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간첩>을 두고 설왕설래 말들이 많다. 혹자들은 영화가 '생계형 간첩'들을 출연시켜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통렬히 꼬집었다고 극찬하는 반면,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훌륭한 배우들과 흥미로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그것 밖에 만들지 못했느냐며 비판하기도 한다. 남북관계는 한국영화만 가지고 있는 최고의 흥행코드인데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가지고도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 <간첩>의 엉성한 구성, 아쉽다

영화 <간첩> 포스터 제목 '간첩'은 필연이다

▲ 영화 <간첩> 포스터 제목 '간첩'은 필연이다 ⓒ 울림

불행히도 영화 <간첩>에 대한 이런 극단적인 평가는 후자에 무게가 더 실리는 듯하다. 예전과 달리 추석 기간 중 거의 유일한 코미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스포트라이트를 그만큼 받지 못했을 뿐더러 관객 수 역시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영화 <간첩>은 왜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는 걸까?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영화 <간첩>의 가장 큰 문제는 엉성한 구성이다. 코미디도 아닌 것이, 드라마도 아닌 것이 그 어중간한 위치에서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소진시킨다. 처음에는 제법 쓸 만한 유머들을 배치해 놓은 듯 하지만, 극이 갑작스레 진지해지면서 기존의 유머 코드들이 극 속에 스며들지 않고 마냥 겉돌기만 한다. 관객의 입장으로서 어디서 웃어야 할지, 어디서 울어야 할지 제대로 된 포인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와 같은 문제는 후반부 액션 장면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영화는 꽤 공을 들인 액션을 선보이는데 이는 관객들에게 오히려 뜬금없기만 하다. 영화의 주제는 '생계형 간첩'을 통해 보는 대한민국 서민의 애환인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이야기에 비해 영화가 액션 신에 너무도 많은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북관계에 대해 특별한 주제의식이나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감독은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더욱이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현재의 남북관계는 영화 <간첩>의 흥행에 있어서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나마 북한이 현재 우리와 교류를 하고 있다면 그것이 하나의 발단이 되어 관객들의 시선이라도 끌겠지만, 현재 남북관계는 -최소한 이 정부하에서-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관심 밖의 일이다.

북한도 남한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시대. 오죽하면 여권이 대선을 앞두고 소위 '북풍' 대신 '민생치안'을 이용하려 들겠는가. 이는 그만큼 북한과 관련된 이슈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약발'이 떨어졌다는 증거이다. 올 봄에 개봉했지만 별다른 흥행을 올리지 못했던 <코리아>와 마찬가지로 영화 <간첩> 역시 남북관계와 관련된 어떤 마케팅 효과도 입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살기 어려운 '21세기 생계형 간첩'


가장의 회식자리 피곤한 술자리

▲ 가장의 회식자리 피곤한 술자리 ⓒ 울림


어설픈 내용과 유기적이지 못한 구성, 그리고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기에는 부적절한 시의성.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간첩>은 일정 부분 나의 흥미를 끌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오래된 고정 간첩'이라는 설정 때문이었다. 과연 10년이 넘게 남파되어 있는 간첩이라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혹자들은 영화 <간첩>이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간첩은 간첩이되 '생계형 간첩'으로서 간첩도 살아가기 힘든 이 시대를 풍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간첩>에서 가장으로서 고군분투하는 김 과장(김명민 역)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짠하기 그지 없다. 불법 비아그라를 밀수입하여 되팔아 전세금 마련하고, 남북의 가족들 먹여 살리고, 심지어는 아들 야구부 코치에게도 뒷돈을 주어야 하는 가장. 그것이 결국 이 시대의 슬픈 현실 아니던가.

그러나 영화 <간첩>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서민의 모습으로 먹고 살기 힘든 이 시대를 풍자하고 있다고는 하나, 본질적으로 간첩임을 잊지 않는다. 어떻게든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지만, 절대 남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존재로서의 간첩을 주목한다. 어엿한(?) 이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남들과의 차별을 묵묵히 감수해야 하는 존재로서의 간첩.

영화는 이와 같은 간첩의 특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지만 정상적인 국민대접을 받지 못하는 소수자는 결코 영화 속 간첩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 달리 국가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사회의 가장 변두리로 내몰려 시대의 풍파에 시달리는 사람들. 간첩은 명분이라도 있지, 현재 우리 사회는 그와 같은 비국민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중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국가와 사회, 어디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중이며,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발생되는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심각하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영화 속 10년 넘은 고정간첩들의 면면은 결코 범상치 않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는 덕에 불법 비아그라를 팔아서 생계를 꾸려가는 김 과장을 포함하여 그들 모두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소수자의 삶이 떠오르는 영화

간첩을 통해 우리를 본다 이 시대의 자화상은 스파이가 아니라 간첩이다

▲ 간첩을 통해 우리를 본다 이 시대의 자화상은 스파이가 아니라 간첩이다 ⓒ 울림


복비 10만 원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장애 아동을 자식으로 두고 있는 이혼녀 강 대리(염정아 역)와 한미FTA로 생계를 위협받는 농민들을 대표해 싸우고 있는 우 대리(정겨운 역), 그리고 1970년대 화려한 시절에 대한 기억을 먹고 사는 독거노인 윤고문(변희봉 역) 등. 결국 그들 모두는 현재 우리 사회의 변두리에서 겨우겨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표상이다. 영화에서 그들은 북한의 지령과 상관없이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훔치고자 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 소수자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준다. 국가와 사회의 배려를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생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돈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 보수단체들은 영화 <간첩>의 간첩 미화를 문제 삼으며 빨갱이 영화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간첩들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간첩이 사라진 21세기 대한민국의 불편한 '쌩얼'을 이야기 한다. 간첩이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포털 지도 검색으로 지리를 파악하는 시대에도 사회적으로 차별 받고 보호 받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영화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영화 <간첩>의 제목을 봤을 때, 난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남북과 관련하여 별 이야깃거리도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에 대놓고 제목을 <간첩>으로 하다니, <스파이>도 아니고 하필 <간첩>.

그러나 그 판단은 틀렸다. '간첩'이야말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냉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그리고 그 필요성이 사라진 지금에는 강력한 국가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냉전체제에서 경계인 혹은 비국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간첩. 그들은 곧 우리 시대의 자화상인 것이다.

솔직히 말하건대, 그 재미로만 볼 때 영화 <간첩>을 자신있게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영화 <간첩>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좀 더 많은 이들이 공유하길 바란다. 현재 우리 사회는 간첩도 먹고 살기 어려운 사회이며, 아직도 많은 이들을 간첩 마냥 차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간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