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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이도남씨,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저는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나훈남(가명, 30대)입니다. 5년 전 결혼은 했지만 제겐 부부생활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가는 것도 그저 아이들을 보는 낙 때문이었죠. 아내와는 결혼 초부터 성격이 맞지 않은데다 몇 차례 크게 다툰 후로 대화를 하지 않고 각방을 쓴 지가 한참 되었습니다. 서로 소원해져서 이혼만 안 했다 뿐이지 남남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우연히, 평소 친한 직장 여자 후배 A와 단 둘이서 술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서로 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A는 저의 고민에 깊이 공감해주었고 위안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함께 밤을 보내게 되면서 그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그후에도 가끔씩 깊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을까요. 아내가 우리의 관계를 알아차리면서 모든 게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제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와 사진, 통화내역을 통해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급기야는 어느날 둘이서 모텔에서 나오는 장면을 아내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며칠 전 법원에서 온 우편물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혼 소장이란 서류였습니다. 아내가 이혼 재판을 걸었더군요. 곧 간통죄로 고소도 하겠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법적으로 부부인 상태에서 딴 여자를 만난 제 책임이 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별거나 다름없이 살아왔는데도 이혼소송과 형사고소를 당해야 하나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녕하십니까. 이혼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제대로 이혼 도와주는 남자, '이도남'입니다. 

여러분은 사연 속의 나훈남씨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연민의 정이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보시나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논쟁은 뒤로 미루고 현실을 봅시다. 법은 냉혹합니다. 제가 보기엔 나씨는 이혼만 당하면 그나마 다행인 상황입니다. 형사처벌까지 받게 생겼으니까요.

냉정하게 따져보겠습니다. 이씨의 행위는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로 민법 840조에 나오는 재판상 이혼 사유에 해당합니다. 또한 직장 후배와 성관계가 있었다면 형법상으로는 간통죄에 해당합니다. 간통은 징역형(2년 이하)만 있는 죄입니다.  

특별한 범죄 '간통죄', 가정을 보호할 수 있을까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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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간통죄가 부부 간의 애정과 가정을 지킬 수 있을까요. 저로서는 회의적입니다. 그 근거를 들어보겠습니다. 간통죄는 여러모로 특별한 범죄입니다.

우선, 간통죄는 외도 중에서 직접적인 성관계,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성기의 결합만을 처벌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면 죄가 되지 않습니다. 모텔에서 옷을 벗고 있는 상태로 현장에서 적발된 '불륜남녀'가 성관계만은 하지 않았다고 잡아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간통죄는 처벌의 정당성을 떠나 성관계를 제외한 모든 외도나 불륜을 전혀 막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둘째, 간통은 배우자의 의사에 따라 죄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간통죄는 친고죄입니다. 친고죄란 쉽게 말해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죄를 물을 수 있는 범죄입니다. 간통죄는 배우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설사 고소를 했더라도 1심 판결이 나기 전에 취소하면 다시 아무 일 없던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또한 배우자가 종용(사전에 허락)하거나 유서(사후에 용서)하면 죄가 되지 않습니다. 간통사실을 알게 된 뒤 6개월이 지나도 고소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국가기관의 형벌권 행사가 지나치게 배우자의 뜻에 따라 좌우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셋째, 간통죄로 고소하려면 이혼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229조)에는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가 아니면 고소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소한 배우자와 다시 결혼을 하거나 이혼소송을 취하해도 고소는 효력을 잃게 됩니다. 그러니까 간통죄는 결혼생활을 보호하기보다는 이미 가정을 깬 책임을 바람난 배우자에게 묻는 셈입니다.

"법이 이불 안까지 들어와서는 안된다"

지난 2008년 5월 8일 오후 서울 계동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열린 간통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에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간통죄 위헌을 제청한 법률대리인의 주장을 듣고 있다.
 지난 2008년 5월 8일 오후 서울 계동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열린 간통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에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간통죄 위헌을 제청한 법률대리인의 주장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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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간통사건 재판을 담당하던 도진기 판사는 간통죄 처벌조항에 대해 위헌이 의심된다면서 헌법재판소(헌재)에 위헌제청결정을 했습니다. 결정문에서 밝힌 장문의 이유가 주목할 만합니다.

도 판사는 "간통의 본질은 부부 간의 성적 성실의무 위반이며 도덕위반이라는 점에 있다"며 부부의 의무위반은 계약상 책임에 가깝기 때문에 "간통행위는 배신행위일지언정 범죄행위일 수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계약위반 책임 혹은 불법행위 책임을 묻고 이혼법정이나 민사법정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지 형사법정에 세워야 할 문제는 아닌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도 판사는 "간통죄의 위헌성 판단이 곧 간통의 정당성 인정은 아니며 민사적, 도덕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면서도 "법이 이불 안까지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동안 간통죄는 성적자기결정권 침해 등 위헌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4차례 헌재의 판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합헌이었습니다. 다만 가장 최근인 2008년에는 위헌 5 : 합헌 4로 헌법재판관 다수가 위헌 판단을 내렸으나 위헌정족수(6명)에 이르지 못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조만간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간통죄 폐지는 시기상조'라거나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의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만만찮습니다.

