강조하다보니 2000년대 들어와 중산층 사이에서는 '설소대 수술' 붐이 일기도 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혀가 짧아 R과 L 발음을 못한다며 초등학생 설소대 잘라 발음을 잘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에도 발음 논란은 여전히 2007개정·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교육과정(2011년 개정)에도 남아 우리 나라 영어교과는 한국인에 맞는 영어가 아니라 외국인에게나 맞는 영어를 배우고 있다. 영어교육에 대한 철학도 없이 초등영어가 도입돼 영어학습에서 무조건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경쟁 분위기가 학교 영어를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구조다(관련기사 : 초등영어 11년의 빛과 그림자).

초등영어 10년, 사교육 많이 하는 학교만 효과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회적 논란이 있고 교육적 문제나 사교육비 증가 문제가 심각했는데, 정작 제대로 된 연구는 이뤄졌을까. 과연 정부가 처음 주장한 대로 초등영어교육이 효과가 있었을까.

2008년 1월 모든 일간지에 '초등영어 10년 성과 있었다'는 똑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교육부가 2006년 서울대 권오량 교수에게 의뢰한 '초등영어 10년 성과분석 연구'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전국 5개 고교 1·2학년 학생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시차를 두고 같은 영어평가를 했더니 2003년에는 평균 점수가 414.5점이었는데 2006년에는 459.6점으로 45.1점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소년단체와 전교조는 권 교수 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초등학교 영어 확대에 즉각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설문결과 초등학교 때 영어교육을 이수해 영어공부에 '자신감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27.28%에 불과했다. 중학생들은 '자신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가 20.56%, '그저 그렇다'가 43.73%로 초등영어 교육 이후 실력 향상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략) 고등학생들 중 '초등영어가 수업에 도움이 되었다'에 대해 '전혀 아니다'가 30.17%, '아니다'가 26.11%, '그저 그렇다'가 24.99%에 이르렀다."(인터넷뉴스 바이러스 1월 10일)

"3년 전에 지티이시 시험에 응시한 학교는 서울의 목동고, 미림여고, 서울사대부고, 서초고, 공항고와 분당 대진고, 포항제철고 등이었다. 지난해 연구에서는 이 가운데 서울의 서초고와 공항고가 빠졌다. 이번에 재선정된 5개의 학교 대부분이 이른바 잘 나가는 학교요,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지역의 고등학교다. 이런 학교 1·2학년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분석한 후에 초등영어교육이 효과가 컸다고 발표하는 것은 일반화될 수 없다. 사교육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차단할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전교조 논평 2008년 1월 13일)

교과부는 전교조나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초등영어 10년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제대로 하라는 압력을 받아왔는데 사설 영어학력평가 업체의 점수를 예로 들어 초등영어교육이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학교들은 사교육을 많이 하는 학교라 공교육의 효과가 있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태다. 또 영어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떨어졌다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초등학교 3~4학년 영어시수 확대 연구학교를 48개 선정했다.

2008년 12월 시범학교 운영 결과 사교육비가 더 늘었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마저도 무시하고 초등학교 수업시수를 늘려놨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원어민 보조교사 제도

원어민 보조교사 제도는 직접 원어민과 교류해 이질감을 없애고 좋은 발음을 듣는다는 취지로 서울에서 처음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됐다. 어떤 교육적 배려도 없이 오로지 영어를 가르치게 한다는 목적으로 외국인을 교육현장에 들여놓아, 영어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한 젊고 의욕 있는 영어전담교사들을 비서 노릇에 그치게 했다. 이들은 한국 상황을 전혀 모르는 원어민보조교사를 가르쳐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기본이고, 입국·방 구하기·병원 가기를 비롯한 각종 고충처리를 도맡아야 했다. 

원어민 교사 중에는 외국에서 교사를 한 사람들도 오기는 했지만, 다수는 교수법은커녕 기본적인 사회생활 능력도 안 돼 영어전담교사들이 이들 뒤치닥 거리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3천만 원짜리 오디오'라는 자조가 많았다. 원어민들은 영어만 하면 취업이 되는 한국 학교에서 대접받고 교사들에게 교수법도 배워 일본으로 가거나 학원 강사로 업을 바꾸는 이가 많았다. 일부는 국제 범죄나 마약·성폭행등에 연루돼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이 때문에 원어민 보조교사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결국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자질을 높여야 한다는 정책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기자는 이전 학교에서 5년간 6명의 원어민 보조교사를 만났다. 자기 감정을 조절 못하는 원어민 때문에 학교장보다 원어민 기분에 더 민감해야 할 때도 있었고 영어를 능숙하게 못하는 교사를 무시하는 원어민도 보았다. 초등교육 현장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20대 중반 원어민이 깔보는 듯한 행동을 할 때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았다. 교사마저 이런 대접을 받는데 학생들은 어떤 눈으로 쳐다보겠느냐는 우려도 나왔다.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교사나 학생들이 엉뚱한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원어민 보조교사는 한국 영어교육이 얼마나 철학이 빈곤하고 교육적 토대가 약한지를 보여줬다. 어떤 나라가 교육현장을 교사 소양과 자질을 고려하지 않고 개방을 할까.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원어민과 부딪치며 좌절하고, 더욱 입을 닫기도 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만나면 아예 상황을 회피하려 하고 모든 문제를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받아들인다. 국가적인 정책 미숙이 오히려 성장 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자신감을 갉아먹은 것이다.

초등영어교육은 이렇게 도입부터 1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늘 필요성만 제기될 뿐 제대로 된 연구도 없이 진행됐다. 또 우리나라 언어 상황에 맞는 교수법이나 교사 연수 체계가 아니라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에 맞는 교수법을 강조하여 교사·학생 모두를 소외시키고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키고 있다(관련기사 : 원어민 교사 되기 참 쉬어요~잉).


태그:#초등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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