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인정받고 있는 2011년 1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 모습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인정받고 있는 2011년 1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 모습 ⓒ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최고라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은 4회인가 5회인가를 넘어설 즈음이었다. 연일 광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외국에서 온 손님들은 신기하게 본다고 했고, 덕분에 명성이 해외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말을 이름 있는 감독들은 심심찮게 하고 있었다.

물론 빈말로 하는 공치사적인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부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만큼, 이제는 어느 순간 명확한 사실로 자리잡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최근 아시아 영화제들 간 경쟁에 대한 자신감을 이렇게 말했다.

"홍콩이나 도쿄, 상하이 등은 부산의 상대가 안 된다. 중국이 성장한다고 하는데 앞으로 20년은 부산을 절대 쫓아 올 수가 없다."

아시아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을 만큼 입지가 탄탄해 졌다고 강조하는 목소리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17회까지 이어오는 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해낸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악어'로 1997년 2회 부산영화제에 소개됐던 김기덕 감독이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있다

'악어'로 1997년 2회 부산영화제에 소개됐던 김기덕 감독이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1996년 국내 처음으로 '국제영화제' 시대를 연 이후 부산은 17회를 이어오며 홍상수·김기덕·박찬욱·봉준호 등 유명 감독들의 성장을 뒷받침 했다.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1회 상영작이었고,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의 첫 작품 <악어>는 2회 영화제를 통해 소개됐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영화의 제작을 지원하고, 전 세계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도 맡으면서 아시아 영화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변방의 아시아 영화들을 발굴해 세계 영화계에 알리고 인재를 키워온 것도 부산의 역할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17회 부산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부산영화제의 특징과 대내외적인 위상, 그리고 현재의 모습 등을 짚어 봤다.

"비프 폐인이여, 우리의 명절을 즐기자!"

열정적인 관객: "어느 나라에도 이런 관객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리는 젊은 관객들이 넘쳐나고, 그들의 질문은 매우 수준 높다." 부산을 찾았던 외국 감독들이 심심치 않게 하는 이야기다. 2000년 부산을 찾았던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은 몇 개의 질문을 받던 중 "이 중에서 영화 전공자는 손들어 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관객들의 질문 수준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13회 영화제 때 심사위원장으로 부산을 찾았던 프랑스 배우 안나 카리나는 "관객들이 너무 젋다.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 특별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운대를 가득 메운 부산영화제 관객들

해운대를 가득 메운 부산영화제 관객들 ⓒ 부산국제영화제


사실 형편없는 시설로 이름만 국제영화제였을 뿐 실상은 동네영화제에 가까웠던 1회 부산영화제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관객들 때문이었다. 무려 18만이나 되는 관객들이 미어터잘라 남포동의 상영관을 메웠고, 끝없는 매진이 이어지면서 부산은 해외 영화계에서 급부상했다. 해마다 예매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은 부산영화제 전통이 됐다. 올해도 20만의 관객들이 상영장 주변을 누빌 예정이다. 그들은 부산영화제의 가장 큰 힘이기도 하다. 

'비프(BIFF) 폐인'이라고 불리는 열혈 관객들까지 생겨날 정도인데,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영화제가 다가오면 이렇게 선동하곤 한다.

"'비프 폐인' 여러분. 우리의 명절날 한 자리에 모여서 미친듯이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사랑을 나눕시다."

영화제는 영화의 해방구

아시아 영화제 경쟁: "상하이가 부산을 따라올 수 없는 것은 검열 때문이다. 홍콩도 중국에 반환되니 어쩔 수 없다. 영화제는 영화의 해방구인데 검열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발전할 수 없다. 뿌리 깊은 중화사상 또한 중국 영화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말하는 중국이 부산을 쫓아 올 수 없는 이유다. 그는 "도쿄영화제 경우 수입배급업자들이 조직위원으로 있다 보니 자기들이 수입한 할리우드 영화를 영화제에서 상영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년,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경쟁 영화제들이 쇠퇴하면서 그 자리를 부산이 차지했다. 더 이상 영화로는 부산을 쫓아올 수 없게 되자 아시아 영화제들의 경쟁은 마켓으로 옮겨 갔다. 중국이란 큰 시장을 곁에 두고 있는 홍콩과 이웃 도쿄 등은 영화 장터를 크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고, 부산은 이를 뒤쫓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역시 따라잡을 수 있다고 낙관할 수 있다. 펀드를 통해 아시아 영화들의 제작을 지원하고 있고, 교육을 통해 새로운 영화 인력을 육성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부산영화제의 우군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지역 감독들의 영화 기획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프로젝트 마켓' 시상식

아시아지역 감독들의 영화 기획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프로젝트 마켓' 시상식 ⓒ 부산국제영화제


