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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많이 쓸수록 좋은 거잖아요?

참으로 ‘버릇’이라는 것이 무섭다. 뜻하지 않게 지난 4년을 영어 전담 교사로 일했다는 이력 때문일까? 영어 수업 시간도 아닌데 아이들에게 ‘클로즈 더 도어, 플리즈(Close the door, please)’라고 말해 버렸다. 바로 실수를 깨닫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영어 시간인 줄 착각했다고 사과를 했다.

그랬더니 맨 앞자리에 앉은 똘망똘망한 4학년 여자 아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왜요? 영어는 많이 쓸수록 좋은 거잖아요?”

1997년부터 5.31 교육개혁안(1995년)을 토대로 시행된 초등 영어 교육 11년이 성과가 있었다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영어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 영어는 잘 하면 잘 할 수록 좋은 것이라는 사대주의적 허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심어 놓았다는 것이다.

흥미와 자신감을 키운다? 영포아를 키운다!

7차 초등 영어 교육과정은 영어교육을 통해 ‘영어에 흥미와 자신감을 가지며,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본 능력을 기’를 것을 목표로 기술하고 있다. 7.5차 교육과정도 세부 표현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다. ‘평생 학습자로서 영어에 대한 지속적인 흥미와 자신감을 얻는 바탕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영어 시간을 기다린다는 학생(22.1%)보다 기다리지 않는다고 부정적으로 답한 학생(40.6%)이 두 배 가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김한정, 2006) 초등 영어 도입 초기에는 영어를 매우 싫어하는 학생이 학급당 2-3명 수준이었지만, 2006년에는 매우 싫어하는 학생이 크게 증가하였다는 것을 교육부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교육부, 2007)

영어를 매우 싫어하는 학생=영어에 대한 어떤 흥미도 관심도 보이지 않는 학생=영어를 포기한 아이들=‘영포아’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이다.

학기마다 수행 평가가 끝나면 영어 단어 읽기를 못하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불러다가 타이른다. 너희들 옷에 뭐가 써 있느냐, 다 영어다, 그런 걸 읽는 방법을 지금 배우지 않으면 다시는 배울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번 방학 때 무료로 캠프하는데 참가해서 같이 공부해 보자, 그렇게 한 명씩 설득한다.

바우처를 이용한 무료 캠프, 영어 읽기 부진아만을 위한 프로그램인데도 아이들은 잘 나오지 않는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 끝나고 극장 가서 영화를 보여 주겠다고 회유하지만 10%라도 참석하면 그건 성공이다. 영어 캠프나 영어 체험센터 수업에 저소득층 바우처 제도를 활용, 저소득층 영어 교육을 확대하려고 교육당국은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은 참여율이 10%도 안될 것이다.

설사 10%가 넘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그 아이들의 실제 출석률은 높지 않다.  ‘공부’하는 즐거움, 하나 하나 알아가는 ‘기쁨’을 단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영어’란 그저 무의미한 대상일 뿐이다. 저소득층=영포아인 현실을 깨보려고 노력했던 지난 4년의 경험은 우리 아이들이 학습 의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학습하는 즐거움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방학 캠프를 통해 겨우 겨우 음철법 정도는 익혀서 어느 정도 단어는 읽게 되었다 해도, 바로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좌절한다. 방학 때 고만고만한 친구들하고 공부하던 것과는 ‘격’이 다른 공부와 ‘격’이 다른 친구들의 영어 실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한번 영어 공부를 할 시기를 놓치면 다시 따라잡기에는 엄청난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는 뭣도 모르고 그냥 흘려보내고, 나중에 6학년이 되어 현실의 막중함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지만 아이들에겐, 특히나 가정 형편이 힘든 아이들에겐 너무도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리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너무도 좁다. 쉽게 영어를 포기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영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은 제발 그만 하면 좋겠다. 영어는 외국어다. 외국어를 내 나라 말처럼 한다는 것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이다. 쉽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청난 사교육비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영어 교육을 강화하면 할수록 영포아는 늘어나게 되어 있다. 초등 학교 영어 교육 강화가 답이 아니라, 초등 학교 영어 교육 폐지가 답이다.

