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파괴된 사나이>로 유명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 <간첩>은 한반도의 아픔인 '분단'을 소재로 합니다. 추석 특수를 겨냥했던 이 영화는 간첩과 국정원의 대립으로 만들어내는 액션과 간첩이라는 상징이 품고 있는 이미지를 비틀며 코미디적 요소를 만드는 오락영화입니다. 영화는 이런 점에서 <간첩 리철진>과 비슷하지만 사실 장훈 감독의 <의형제>가 떠오릅니다.

실제 <간첩>의 몇몇 시퀀스는 <의형제>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당히 유사합니다. 예를 들면 고가도로 추격 장면은 <의형제>의 초반과 비슷합니다. 영화 <간첩>에서 김 과장(김명민 분)이 최 부장(유해진 분)을 안고 뛰어내리는 장면은 <의형제>에서 송지원(강동원 분)이 그림자(전국환 분)를 안고 뛰어내리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손잡은 간첩-국정원 요원, 그 너머에는...


 영화 <간첩> 포스터

영화 <간첩> 포스터 ⓒ 영화사 울림

물론 <의형제>와 다른 점도 있습니다. <헤럴드 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언론 시사회 당시 우민호 감독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간첩을 그린 작품이지만, 중점을 둔 건 간첩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FTA, 전셋값 폭등, 싱글맘, 독거노인 문제 등으로 아파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 싶었다."

<의형제>에서 이한규(송강호 분)와 송지원의 이념적 대립을 가장의 비애에 초점을 맞춰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반면 <간첩>은 등장인물들을 <의형제>보다 확장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서민들의 애환이라는 좀 더 큰 주제를 다뤘습니다. 하지만 이 주제의식은 윤 고문(변희봉)의 죽음 전까지만 드러납니다.

영화 후반부에 김 과장과 최 부장이 본격적으로 대립하면서, 이야기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 만큼 변질됩니다. 농민, 싱글맘, 독거노인 등의 캐릭터들이 하나둘 무대에서 내려옵니다. 윤 고문은 죽고, 강 대리(염정화)와 우 대리(정겨운)는 총상으로 피신합니다.

그 와중에 '간첩' 김 과장과 '국정원 요원' 한 팀장(정만식 분)은 '가장의 비애'라는 유대감을 형성하며 최 부장과 대결합니다. 서로 쫓고 쫓기는 관계에 놓인 이들이 무슨 이유로 유대감을 형성했을까요. 그 이유는 두 등장인물의 아들들이 한 어린이 야구단에 소속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김 과장과 한 팀장 모두 '아버지'로서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화 <간첩>, 민생 문제는 다루다 말았다

 영화 <간첩> 중 한 장면

영화 <간첩> 중 한 장면 ⓒ 영화사 울림


한편, 이데올로기에 상처받은 한 가장을 바라보는 태도는 <의형제>와 상당히 대비됩니다. <의형제>는 이데올로기를 강요받는 한반도를 떠나 제3국으로 피신해 '의형제'를 완성한다는 내용으로 끝납니다. 이는 가히 '판타지'라고 부를 만하죠. 하지만 <간첩>은 마치 <의형제>의 현실적 결말을 보여주듯 "남한이고 북한이고 다 죽여 버리겠어. 조국이 내게 해준 게 뭐가 있어?"라고 말한 김 과장에게 한 팀장은 "아버지로 살고 싶으면 이중간첩이 되라"고 강요합니다.

한 팀장의 제안은 이데올로기에 고통받는 한 가장을 주목하기보다는 김 과장의 신분(남파 간첩)에 주목하고, 그것을 '먹고 사려면 남한에 붙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과연 김 과장은 그 후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한쪽의 간첩을 넘어 이제 이중간첩이 된 상황에서 북의 지령인 '목란'이 필 때마다 가정을 지키는 것은 더욱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우민호 감독이 정말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영화에 '민생의 문제'를 담아 위로의 웃음을 건네려 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자기네가 뽑아놓은 대통령을 김정일보다 더 욕하는 나라인데 간첩이 할 일이 어디 있어요?"라는 김 과장의 대사를 처음에는 단순히 웃음으로 넘길 수 있지만, 결말을 되씹어보면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듭니다. 오히려 저는 영화가 국가 이데올로기를 비켜나가는 척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그리고는 있지만, 나중에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예속되는 한 사람'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영화의 내용은 '우리 편으로 붙어라'

영화는 서민과 민생 사이에 간첩을 넣어, 남파간첩마저 괴로워할 정도로 우리사회가 살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결말에서 그 간첩에게 남한에서 살던 대로 살고 싶으면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따라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정겨운이 연기한 우 대리를 보면, 소를 사랑하고 시골 노인들을 대신해 앞장서는 순박한 시골 청년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농민들을 선동하고 '반미'를 맹목적으로 외치는 멍청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우민호 감독은 서민들의 아픔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되레 서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기보다는 그것을 '국가 안보'라는 거시적 관점으로만 묶어버리는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윤 고문이 '박통 시절'을 그리워했던 것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hoohoot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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