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jtbc개국 1주년 주말특별기획 <무자식 상팔자>(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손나은, 이도영, 김민경, 송승환, 임예진, 유동근, 김해숙, 엄지원, 이순재, 서우림, 전양자, 윤다훈, 견미리, 오윤아, 하석진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jtbc개국 1주년 주말특별기획 <무자식 상팔자>(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손나은, 이도영, 김민경, 송승환, 임예진, 유동근, 김해숙, 엄지원, 이순재, 서우림, 전양자, 윤다훈, 견미리, 오윤아, 하석진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한국영화계의 대표적인 리얼리스트는 물론 임권택 감독이다.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까지 임권택 감독은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스크린 속에 기록해오며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까지 거장이란 칭호를 부여받았다.

브라운관 속 리얼리스트를 꼽으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김수현 작가의 이름을 호명해야 할 것이다. 1936년생인 임권택 감독보다 한참이나 어린(?) 1943년생인 김수현 작가는 가족극과 멜로를 바탕으로 40년 넘게 안방극장 시청자들을 울고 울렸다. <사랑과 야망> <청춘의 덫> <내 남자의 여자>와 같은 선 굵은 멜로드라마부터 <사랑이 뭐길래> <부모님 전상서> <엄마가 뿔났다>와 같은 가족극까지.

비록 사회파 드라마가 없는 대신 가족극과 멜로 드라마를 오가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들은 개연성 충만한 캐릭터들의 속사포와도 같은 방대한 대사들을 통해 동시대성과 현재적 트렌드를 담아내며 세대별 시청자들과 호흡해왔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찬사와 함께 기록적인 시청률 평균 타율을 통해 '흥행 보증수표'라는 칭호까지 거머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그가 종편 JTBC의 <무자식 상팔자>로 돌아왔다. 주말극은 물론 최근작 <천년의 사랑>을 통해 '미니시리즈 역시 김수현'임을 입증시켰던 이 노작가의 신작에 종편을 둘러싼 방송가 지형도와 맞물려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7일 1회 방송으로 뚜껑을 연 <무자식 상팔자>는 그간 보여줬던 김수현식 가족극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는 주말드라마다.

 김수현 작가

김수현 작가 ⓒ SBS


친숙하고 익숙한 김수현식 가족극, 미혼모 문제를 끌어 오다

3대가 모여 사는 중산층 혹은 소시민 대가족. 깐깐한 1대와 개성 있는(그 중 꼭 끼어있는 수다쟁이 캐릭터를 포함해) 2대 형제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통통 튀거나 순종적이거나 자기주장 강한 3대 손자 손녀들. 김수현 가족극의 일반적인 캐릭터 구성이다. 이들이 한데 모여 살거나 왕래하며 복작복작 만들어내는 일상과 사건들, 그리고 이어지는 휴머니티와 교훈, 이를 통한 한국 사회의 반영까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무자식 상팔자> 역시 가족 간의 갈등과 이해, 사랑이 전면에 배치될 것이 예고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고지식함이 절약과 같은 사회성(?)으로 발현된 80대 가부장 안호식(이순재 분), 그의 잔소리에 신물이 난 어머니가 있으며, 고등학교 평교사로 퇴직한 장남 안희재(유동근 분)와 맏며느리 이지애(김해숙 분)가 부모를 모시고 산다.

대기업을 정년퇴직한 차남 안희명(송승환 분)과 깐깐한 둘째 며느리 지유정(임예진 분), 깨가 쏟아지지만, 자식이 없는 셋째 부부 안희규(윤다훈 분)과 신새롬(견미리 분)이 2세대 라면 3대는 이제 막 결혼한 차남의 아들 안대기(정준 분)와 지방 법원 판사인 희재의 첫째 딸 안소영(엄지원 분) 등이 '무자식 상팔자' 소리가 나오게 할 손자 손녀들이다.

갈등의 축은 일단 안소영이 쳤다. 미혼모로 살 결심을 한 이 36살 노처녀는 사귀다 헤어진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부모에게 숨겨왔다. 이를 신새롬이 우연히 발견, 안희재 부부에게 알리게 되는 것이 2회의 마지막 장면.