영어 사교육비 격차=영어 격차

강남 8학군의 끄트머리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로 5학년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현재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첫 해, ‘도대체 게임이 되질 않아, 도대체 뭘 배운거야’ 속으로 한탄을 했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그때 수준과 4년 후인 지금의 수준이 확 달라졌음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게임도 되고, 대화도 된다. 문제는 그것이 영어 불안감을 부추기는 정부와 사교육의 덕이라는 점이다. 하나 더, 그 사이 강남 아이들의 영어 실력도 확 달라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3학년 올망졸망한 꼬맹이들에게 ‘아이 라이크 애플즈, 아이 돈 라이크 애플즈’를 가르쳐 놓고 한 학기가 끝나면 배운 표현을 다 외우고 있는지 평가를 했다. 한 마디도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웠지만, 그것이 ‘사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의 정직한 모습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그래서 ‘매우잘함, 잘함, 보통, 노력요함’ 4단계로 표시하는 통지표에 혹시나 부모들이 ’매우 잘함‘이라고 표시하면 3학년이 배운 수준은 생각하지 않고 영어 의사 소통이 가능한 정도로 착각할까봐 아주 엄격하게 평가를 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모든 교과에서는 성취도가 높은데 유독 영어, 그 중에서도 말하기 영역에서 바닥을 기는 아이들을 보면서, 영어로 말하는 것이 단지 문장을 외워서 표현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그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특히나 사교육을 받지 않는 아이들이 한 학기동안 배운 표현을 상황에 맞게 써 먹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그것을 요구했던 교육과정, 그리고 내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던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이 가능했던 시절에 사교육은 ‘투자’였지만, 그런 가능성이 봉쇄되어 있는 1% 대 99%의 현실에서 사교육은 ‘보험’이 되어버렸다. 내 자식의 보장 자산을 위해 오늘 허리띠를 졸라매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교육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투자는 여윳돈을 가지고 하는 것이지만 보험은 생계비를 쪼개서 드는 것이다.

영어에 드는 사교육비만 15조원이라는 통계, 상류층은 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 드는 사교육비만 해도 1인당 1억원이나 된다는 신문보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해야 하나?

이명박 정부가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시장은 거꾸로 가고 있다. 학생들은 학원으로 더 몰리고, 학부모들의 고통은 커져 가고 있다. 영어 몰입교육에서 시작하여 국제중 설립, 자립형 사립고 100개 만들기, 수능 영어 국가영어능력시험으로 대체까지, 정부가 제도를 건드릴 때마다 사교육 시장은 들썩인다.

경기가 바닥인데도 올 상반기 교육비는 지난해보다 9.1%나 늘어났다. 전체 가계 소비지출 가운데 교육 비중이 6.2%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학원수는 2002년말 1만6600여개에서 올 6월말 3만2400여개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 상반기에만 2천개 이상 늘어났다.(양영유, 2008)

서울+도시공화국, 영어교육정책은 딴나라 이야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노래가 노무현 탄핵 정국과 광우병 정국에서 빛을 발했지만, 앞으로 MB 정권 하에서는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며 도시공화국’이라고 노랫말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영어교육 강화라는 미명 하에 내놓는 정책이 서울과 도시 지역만을 염두에 둔 탁상공론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역별, 특히 도시 지역과 읍면 지역 사이의 사교육비 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성기선, 2007) 사교육비 격차=영어 격차라는 등식을 이해하면 곧 영어 격차는 지역 격차로, 읍면 지역에 사는 학생들과 도시 지역에 사는 학생들의 격차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6학년 영어과 성취도 변화 추이를 보면 영어 ‘미달’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대도시나 중소도시에 비하여 읍면 지역은 매년 2배 가까이 많다. 이에 비해 ‘우수’ 비율은 대도시에 비하여 읍면 지역이 20% 가량 낮다. 한편 지역에 관계없이 영어과의 ‘미달’ 비율은 거의 낮아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잠깐만 눈을 돌려 생각해 보자. 하루에 버스 몇 대가 다니는 시골 마을, 배 몇 편이 다니는 섬 마을의 작은 분교에도 원어민 영어 보조 교사 혹은 영어 회화 전용 강사를 배치할 수 있을까? 언론 보도를 보면 대통령 영어 장학생으로 배치된 교포 영어 강사들이 열악한 환경에 놀라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정부의 영어 교육 강화 정책은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면서 한달에 몇 십만원 이상을 사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소수만을 위한 정책이 될 뿐이다. 나머지는, 들러리다.