일리는 있습니다만 개인 의견을 묻는다면 저는 폐지 쪽에 가깝습니다. 왜냐고요? 간통 고소가 상대를 향한 보복 수단이나 재산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또 간통죄로는 가정을 지키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이미 깨진 가정을 '확인사살'하는 쪽에 가깝다는 겁니다.

부부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을 꼭 형사처벌하는 방식으로 복수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차라리 민사상 손해배상액을 높인다거나 다른 금전적인 제재를 가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저는 간통죄 처벌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각방 쓰더라도 외도는 이혼 사유... 형사처벌 받을 수도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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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훈남씨의 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나씨의 입장에선 다소 억울할 만도 합니다. 지금의 부인과 사실상 남남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딴 여자를 만났다고 해서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한다니 부당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씨의 항변은 받아들여지기 어렵겠습니다. 

물론,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있더라도 사전동의 또는 사후용서하면 이혼 사유로 삼을 수 없습니다. 간통죄에서도 종용이나 유서가 있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가 사전동의이고 사후용서인지입니다.

법원은 "당사자가 더 이상 혼인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고 이혼의사의 명백한 합치가 있는 경우" 비록 부부사이라도 사전동의가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서류상 부부라 할지라도 사실상 이혼 상태였거나 이혼에 합의한 정도라야 외도를 용인하는 셈이라는 겁니다.

또 외도를 용서한 것으로 볼 수 있으려면 ▲ 부정행위를 확실하게 알고 자발적으로 한 것이어야 하고, ▲ 부정행위에도 불구하고 혼인관계를 지속시키려는 진실한 의사가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나씨 부부는 각방을 쓰고 있고, 대화도 없으며, 애정도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외도가 용인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무관심 혹은 단순한 묵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에는 서로 부양, 협조할 의무가 있고 혼인생활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이혼하기 전에는 섣불리 새로운 이성을 만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혼 재판이 진행된다면 나씨의 귀책사유로 이혼한다는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나아가 나씨의 아내가 이혼소장과 함께 고소장을 내고, 재판에서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나씨와 후배 A는 모두 간통죄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외도한 배우자, 원만한 해결책은 없을까

나씨에겐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지금의 부인과 원만하게 이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재판으로 가지 말고 협의이혼을 하되, 재산문제와 자녀 양육문제를 원만히 합의하셨으면 합니다. 또한 아내에게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고 간통죄 고소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잘 설득하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만일 필요하다면 재산문제와는 별도로 합의서와 같은 형식으로 형사고소를 하지 않는 대신 합의금조로 얼마를 지급한다는 서류를 작성하는 것도 고민해 볼 만합니다. 나씨 입장에서는 이혼 소송으로 가면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으므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결론이 날 수도 있으니 조금 손해 보는 셈치고 소송 전에 끝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나씨의 아내도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하여 두 사람이 마지막이나마 아름다운 모습으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외도는 배우자에게 정신적 상처를 주는 행동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외도 못지 않게 서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는 부부도 바람난 부부 못지않게 위험한 관계 아닐까요. 

저는 간통죄가 가정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엄연히 간통죄는 살아있습니다. 설사 부부 사이에 애정이 남아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혼 전의 외도는 현행법으로는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법은 '애정없는 결혼'이라도 결혼이 유지되는 한 '결혼없는 애정'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보면 됩니다.

이혼, 특히 외도를 소재로 글을 쓰다 보니 저도 마음이 무겁군요. 외도 사연은 아직도 많지만 다음주에는 좀 밝은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결혼이야기 말입니다. 동성동본 결혼은 어디까지 가능한지, 겹사돈은 가능한지, 몇 살부터 결혼할 수 있는지 이런 질문들을 명쾌하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결혼이건 이혼이건 행복을 위한 선택이어야 합니다. 이도남은 다음 주에 오겠습니다.

기사와 관련해 알려드립니다
1. 기사에서 언급한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명을 사용했으며, 사연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2. 여러분의 의견을 받습니다. 현재 이혼 문제로 고민 중이거나 부부생활과 관련된 궁금한 점, 그 밖에 부부문제, 자녀양육의 법적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연락주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연애중이거나 결혼을 앞둔 남녀의 고민도 환영합니다. 단 소송중이거나 개인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은 사양하며, 전화나 면담상담은 하지 않습니다. 보내주신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연재기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보내실 곳 : jundorapa@yahoo.co.kr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상식책 <생활법률상식사전>(2010),<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



태그:#이도남, #이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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