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정신, 어? 현정화 봐바. 걔도 라면만 먹고도 달리기에서 금메달 세 개나 땄잖아."
"임춘애입니다. 형님." -영화 '넘버 3' 대사 중-

임춘애.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금메달 3관왕. 올드팬들이나 익숙할 그 이름이 젊은 세대들에게도 낯설지 많은 않은 건 바로 '라면' 신화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육상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어린 소녀. 육상 불모지에서 중장거리 종목을 싹쓸이 하자 언론은 영웅 만들기에 돌입한다.

'라면 소녀' 임춘애가 많이 먹었던 음식은?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 우유 마시는 친구들이 부러웠고요."

흔히 대중들 사이 그녀가 직접 했다고 믿는 이 이야기는 사실은 코치가 전한 이야기다. 라면만 먹고 뛴 것이 아니라, 코치의 부인이 끓여준 라면을 간식으로 먹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지금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던 시절이라 해도 국가대표로 발탁 된 선수가 라면만 먹었다는 것은 비상식의 극치다. 어린 시절 집 안 자체가 넉넉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운동선수로 뛰기 시작하면서 분에 넘치는 장학금을 받는 등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 본인의 이야기다.

"라면 이야기는 제가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저를 발굴하고 길러주신 김번일 코치 선생님이 하신 인터뷰에서 열악한 학교 육상부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선수들이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다. 조금 환경이 좋은 학교는 우유도 지원된다'고 말씀하신 것인데 '임춘애가 17년간 라면만 먹고 뛰었다''우유 먹는 아이들이 부러웠어요'라고 쓰는 바람에 이후 제가 '라면 소녀'로 불리고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처럼 된 것이죠. 당시 체력보강을 위해서 도가니탕과 삼계탕은 물론 뱀탕까지 먹었는데 라면만 먹고 어떻게 뛰겠어요." - 2010. 4. 16. <문화일보> 기사 중-

그러나 이런 팩트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전 국민들은 영웅을 원했고 그 영웅은 지독한 가난을 딛고 일어선 잡초여야만 했던 것. 당사자는 오히려 창피해하고 이야기조차 꺼내기 싫어했지만, 시대상이 원하고 만들어 낸 촌극이었던 것.

'원조 라면'은 1984 LA 올림픽 안병근, 그에게 직접 물었다

 1984년 당시 라면을 불려 먹었다는 일화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안병근 감독(왼쪽). 그러나 본인의 입으로 '과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1984년 당시 라면을 불려 먹었다는 일화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안병근 감독(왼쪽). 그러나 본인의 입으로 '과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 나영준


흔히 임춘애로 대표되지만, 올드팬들은 알만한 이야기로 '원조' 라면은 따로 있다. 안병근. 1984년 LA 올림픽에서 71kg 이하 급에서 금메달을 따 냈고, 1985년 세계선수권과 1986년 아시안 게임까지 석권했던 스타플레이어 선수다.

당시 무명이던 그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때내자 역시 수많은 언론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 시절 운동하는 선수가 대개 그랬듯 안병근의 집안 역시 넉넉지 않았을 터.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한마디를 건져내는 언론 '배가 하도 고파 라면이 불기를 기다렸다가 먹었다'는 것.

이후 '오죽 배가 고팠으면…' 하는 동정어린 시선이 겹쳐 한동안 '안병근 = 라면'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2년 뒤 임춘애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영화 <넘버 3>의 대사도 바뀌지 않았을까.

2006 도하 아시안 게임과 2008 베이징 올림픽의 남자 유도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던 그. 필자는 6년 전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직접 그의 입을 통해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정말이었는지, 정말 그렇게 배가 고팠고 가난했는지.

당시 안병근 감독은 난감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큼 배가 고픈 시절이긴 했는데...일부 과장이 있었죠." 이것이 그가 남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랬다. 먹성 좋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던 것. 오히려 안병근 감독은 선수 시절 체중을 빼는 것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시절을 보내곤 했단다.

80년대의 재림? 양학선에게 라면과 집을 내 놓아라

 양학선 선수가 6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노스 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도마 결선에서 16.533점(1, 2차 평균)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양학선 선수가 6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노스 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도마 결선에서 16.533점(1, 2차 평균)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런던올림픽조직위


여기까지는 그저 추억으로 묻힐법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2012년 다시 극적인 라면스토리가 귀환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일구어낸 양학선 선수가 등장한 것. '양1· 양2로' 불리는 그의 기술들은 경쟁자들의 추월을 허락지 않았다. 사실 스포츠 경기에서 주목받아야 할 것은 이처럼 압도적인 실력이다.

그런데 다시금 언론은 그의 이면 이야기를 파고들었다. 그의 부모님이 사시는 비닐하우스 집이 눈에 들어온 것. 거기에 어머님의 전화 인터뷰 중 한 단어가 백미가 됐다. 특정상표인 '너구리 라면'을 언급한 것.

분명 어머니는 "아들, 오면 뭘 제일 빨리 먹고 싶을까? 너구리 라면? 너구리 라면 말고 칠면조 고기 요리 해 줄게"라고 이야기했지만, 뒤의 칠면조역시 주목받지 못했다. 너무도 가난해서 라면만 먹는 선수로 둔갑한 것.

해당 라면업체는 반색을 했다. 양학선 선수에게 평생 먹을 라면을 공급하겠다고 나셨고 누리꾼의 눈길이 집중되자 100박스를 전달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홍보효과를 톡톡히 치렀다. 사실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쪽에서 언급해 줬다면 당연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자본주의의 정석 아닐까. 물론 '고작 그거 갖고 되겠냐, CF 모델로 쓰라'며 구체적인 콘티까지 짜주는 여론의 극성도 한 몫 한다.

여기에 한 건설업체에선 자신들이 짓고 있는 아파트까지 한 채 내놓았다. 누리꾼의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본사는 물론 계열사 홈페이지까지 다운될 정도였다. 분양가 2억 원 정도의 아파트를 내놓고, 브랜드 노출과 이미지 개선 등 직·간접적 영향을 따져 아파트 가격 이상의 홍보효과를 거뒀다. 9일에는 국내 손꼽히는 재벌회장님이 양학선 선수에게 통크게 5억 격려금을 전달하겠다고 발표했다.

좀 더 차분히 경기 자체에 집중할 순 없을까

물론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메달을 획득한 양학선 선수에게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 마땅하다. 눈물과 땀이 구분되지 않았을 고된 훈련은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값진 시간이고, 그 결과 역시 한 없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협회차원의 포상금이나 국가의 연금은 떳떳이 챙겨야 할 그의 몫이다.

하지만 언론과 팬들은 조금만 차분해지자. 함께 땀 흘렸고 고통을 나누었을 선수들에도 조금만 더 관심을 나누자. 양학선 선수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관심이야 말로 1등이 싹쓸이 해 먹는 승자독식의 한 예다.

거기에 이 기회에 한 몫 잡으려는 기업들의 곁눈질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라면과 아파트, 서민들의 주식이자 한편 꿈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사회의 지표들이 너나없이 나대는 현실이 조금은 씁쓸하다.

이런 와중에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4강에 오른 여자배구 대표팀은  배구협회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1m90cm 에 가까운 선수들이 일반석에 앉아 12시간이 넘는 장시간을 비행했다고 한다. 거의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선수들을 위한 기업의 진정한 지원은 이런 곳에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항공사에만 책임을 전가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비행기 값은 편도 7000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우리 여자배구 대표팀, 이미 그 정도의 성과는 이루어 낸 것 아닐까?

양학선 너구리 라면 올림픽 임춘애 안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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