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세로 별세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정

64세로 별세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정 ⓒ 유성호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

비판이론을 이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수장 아도르노는 나치와 히틀러의 유태인 인종청소를 진심어린 비유로 통렬하게 비판했다. 부정으로 진리에 도달하고자 한 '부정변증법'을 주창한 이 독일 출신 철학자에게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자국의 야만적 악행은 분명 치유할 수 없는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작년 12월 말 고문 후유증으로 유명을 달리한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자전적 수기 <남영동>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했으며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절망에 몸서리 쳤습니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그 아우슈비츠 말이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치 떨리도록 야만적인 비인간적 폭력에 대한 절망. 아도르노가 져버린 것이 서정시였다면 영화감독 정지영이 포기할 수밖에 없던 것은 어떤 영화적 장치나 수사는 아니었을까. '아우슈비츠'를 연상했다는 김근태의 아픔과 고통을 영화화하면서 엄숙할 수밖에 없었을 어떤 비장함 말이다.

그렇게 고 김근태 상임고문의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남영동 1985>은 감독 정지영의 그런 심정이 스크린 속에 고스란히 투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감독 정지영의 뚝심이 반영된 혹은 저항할 수 없었을 선택이라면, <남영동 1985>는 106분이란 시간 동안 고통의 무게를 스크린으로 마주하게 한 뒤에야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옳았음을 확인시켜 준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까지 관객은 김근태 의원이 22일 동안 당했던 고문의 시간을 낱낱이, 그리고 고통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남영동 1985>는 그렇게 이 마주함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요, 각인시켜야 만하는 기억이라고 말하는 중이다.    

"서울대 다닌 빨갱이"를 취조하고 고문하는 '애국자들'

 영화 <남영동 1985>의 고문 장면

영화 <남영동 1985>의 고문 장면 ⓒ 아우라픽쳐스


<남영동 1985>는 거두절미하고 취조실에 잡혀온 한 남자 김종태(박원상 분)를 비추는 플래시 불빛과 함께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저항하는 한 남자, 그리고 그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공안 형사들. 영화 전편을 짓누르는 답답함과 무력감은 이내 분노와 한숨으로 바뀌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정지영 감독은 여타 시대적인 세부 묘사나 인물의 배경 따윈 가감하게 생략한 채 '고문의 시간'들로 점프해 버린다.

그저 민주화 운동을 했을 뿐인 한 남자는 느닷없이 끌려와 이유 없이 맞고 옷이 벗겨지는 모욕을 겪은 뒤, 겨우 "여기가 남영동이냐"고 입을 뗀다. 이후 이어지는 폭력, 그리고 고문. 형사들은 그를 "서울대 다닌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자신들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애국자"라 지칭한다. 형들이 월북한 전력이 있던 김종태가 연좌제를 피할 수 없었던 시대, 2년 뒤 구속된 서울대생 박종철이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발표와 함께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시대, 바로 군부독재의 80년대였다.

헌데 죄가 없으니 고할 진술도 없다. 고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상황묘사에 인색한 영화는 회상신을 통해 잠시 민주화 운동을 쉬고 있던 김종태를 보여준다. 동네 목욕탕에서 아내와 어린 아들, 딸 앞에서 끌려오는 장면을 통해 그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 분)이 '괴물'처럼 등장하면서 <남영동 1985>는 본격적으로 고통의 레벨을 상승시켜 나간다.

고통스러운 고문 장면과 더욱 아픈 환상의 의미

날렵하게 정돈된 각종 도구들, 김종태가 고문 받다 죽는 걸 막기 위해 수시로 챙겨보는 회중시계, 그리고 세련된 손놀림과 절제된 말솜씨. 이 고문기술자가 들이붓는 물과 고춧가루에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김종태는 참고 또 참는다.

앞서 고등학교 선배라는 인맥을 언급하던 남영동 대공분실 총책임자 윤사장(문성근 분)에게 애국이야말로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의 광주 학살, 뒤이은 미국의 방조 등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였다. 하지만 인생을 통째로 옮겨 적은 진술서를 잠도 못자고 적어 내려가던 김종태도 결국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이 냉혈한의 고문에는 버텨내지 못한다.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 아우라픽쳐스


