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싱의 간판 이재성(록키체, 29)과 김택민(록키체, 27)이 지난 1일 OPBF(동양태평양복싱연맹) 랭킹전 일본 오사카 원정 경기에 출전했다. 이재성은 1라운드부터 코피를 흘리며 위기를 맞았지만 노련하게 경기를 풀어가며 대역전극으로 2:0 판정승을 거뒀다.(관련기사 : <이재성, 일본 적지에서 값진 2연승>)

하지만 같은 체육관 소속의 동생 김택민은 시작부터 상대를 강하게 제압했지만 6회 입은 눈 부상 때문에 7라운드에 주심의 경기 중단으로 아쉽게 TKO패하고 말았다. 눈 부상이 생각보다 심해 한쪽 눈을 조금도 뜰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병원 응급실로 가 CT촬영 등 정밀 검사를 했고 좀 더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귀국을 사흘 늦췄다.

 김택민의 눈은 귀국 직전까지도 이랬다. 왼쪽은 메인이벤트에 나섰던 노부오

김택민의 눈은 귀국 직전까지도 이랬다. 왼쪽은 메인이벤트에 나섰던 노부오 ⓒ 이충섭


사흘 뒤 붓기가 조금 가라앉아 눈동자를 검사할 수 있게 되었고 별 문제가 없다는 다행한 검사결과를 얻고 귀국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지난 7월부터 오사카 현지에서 합숙훈련을 해왔으니 2달 만에 귀국을 하게 되는 셈이었다.

짐을 다 싸고 공항에 떠나기에 앞서 택민이가 꼭 가보고 싶다는 곳이 있었다. 매일 아침 뛰었던 근처 공원에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각자 자전거를 타고 달렸지만, 아직 완전치 않은 눈 때문에 내 자전거 뒤에 타고 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눈부상을 입은 김택민과 필자가 산책을 하고 있다

눈부상을 입은 김택민과 필자가 산책을 하고 있다 ⓒ 이충섭


 귀국 전 근처 공원에 들린 이재성,김택민 선수

귀국 전 근처 공원에 들린 이재성,김택민 선수 ⓒ 이충섭


공원을 둘러보고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공원 입구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길가에서 시커먼 옷을 입을 사람이 거의 울부짖으며 우리에게 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우리와 같이 링에 올랐던 윤강휘(무토체, 20)였다. 강휘는 재일교포 2세 청년으로 복싱에 입문한 지 불과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지난 5월 한국을 처음 방문해서 택민이와 열흘간 같이 운동했고, 7월부터는 택민이가 강휘가 속한 오사카 무토체육관에서 함께 운동했다.

 가공할 KO펀치로 첫승을 거둔 윤강휘

가공할 KO펀치로 첫승을 거둔 윤강휘 ⓒ 이충섭


강휘는 188cm에 72kg로 출중한 신체 조건을 가졌지만,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1전 1무의 전적밖에 없는 그야말로 초보였다. 동양챔피언 출신의 이재성, 김택민의 아낌없는 지도 덕분으로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하지만, 강휘가 형들에게 배운 건 복싱뿐만이 아니었다. 늦둥이 외아들에다가 몸이 편찮으신 아버님을 위해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든 강휘는 한국말도 거의 하지 못했지만, 형들과 함께 운동하며 한국말도 제법 배웠다.

뿐만 아니라 그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살갑고 정겹게 대해주는 형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불러보는 '형'이란 말이 너무 좋고 의지가 되는 말이 되었단다. 강휘는 같은 날 벌어진 시합에서 형들에 앞서 링에 올라서는 멋지게 첫 승을, 그것도 KO승으로 장식하며 형들의 지도에 부응했다.

 "형들 가버리면 어떡해". 윤강휘는 계속 울고만 있었다.

"형들 가버리면 어떡해". 윤강휘는 계속 울고만 있었다. ⓒ 이충섭


하지만 고마운 형들과 헤어질 날이 다가오고 말았다. 게다가 강휘는 시합을 위해 1주일간 특별 휴가를 받았다가 복귀해서 그간 밀린 일을 하느라, 택민이는 병원 치료를 받느라 서로 만나지 못한 채 떠날 날이 되고 말았다. 강휘는 직장에서 틈을 내, 형들이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꼭 만나려고 자전거로 우리가 갈 만한 체육관, 음식점, 병원, 편의점 등으로 1시간이 넘도록 찾다가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공원에 왔다가 극적으로 만났다는 것이다.

 울며 형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는 윤강휘

울며 형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는 윤강휘 ⓒ 이충섭


상대 선수에게 안면 골절을 입힐 정도의 무시무시한 강휘였지만, 형들을 떠나기 전에 극적으로 만난 기쁨에, 이제 다시 '형'이라고 부를 사람이 없다는 슬픔에 한동안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우는 강휘를 겨우 달래서 함께 강휘 부모님 댁에 인사드리러 함께 갔다. 어머님은 "한국에 나가보니 너무 깨끗하고 큰 집에서들 살던데 우리는 이렇게 누추한 곳에 지냅니다. 두 달 동안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셨다.

하지만 사실 강휘 어머님은 거의 매일같이 선수 합숙소에 김치를 비롯한 밑반찬을 챙겨다 주고 집으로 불러 강휘와 같이 따뜻한 밥을 해주셨다. 몸이 불편하신 강휘 아버님을 대신해서 어머님이 여러 일을 하시는 와중에서도 한국 선수들을 너무 극진히 챙겨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고 죄송할 다름이었다.

 훈련기간 동안 한 식구처럼 선수들을 돌봐준 강휘네 가족

훈련기간 동안 한 식구처럼 선수들을 돌봐준 강휘네 가족 ⓒ 이충섭


"여기 일본 사람들은 운동 연습을 무섭도록 지독하게 합니다. 그런 일본 사람을 한국 사람이 이겨주니 너무 고맙고 감격스럽습니다. 또 와서 또 이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휘 어머님이 우리를 떠나 보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에 선수들도 나도 목이 메고 말았다. 어머님은 일본 과자를 선물해 주셨는데, 우리는 달리 준비한 선물도 없었다. 대신 경기장에 들고 입장하려다가 일본 프로모터의 간곡한 만류로 쓸 기회가 없었던 대형 태극기를 선물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같은 맘을 먹었다.

"운동 더 열심히 해서 한일전만큼은 꼭 이기자. 그게 고단한 타향살이 가운데서도 열렬히 성원해준 교포들에게 보답하는 가장 큰 선물이고, 애국하는 길이다."

 경기 후 오사카 교민들이 선수들에게 저녁을 사주며 격려했다

경기 후 오사카 교민들이 선수들에게 저녁을 사주며 격려했다 ⓒ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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