사교육비의 격차가 영어 격차로 이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소득 계층 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사교육비의 격차가 지역 간의 격차로 연결되는가? 서울 공화국이며 도시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읍면 지역은 불모의 땅, 버려진 땅이다. 정부 정책에서조차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곳에서 느끼는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은 딴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의 현실 이해 능력이 부럽다!

초등 영어 교육 11년, 빛과 그림자는 분명해졌다. 인지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시기에 강요받은 영어라는 괴물이 만들어낸 영어 포기아, 영어 사교육비의 급격한 증가와 사교육비 격차가 영어 격차로 이어지는 현실, 문화적 경제적 소외 지역과 도시 지역간의 영어 격차, 그리고 이 땅의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에게 심어준 영어 사대주의가 우리가 아프게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영어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시작한 초등 영어 교과 도입은 마땅히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은 실용 영어회화가 마치 모든 문제의 만능열쇠인 것처럼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 10년을 배웠는데 외국 나가서 말 한마디 못하는 현실을 개탄한다. 사교육을 줄이고 전국민이 생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장담한다. 아, 정말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하고 싶다. 안될 것이 뻔한데, 하겠다고 큰소리친다.

<한겨레 21> 보도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영어 과외 안 받아도 대학 가게 하겠다’는 발언이 있은 직후부터 영어전문학원에는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아니 정말 할 수 있다고 믿고 그러는 것인지 묻고 싶다. 정말 그렇다면 그들의 현실 이해 능력과 대처 능력이 부럽다.

영어 사교육 시장 규모가 영어학원, 어학연수, 유학을 포함해 15조원(삼성경제연구소, 2006년)이다. 공교육을 포함하면 그 이상의 금액이다. 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도 안되는 것이 ‘영어’이다. 토익 시험 만점에 가깝도록 수많은 어휘를 외우고, 듣기 기술을 익혀도 실제 회화에서 말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배달말을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영어권 나라에 가서 살면서 죽어라 노력하지 않는 이상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어권 나라가 아닌 한국 땅에서 살면서 그렇게 죽어라 노력할 필요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영어교육 사상, 중·고교 수준에서의 대중 영어교육이 눈에 띌 만한 성과를 올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일본어와 영어의 언어 간의 거리를 감안했을 때, 현재의 중등교육의 수업 정도로는 어떤 교수법을 창안해내든, 어떤 교육개혁을 단행하든 학생에게 실용적인 영어실력을 몸에 배게 하는 것은 원래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다."
 
일본에서는 1920년대에 이미 중학교에서의 영어필수 폐지론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 배경에는 미국에서의 일본인 이민배척 운동 외에도, 1주일에 10시간을 가르쳐도 학생의 영어실력이 크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1주일에 3, 4시간 밖에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니, 영어와의 '거리'를 극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은 틀림없다. 그러면, 초등학교부터 가르치면 어떨까?

"초등학교에서의 영어교육은, 메이지시대 이래 여러 가지 형태로 이뤄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아동의 영어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던 예는 단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사이토 요시후미, 2008)

이런 현실에서 초등학교 영어 수업 시수를 확대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소수를 위한 영어 공화국이 되는 지름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다음 아고라에 초등영어수업시수 확대 반대 청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6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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