대가족에게 불시착한 '미혼모' 문제와 더불어 정년퇴직 뒤 우울증이 걱정되는 희명과 오로지 '경제적 안정'에 목숨 거는 유정의 갈등도 한 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2화에서 "당신, 입 싸"라거나 "50억, 60억 정돈 있어야"라며 희명의 화를 돋우는 유정의 부부싸움 장면의 리얼리티에, 중장년층 시청자들은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헌데 어디 이뿐이겠는가. <무자식 상팔자>는 확실히 캐릭터들의 소소한 일상과 이에 대처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을 실감 있게 그리는 김수현 가족극 특유의 흡인력이 '살아 있는' 드라마다. 더불어 선 굵은 캐릭터로 익숙한 유동근의 친근감 넘치는 연기를 필두로 이순재, 김해숙, 송승환, 윤다훈, 정준 등 김수현 사단의 안정된 연기 또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이름값만큼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김희선을 비롯한 여러 젊은 배우들을 '연기자'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 김수현 작가 아니었던가.

 JTBC의 개국 1주년 특별기획 <무자식 상팔자>

JTBC의 개국 1주년 특별기획 <무자식 상팔자> ⓒ JTBC


종편의 <모래시계>? 일단 <아내의 자격>을 뛰어넘어야

"시청률이라는 숫자에 오매불망하는 사람도 아니고 '종편에서 볼만한 가족드라마 한 편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다."

지난 6월 <무자식 상팔자>의 집필 소식이 알려진 뒤 김수현 작가가 밝힌 '종편 이적' 소감이다. 그러면서 그는 ""방송쟁이 중 한 사람으로서 초기 자리 잡기에 고전하고 있는 종편들이 살아남아 방송 종사자들 일터가 망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 덧붙였다. TV조선과 지상파를 저울질하다 JTBC 행을 선택했다던 김수현 작가의 행보는 회당 1억 원의 집필료를 받았다는 보도와 함께 방송계의 핫뉴스였던 것이 사실이다.  

종편 1위 자리를 굳히고, 시사보다 우선 드라마와 예능으로 채널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JTBC로서는 SBS 개국 초기 국민드라마 <모래시계>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아니, <사랑이 뭐길래>와 같은 국민적인 시청률이나 <엄마와 뿔났다> 같은 신드롬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터.

그러기에 <무자식 상팔자>는 안성맞춤이거나 다소 안일하다. 김수현 작가 말대로 볼만한 가족드라마가 될 것이란 예상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캐릭터들의 면면이나 지상파 드라마 못지않은 '김수현 사단' 배우들의 무게감도 매우 안정돼 있다. 중년 우울증이나 미혼모, 고부갈등 등 현실감 넘치는 소재도 중년층 이상 시청자의 구미를 당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헌데 거기까지다. 김수현 작가가 부딪쳐야 할 장벽은 다름 아닌 내부의 적, 종편의 시청률이다. 1.683%와 1.446%, <무자식 상팔자>의 1, 2회 시청률이다. 평소 김수현 작가의 지상파 드라마와 비교한다면 10분의 1도 못 미치는 수치다.

희망은 있다. 종편채널들이 전반적으로 '장년노년 채널'로 굳혀지고 있다는 소식 말이다. TV조선이 사활을 걸었던 대작 <한반도>가 처참하게 좌초했던 전례에서 볼 수 있듯, 오히려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가족드라마의 장점 말이다. 종편 최초로 4%를 넘긴 JTBC의 히트작 <아내의 자격> 역시 정성주 작가의 내공이 빛을 발했던 드라마 아니었던가.

JTBC가 김수현 작가의 집필료만 수십억을 들이며 사활을 건 30부작 <무자식 상팔자>. 초기 시청률이나 방영 후 반응으로 예상컨대, 아마도 <아내의 자격> 만큼의 반향은 이끌어 낼 것이다.

하지만 스타 작가의 이름값에 기대어 기존 김수현식 가족극과 별다를 바 없는 드라마에 막대한 집필료를 출혈하는 것이 JTBC로서나 방송 생태계 전반에 있어서나 어떤 도움이 될까. 더욱이 종편의 극약처방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가 그럴 가치가 있는 문제작이거나 걸작의 반열에 오를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무자식 상팔자>는 한국 드라마의 리얼리즘을 이끌어온 김수현 작가가 종편의 채널 인지도를 끌어올리느냐, 아닌 그 무덤에 묻혀버리느냐 하는 극단의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를 작품이다. 과연 김수현 작가는 이 경계에서 방송사와 작가 본인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무자식상팔자 김수현 작가 JTBC 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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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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