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수확한 홍명보호의 기적은 많은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분투한 홍명보호에는 그 대가로 '병역 혜택'이라는 달콤한 포상도 주어졌다.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번 혜택이 누구보다 기쁠 수밖에 없는 선수는 역시 박주영이다.

박주영은 병역 혜택이 걸린 국제 대회에 네 번이나 출전했다. 그는 2006 도하 아시안게임서부터 2008 베이징올림픽,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까지 출전했으나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3전 4기 끝에 도전한 이번 올림픽은 박주영에게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박주영의 런던올림픽 출전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박주영은 지난해 9월 영주권제도가 없는 모나코공국에서 10년 이상 장기체류자격을 얻어 37세까지 병역 연기 혜택을 받았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으나,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이민자를 위한 법을 이용해 자신의 병역연기 수단으로 삼은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사실상 병역 면제에 준하는 혜택에 '편법' '꼼수' 논란이 일었다. 박주영은 국민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최강희 A대표팀 감독의 해명 권유마저 무시하고 사실상 잠적하기도 해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박주영은 사실상 대표팀 퇴출 위기까지 몰렸지만, 그를 포기할 수 없었던 홍명보 감독의 재권유로 결국 마음을 돌린 박주영은 기자회견을 통해 "군대에 반드시 가겠다"는 약속을 한 채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다. 박주영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와 일본과의 3~4위전 등 중요한 경기에서 결정적인 득점을 성공시키며 자신을 믿어준 홍명보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오랫동안 그를 짓눌러온 병역 문제에 대한 압박에서도 마침내 해방됐다.

'어쨌거나 해피엔딩?' 박주영 논란이 남긴 숙제들

올림픽 축구 대표팀 동메달 획득 10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4위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하고 기뻐하고 있다.

▲ 올림픽 축구 대표팀 동메달 획득 지난 10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4위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하고 기뻐하고 있다. ⓒ 런던올림픽조직위


동메달을 통해 박주영과 올림픽팀의 길었던 동거는 일단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그의 행보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생각해볼 만한 숙제를 남겼다.

박주영의 병역논란은 한국사회에서 병역의무가 지니는 가치와 원칙, 그리고 태극마크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시작은 축구를 직업으로 삼은 20대 중반의 한 혈기왕성한 선수가 병역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마음껏 하고 싶다는 현실적 욕망에서 비롯됐다. 병역이 의무이면서도 굴레일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박주영이 취한 수단의 정당성이었다. 바로 '한 개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보편적 국민의 의무에 관한, 남들과 다른 특혜를 누리려 했던 목적성과 수단이 모두 정당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원칙과 맞는 것이냐'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박주영은 기자회견을 통해 반드시 현역 군 복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박주영의 목적이 병역 연기냐 기피냐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박주영은 축구선수와 해외거주자라는 조건을 이용해 자신의 병역혜택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고, 병역을 '연기'한 것만으로도 이미 특혜를 누렸다는 점. 무엇보다 앞으로도 병역기피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잘못된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이야말로 지탄의 대상이었다.

또한, 박주영이 받은 특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올림픽 대표팀 합류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박주영의 병역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최종예선을 앞둔 A대표팀은 확실한 공격수인 박주영이 절실했다.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최강희 A대표팀 감독은 고심 끝에 박주영을 발탁하기 위해 병역논란에 대한 입장 해명을 권했지만 박주영은 이마저 거부하며 잠적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정작 병역혜택이 걸린 올림픽 대표팀에는 자발적으로 합류해 '기회주의적인 처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굳이 병역 논란 때문이 아니더라도 박주영은 소속팀 아스널에서 1년간 거의 출전기회를 얻지 못해 경기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지역예선을 거친 선수들부터 와일드카드까지, 모든 선수들이 공정한 경쟁을 거쳐 실력을 입증해야 했던 올림픽 대표팀에서 박주영은 오직 과거의 이름값으로 특혜를 얻은 것이었다. 명색이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정작 국내에 60일 이상 체류하며 영리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날짜를 계산하며 팀에 합류하는 촌극까지 빚어야 했다. 적어도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할 당시의 박주영은 분명 '자격 미달'에 '무임 승차'였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일련의 소동 속에서 정작 축구계에서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주영의 병역 논란에 '왜' 많은 이들이 실망했는지, 앞으로 이런 사례가 또 벌어졌을 때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보다는 그저 눈앞의 문제를 적당히 덮거나 회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심지어 유명 축구인인 이영표나 김호곤은 축구선수의 권리나 특혜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해 팬들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다. 심지어 홍명보 감독마저도 "박주영이 군대 안 가면 내가 대신 가겠다"며 책임질 수도 없는 감상적 의리만을 과시해 문제의 본질을 덮으려 했을 뿐이다.

대다수 축구인들의 관심은 처음부터 병역 논란으로 인해 국민들이 받은 배신감과 사회적 파장보다는 박주영이라는 스타 선수가 대표팀에 끼칠 손익계산에만 쏠려 있었다. 축구든 무엇이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은 박주영의 병역 논란과 올림픽 대표팀 합류과정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던 축구인들의 보편적 태도였다.

박주영의 진짜 속죄는 지금부터

구자철의 두번째 골!  10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4위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구자철이 두번째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 동메달과 병역 혜택을 얻었다고 그동안 박주영(가운데)이 보여준 처신이 모두 미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 10일 오후(현지시간)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4위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당시. ⓒ 런던올림픽조직위


올림픽 동메달은 많은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박주영도 동메달을 통해 자신 주변에 있던 병역의 굴레에서 어쨌든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그간 병역논란 과정에서 보여준 이기적이고 부적절한 처신으로 생긴 남긴 파장에 대한 속죄는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다.

병역 문제를 해결한 박주영은 조만간 A대표팀에서도 재발탁될 것으로 보인다. 박주영이 자신의 진정성을 입증하고 책임감 있는 국가대표 선수로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병역 혜택이라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올림픽 대표팀에서만이 아니라 앞으로 A대표팀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한 동메달과 병역 혜택을 얻었다고 그동안 박주영이 보여준 처신이 모두 미화될 수 없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가 박주영에게 요구했던 것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박주영이 '단지 축구를 하고 싶었을' 뿐이듯, 사회가 박주영에게 요구한 것도 단지 남들과 동등한 의무를, 가능한 상식선에서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축구 선수에게 시간이 귀하듯, 한류에 공헌하는 아이돌이나 외화벌이에 앞장서는 기업가에게도 시간은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예외나 특혜를 무분별하게 인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주영의 병역 혜택은 결코 혼자 힘으로 얻은 게 아니다. 논란 속에서도 박주영을 믿고 발탁해준 홍명보 감독부터 그가 부진할 때도 빈자리를 메워준 동료들,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서 묵묵히 박주영을 성원한 팬들과 축구계 선배들이 있었다. 편법 병역 연기 논란에서, 올림픽 대표팀 무임 승차까지... 그동안 자신의 권리를 챙기는 데만 열중했던 모습을 보였던 박주영을 이제 한 번쯤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박주영 한 명을 살리기 위해 그동안 너무 많은 원칙이 무너졌고, 너무 오랫동안 비생산적인 논란이 있었다. 앞으로 또다시 제2의 박주영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은 공, 과는 과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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