김근태 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는 전기 고문 장면이 이어질 때까지 카메라는 끈질기게 김종태의 얼굴과 온 몸을 클로즈업한다. 죽음의 공포가 턱밑까지 다가올 법한 몸부림과 이를 통해 반응할 수밖에 없는 거짓 자백. 그리고 끔찍한 육체의 고통이 스크린으로 전해질 때 쯤 정지영 감독은 피폐해진 김종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애인을 뺏기고 제 기분에 못 이겨 김종태를 폭행한 이계장이 미안함에 던져 준 빵과 우유, 식욕이란 생존의 욕망 앞에서, 김종태는 멀쩡한 모습의 자신과 대면한다. 이 환상은 고문을 받을 때 종종 힘이 되어줬던 아내의 목소리나 끌려오기 직전 아들과 가기로 약속했던 평화로운 바다를 떠올리는 것과는 분명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함세웅 신부를 비롯해 배후인물을 거짓 밀고한 김종태에게 정지영 감독은 그렇게 동물 취급을 받기 이전의 자신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위로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영화적으로 본다면 단순해 빠진 이러한 상징도 <남영동 1985>에선 묵직한 울림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김종태의 내면을 위무하는 이 장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울림도 직접적인 고문 장면의 세밀한 묘사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 극한의 육체적·물리적 고통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깊게 할퀴어진 내면의 상처를 당해보지 않은 자라면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연출에 대해 찬반이 갈릴 가능성이 분명하지만) 세련되기는커녕 우직하다 못해 너무나도 정직한 이러한 화법은 이후 제기되는 기억과 용서의 문제에 맞닿아 있다.

당신이라면 쉬이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영화 속 이두한과 김중태

영화 속 이두한과 김중태 ⓒ 아우라픽쳐스


영화의 말미, 20여 년이 흐른 김종태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안건에 대해 의견을 내놓자 (고 노무현) 대통령이 "온건하다"는 평을 하는 그런 복지부 장관이다. 마찬가지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이두한을 독대한 그는 엇갈린 운명 앞에서 무릎을 꿇는 그 고문기술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박원상의 탁월한 연기가 돋보이는 이 장면에서 정지영 감독이 강조하는 것은 김종태의 떨리는 손과 같은 미세한 부분이다. "니가 사형되기 전 세상이 바뀐다면 그땐 나를 죽여라"고 했던 그 고문기술자가 무릎을 꿇을 때에도 고문을 끝낸 뒤 그가 불렀던 '클레멘타인'만은 김종태의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남영동 1985>는 섣불리 '용서'를 말하지도 않는다. 고문의 시간 말미, 군의관에게 연락처를 빼돌린 것도 모자라 남영동을 나가기 직전까지도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굽히지 않았던 김종태에게 결국 이두한은 광기어린 폭압을 자행한다.

그 광기야말로 단순히 '시대의 아픔'으로 중화할 수 없는 야만의 정체다. 아무 정보도 주지 않은 채 어둠 속 플래시 불빛에서 시작한 영화는 그 이두한을 뒤로한 채 카메라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김종태의 눈빛을 클로즈업한다. 과연 당신들은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느냐고, 나는 아직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분노의 눈빛을 말이다.

한정된 시공간에서 꽤나 단조롭게 진행되는 <남영동 1985>가 꽤나 뚜렷한 감정선을 가지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고문에 대한 세밀한 묘사만큼이나 김종태, 아니 김근태의 심리를 우직하면서도 농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장점은 엔딩크레디트와 함께 등장하는 고문 피해자의 증언들로 인해 기존 실화영화의 감동과는 다른 차원의 뜨거운 감정을 쏟게 만든다.

<부러진 화살>에 이은 '피해자' 이야기, 대선에 영향을?  

'사법피해자' 문제를 다룬 <부러진 화살>에 '고문피해자' 김근태 의원의 이야기를 그린 정지영 감독은 <남영동 1985>에서 실명을 쓰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 영화는 김근태 의원이나 고문경찰관 이근안 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가해자와 피해자들 모두가 영화에 담겨져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러진 화살>에 이어 <남영동 1985>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

<부러진 화살>에 이어 <남영동 1985>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 ⓒ 이정민


<남영동 1985>에 새겨진 이 감내하기 힘든 '고문의 추억'이야말로 2012년의 관객들이 기억해야 할 광의의 그 무엇들이란 뜻이리라. 이재오 의원까지 등장하는 증언 영상들 역시 이 영화가 소환한 기억을 단순한 시대적 공포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감독의 인장과도 같다. 그리고 정지영 감독은 "이 영화가 올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고도 말한다. 

때마침 <남영동 1985>가 언론시사를 통해 공개된 5일,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의 김지하 시인의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여성리더십"이란 취지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누군가에 기억이란 휘발되거나 재구될 수 있는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각인될 형벌과도 같으리라. 어쩌면 망각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를 우리에게 지금 <남영동 1985>가 당도했다. 그리고 기자 시사 후 다시금 찾아 본 유언 동영상에서 김근태 고문은 이렇게 당부하고 있었다.

"희망은 믿는 사람에게 먼저 옵니다. 희망은 먼저 일어서는 사람만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함께 일어섭시다. 여러분은 함께 해야 하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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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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