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는 싸이 자신과 그의 조국인 한국에 대한 인식이 거의 백지상태인 미국인들을 상대로 대박을 쳤다.

싸이는 싸이 자신과 그의 조국인 한국에 대한 인식이 거의 백지상태인 미국인들을 상대로 대박을 쳤다. ⓒ YG엔터테인먼트


[기사보강 16일 11시 28분]

뉴욕...
꿈들로 이루어진 콘크리트 정글

이곳에서 당신이 이룰 수 없는 건 없어
당신은 뉴욕에 있으니까.

뉴욕의 거리들은 당신을 새롭게 만들어 줄 거야
당신에게 영감을 줄 거야

이곳이 바로 뉴욕.

[Jay-Z Empire State of Mind. (Feat Alicia Keys)]

때때로 특정한 장소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노래들이 있다. '춘천 가는 기차'와 '제주도의 푸른 밤'을 들으면 문득 그곳으로 여행이 떠나고 싶어지듯이. 그런 점에서 제이지와 스팅은 일정한 공통점을 가진다. 둘 다 뉴욕을 소재로 한 메가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노래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뉴욕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제이지(Jay-Z)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와 스팅(Sting)의 '잉글리시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을 두고 하는 소리다.

다만 스팅과 제이지가 그리는 뉴욕은 상반된다. 스팅이 표현하는 뉴욕의 이미지가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한쪽만 익힌 토스트를 좋아하는 고상한 뉴욕거주 영국인으로 집약된다면 제이지의 뉴욕은 음침한 할렘가와 온갖 종류의 택시가 관광객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콘크리트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역동적인 도시다.

제이지와 스팅, 그리고 싸이의 공통점

 제이지와 알리샤 키스의 합동 공연 모습.

제이지와 알리샤 키스의 합동 공연 모습. ⓒ google.com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고 그렇듯, 막상 직접 겪어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생활양식이지만 뉴요커의 라이프스타일은 힙합과 재즈의 리듬으로 포장되고 그것은 곳 뉴욕에 대한 환상이 된다. 그곳의 환경이 어떤지 알고 있으며 이방인으로서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적지 않음을 알면서도 샘솟는 그 도시에 대한 환상. 음악은 그것을 부추기는 힘이 있다. 물론 이 두 노래의 세계적 흥행은 신사 문화와 할렘이라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품은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가 가진 힘이기도 하다. 제이지와 스팅 두 사람이 가진 창작 역량은 말할 것도 없고.

싸이의 가공할 힘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스팅의 고급스러움과 제이지 특유의 간지가 그에게는 없다. 한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는 미국인 역시 그리 많지 않다. 당연히 서울의 강남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들이 많을 리가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미국인들에게 소비되는 한국이란 나라의 이미지는 "어라, 페이퍼타올이 요기잉네?"라고 말하는 <로스트>의 대사, 딱 그 수준이다. 싸이는 싸이 자신과 그의 조국인 한국에 대한 인식이 거의 백지상태인 미국인들을 상대로 대박을 쳤다. 맨해튼 스타일도 롯폰기 스타일도 아닌 강남 스타일로.

이제 <CNN>와 <ABC>는 강남 스타일의 잘못된 발음과 표기법을 교정해주기까지 하면서 강남이라는 장소의 존재를 한국의 언론 대신 전 세계에 설명한다. 미국 사람들은 "낮에는 따사롭고 인간적"이며 "때가 되면 완전히 미쳐버리는 "열정적인 사람들의 정체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싸이가 순전히 타의에 의해 미국에 진출했듯, 강남이라는 지역의 인지도 역시 서울시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세계에 알려졌다. 팝 중에 도시를 소재로 하는 곡들이 대부분 뉴욕, 파리, 런던, 도쿄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서울은 이제 막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메트로폴리스로 거듭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분명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 강남스타일이 한국에 안겨준 관광 홍보효과와 브랜드 가치 상승, 그리고 국위선양 같은 정치, 경제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상당수의 기성 언론들이 한류를 바라보는 관점은 전 세계에 한국의 이름을 알린다는 애국주의적 환상, 한류의 경제적 효과로 대변되는 경제 제일주의 딱 두 가지 관점에 머문다.

경제 제일주의와 애국주의가 죽어야 스타일이 산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 YG엔터테인먼트


이런 시각은 당연히 가장 먼저 주목받아야 할 뮤지션의 음악을 마케팅과 애국주의의 수단으로 자연스레 밀어낸다. 이번에도 싸이 성공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은 예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싸이라는 뮤지션이 가진 음악적 스타일과 창작 역량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강남스타일 열풍의 가장 결정적인 주체인 싸이에 대한 조명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그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히트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좀 놀아본' 서른다섯 아저씨의 더 놀아 보고싶은 욕망의 분출과 대중들의 일탈 욕구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창작자 개인의 욕망이 대중의 욕망과 맞아떨어졌을 때 대중음악은 놀라운 파급력을 지닌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뉴욕과 도쿄, 런던, 그리고 파리 스타일은 대중과 창작자의 지속적인 욕망의 결합, 그것의 축적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다. 그곳에 애국주의나 산업 제일주의가 낄 자리는 그리 넉넉하지 않다. 적어도 그것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국이,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가 세계적 핫스팟으로 자리 잡는 것 역시 여기서 출발한다. 강남스타일이 가져올 국익보다 싸이라는 뮤지션에 대해 온전히 집중할 줄 아는 것. 국책사업으로 기획사를 지원하기 전에 뮤지션들의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해주는 것. 애국주의와 경제 제일주의의 노골성이 죽어줘야 스타일이 산다. 환상은 누군가의 노골적인 자랑에 의해 심어지는 게 아니다. 

싸이 강남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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