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막내린 KBS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의 세 주인공

15일 막내린 KBS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의 세 주인공 ⓒ KBS


이경희 작가는 마루(송중기 분)에게 '위악'을 주었다. 그리고 재희(박시연 분)에게는 '욕망'을, 은기(문채원 분)에게는 '순수'를 선사했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추동하는 힘은 복수와 협박이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이하 <착한남자>)는 20부의 대단원에 이르러서 '구원'을 말한다.

'깊은 사랑' 재희를 위해 아픈 동생까지 외면한 채 살인죄를 뒤집어쓴 마루. 그런 마루를 버리고 태산그룹 젊은 안주인이 된 재희. 아버지와의 불화와 재희에 대한 원망으로 시니컬한 인간이 돼버린 태산그룹 후계자 은기. 그리고 재희에 대한 복수의 감정이 식지 않았던 시기에 운명적으로 은기를 만나는 '착한 남자' 마루.  

동어반복 혹은 사랑의 영겁회귀. 가난이나 입양, 가족의 불운을 품은 주인공은 대체로 위악을 떨지만 본연에 간직한 선한 마음을 품은 채로 운명적인 상대와의 죽을 만큼 처절한 사랑을 겪는다. 그리고 그 안엔 대체로 계급 혹은 계층이란 장애물이 버티고 서 있다. 종국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고.

이경희 작가는 어쨌건 '사랑'이 이들의 운명을 좌우하고, 갈라놓고, 또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착한남자>에서 재희를 향한 일방적인 사랑을 하던 마루도, 그러한 마루에게 애증을 품었다 기억상실증의 통로를 겪어야 했던 은기도, 목표했던 권력을 쥐고도 '사랑'을 받을 길 없어 내내 눈물로 하소연하던 재희도 별다를 바 없었다.

대신 <착한남자>는 '이 죽일 놈의 사랑' 때문에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결국 '고맙습니다'고 말하는 착한남자 마루야말로 모든 '괴물'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란 긍정을 심어 놓는다. 그리고 그 '착한남자'를 '대세' 송중기가 연기했다.

 <착한남자>의 마루와 은기

<착한남자>의 마루와 은기 ⓒ KBS


보내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사랑이라는 강마루의 헌신

"보내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사랑이라는 걸, 내가 소유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라는 걸, 그래야 비로소 내가 행복하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강마루가 그걸 가르쳐줬습니다."

재희를 위해 살인교사를 비롯해 온갖 범죄를 저지르던 민영(김태훈 분)에게 박준하(이상엽 분) 변호사가 털어 놓은 설득의 변이다. 우발적 살인부터 복수, 범죄, 권모술수에 이르기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약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인물들이 벌이는 이 사랑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기억상실이라는 점은 <착한남자>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은기의 감정을 복수에 이용했다는 약점까지도 희생과 번민을 거쳐 진실한 사랑에 이르는 마루의 헌신을 통해 멜로드라마의 신화를 완성해 낸다. 헌데  이상하리만치 결핍에 시달리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무엇을 갈구하지만 그 정체는 표출되지 않고 계속 지연된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진 재희는 마루와의 행복했던 과거를 끊임없이 복기하고, 민영 역시 재희를 돕는 것이 태산그룹을 갖기 위함인지 재희란 여자 때문인지 그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것 처럼 보이며, 심지어 천사와도 같이 마루와 은기를 돕는 '박 변'은 '복무의 아이콘' 그 자체다. 키스도 못 해봤지만 아버지의 그늘에서 몸부림치며 반항하던 은기는 기억을 상실하면서 온순함으로 가득 찬 순수의 결정체가 되어 버린다.

더불어 이 인물들은 모두 절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도 정체해 있는 인물들이다(지겹도록 반복되는 회상 장면들과 한없이 자신의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하겠다고 징징대는 두 인물들 간의 대화들을 복기해보라). 이들은 복합적이고 성장하는 캐릭터라기보다는 한없이 정체돼 있어 멜로드라마의 정해진 운명 안에 끌려가는 기이한 인물들이다. 그것이 태산그룹인지, 사랑인지, 드라마도 캐릭터도 작가도 확신이 없는 것 같다. 여기서 '사랑'을 부르짖을 때, <착한남자>의 '사랑'은 공허할 수밖에 없었다.

 KBS 2TV <착한남자> 제작발표회 당시 배우 박시연, 송중기, 문채원(왼쪽부터)

KBS 2TV <착한남자> 제작발표회 당시 배우 박시연, 송중기, 문채원(왼쪽부터) ⓒ 이정민


동어반복 혹은 사랑의 영겁회귀가 공허한 이유

"사람이 사랑을 잃고 어떻게 살아." (재희)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요. 난 안 죽어. 내가 왜 죽어, 뭘 잘못했다고. 사랑 없이도 잘 살 수 있어요, 나. 내가 언제부터 원하는 거 다 갖고 살았다고. 내 욕심 부려서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원하는 거, 내가 바라는 거 갖고 산 적 있었나, 내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나 사랑 없이 잘 살 수 있어요. 죽는 게 지옥이지 사는 게 왜 지옥이야." (마루)

다행히도(?) 많은 이들이 마루와 은기 혹은 마루와 재희의 자살을 목도하게 될까봐 근심했지만, "사는 게 왜 지옥이야"는 마루는 "같이 죽자"는 재희를 두고 은기에게 "같이 도망치자"면서 끈질기게 생을 선택했다.

1회의 우발적 살인을 비롯해 죽음의 그림자로 드리운 비극의 기운은 <착한 남자>를 이끌어간 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경희 작가는 시청자들의 우려와 기대(?)를 7년 후의 '해피 엔딩'으로 화답했다. 기억을 잃은 채 보건소 의사가 된 마루를 지키는 은기는 자신을 지키며 헌신했던 마루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남는 걸로 이경희 작가의 운명론이 진화했다고 볼 수 있을까. 재벌가 상속녀  은기가 당한 기억상실증을 반전 코드로 활용, 긴장감을 유지하려던 늘어지는 전개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 은기의 (드라마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한없이 보잘 것 없는 것으로 그려졌던)부와 권력을 복권시켜주기 위해 헌신했던 마루의 기억을 빼앗는 결말을 사랑의 쌍방향성을 완성했다고 해석해줘야 하는 걸까.

송중기가 연기한 마루가 신에게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동시에 은기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마지막 장면이 공허한 이유는 20부를 달려오며 완성한 '이 죽일 놈의 사랑'의 서사가 배반돼서가 아니다. 극단적인 선택과 상황 속에 인물들을 몰아넣었던 이경희 작가는 마루가 그 추억과 기억을 잃어야만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다고 한다. 확실히 자기기만적인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건 <미안하다 사랑한다>나 <이 죽일 놈의 사랑>으로 이미 완성된 이경희 작가의 작품 세계에 퇴행으로 자리매김할지도 모르겠다. 송중기란 스타의 아성을 공고히했다는 성과와 20%에 육박한 시청률과는 별개로 말이다.     


착한남자 송중기 이경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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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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