검열과 표현의 자유 위한 싸움은 진행형

표현의 자유: 중국이 검열 탓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부산은 표현의 자유 제약에 굴하지 않고 맞서면서 아시아에서 우뚝 설수 있었다. 영화제 초창기 사전심의를 받아야 했던 시절, 이를 막기 위해 영화제 관계자들은 심의위원들에게 술을 잔뜩 먹이고, 시간이 촉박해서야 작품들을 잔뜩 내 놓는 방법으로 피해갔다. 2회 영화제 때는 검열철폐를 외치던 시위를 경찰의 진압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지금은 심의를 면제받지만, 검열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싸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치적 이유로 구금된 이란의 자파르 파니히 감독을 위해 지지성명을 발표하고, 망명 중인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의 작품 제작을 지원하는 것 또한 창작의 자유 제한에 맞서겠다는 의지다. 한국 역시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언론자유가 후퇴하고 있는 현실에서, 부산영화제가 지향하는 노력은 그 가치가 크다 할 수 있다.

 1997년 2회 부산영화제 기간 중 남포동에서 검열 철폐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화인들. 메가폰 잡고 있는 변영주 감독, 우측으로 김동원 감독과 홍형숙 감독

1997년 2회 부산영화제 기간 중 남포동에서 검열 철폐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화인들. 메가폰 잡고 있는 변영주 감독, 우측으로 김동원 감독과 홍형숙 감독 ⓒ 부산국제영화제


대학 강의실서 틀던 독립다큐 극장에서 상영

독립영화: <무산일기> <돼지의 왕> <혜화, 동> 등등 부산에서 첫 선을 보였던 독립영화들은 국내외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독립영화의 발전에는 부산영화제가 존재한다. 개봉은커녕 대학가 강의실이나 강당, 사회단체 등을 전전하던 영화들은 부산영화제가 생겨나면서 극장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영화제 초기 김동원 감독의 6월 항쟁을 이야기한 <명성, 그 6일간의 기록>이나 제주 4.3을 조명한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위안부 할머니들을 그린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등은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몇 작품은 극장에 개봉되는 성과를 이뤄냈다. 독립영화 제작지원 역시 부산영화제가 선도하면서 다른 영화제들로 파급됐다. 독립영화를 받쳐주는 든든한 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과 관객 거리 좁히고 소통하게 만든 GV 처음 시작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 지금은 일상화됐지만 영화 상영 직후 관객들이 감독이나 배우와 대화를 나누는 GV의 시작은 부산영화제였다. 영화도 보고 감독·배우와 이야기도 나눈다는 게 생소했던 시기였기에 이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매진의 1순위는 GV가 있는 상영회일 만큼 영화제의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초기에는 진지한 대화가 오래 지속된 나머지 다음 영화 상영 전까지 끝나지 못해 밖으로 나가 나머지 대화가 이어질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초기 부산영화제 GV는 당시 프로그래머였던 이용관 현 위원장이 이끌었는데, 지금도 중요한 GV에는 그가 직접 나선다. 감독과 관객 간의 거리를 좁히고 적극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제의 필수 프로그램이 됐고, 방식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배우이기도 한 구혜선 감독은 지난해 자신의 작품 첫 상영 외에 예정에 없던 나머지 상영에서도 GV에 나서 관객들의 큰 환영을 받기도 했다.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GV는 부산영화제의 자랑이다, 올해는 무려 328회가 예정돼 지난해 대비 13% 증가했다"며 "전세계 영화제중 이렇게 GV가 많은 영화제는 찾기 힘들다, '영화, 영화인, 관객과의 만남'은 BIFF의 가장 중요한 지향점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15회 부산영화제에서 프랑스 여배우 줄리에 비노쉬가 무대에 앉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15회 부산영화제에서 프랑스 여배우 줄리에 비노쉬가 무대에 앉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해외에서는 부산영화제만 인정해 준다

국내 영화제들의 맏형: 부산영화제가 만들어진 이후 부천·전주·제천 등 다양한 영화제들이 생겨났다. 국내 영화제 르네상스의 시발은 부산이었다. 그러다보니 맏형으로서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영화제들의 국고 지원 등이 논의될 때 가장 앞에서 애썼고, 제천·DMZ·여성·청소년 영화제 등 작은 영화제들을 돕고 있는 등 부산은 국내에서는 영화제 중의 영화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은 "서로 간에 경쟁도 벌이지만 해외에서의 위상은 큰 차이가 난다" 말했다. 외국에서는 부산만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영화제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위원장이 바뀌면서 인정을 못 받고 인지도도 낮은데, 부산은 지난 17년 동안 다져놓은 인맥이 탄탄해 한국 영화의 대표로 인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국제영화제 BIFF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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