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 ⓒ 청어람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킨 <괴물>, 북한을 동지로 묘사한 <공동경비구역 JSA>, 이승만․박정희 두 국가권력의 몰인정성을 비판한 <효자동 이발사>."

2008년 8월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작성됐다는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보고서 내용 중 일부다. 지난 23일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명박 정부가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란 이름 아래 진보 성향 문화 예술 말살 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이 문건은 "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위원장 교체, 산업콘텐츠산업협회의 탄생"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건은 지난 19일 팟캐스트 방송인 이상호의 <발뉴스>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이 문건 따르면, 청와대 측은 영화계 좌경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국정원, 민정수석실, 기획재정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동원, 문화계 인사들의 강제 퇴출을 주도했으며, 관련 단체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지원금을 끊는 주도면밀한 방식까지 채택했다고 한다. 

여기서 당혹스러운 질문.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10년 사이 할리우드에 대항해 탄탄한 관객층을 형성하고 해외 영화제에서 선전한 한국영화계는 진짜 좌경화 됐을까. 무엇보다 무려 1300만 관객이 관람한 <괴물>은 진짜 '좌파 영화'일까. 

이러한 촌스러운 질문들을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반문해야 하는 상황은 꽤나 당황스럽고 한편으론 개탄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배우 감우성이 고 박정희 대통령을 연기하고, 한은정이 타이틀롤인 고 육영수 여사 역할을 맡은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이하 <그녀에게>)의 제작 소식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제작사인 드라마뱅크 측은 연내 촬영을 마치고 올 12월 대선 전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거 특수를 제대로 노려보겠다는 계산이다. 개인적으로는, 7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다는 이 영화가 꼭 차질 없이 제작돼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는 광경을 꼭 보고 싶은 쪽이다. 이유를 굳이 꼽아보자면, 정치와 영화와의 함수 관계와 박정희를 둘러싼 진영 논리 때문이리라.

육영수 여사를 내세운 멜로드라마, 왜 하필 지금일까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2005)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2005) ⓒ MK픽쳐스


2005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 개봉했을 때, 고 박정희 전대통령의 장남 박지만 씨는 이 영화에 대한 영화상영 금지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고인을 희화화시켰다'가 주된 이유였다. 결국 제작사인 MK픽처스(명필름) 측은 오프닝과 클로징의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상영을 강행했고, 임상수 감독은 검은 무지 화면을 그대로 내보내 항의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소송은 MK 픽처스가 가처분 이의 신청을 내면서 결국 3년을 끈 끝에 양 측의 조정으로 종결됐다.

<그녀에게>는 <효자동 이발사> <그때 그 사람들>에 이어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하는 세 번째 영화다. 현 청와대로부터 "국가권력을 몰인정하게 그렸다"는 의혹을 산 <효자동 이발사>나 한국영화 최대의 송사 사건에 휘말린 <그때 그 사람들>은 '좌파'영화일까. 전자는 우화와 같은 시대극을, 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하루 동안의 궁정동 안팎의 상황을 현미경처럼 들여다 본 풍자극이다.

다만 '절대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에 '풍자'의 기운이 담길 수밖에 없는 영화일 뿐이다. 할리우드의 경우를 보자. <닉슨>이나 <JFK>, <닉슨 VS 프로스트> 등 과거 권력자를 그린 수많은 전기 영화들은 권력자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거나 최소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드라마뱅크스 측은 "박근혜 의원이 <그녀에게>의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박수를 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것"이란 바람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한국영화 사상 첫 번째로  전직 대통령을 실명으로 그리는 영화다. 소송이나 박근혜 의원 측의 비판에서 자유로운 찬양일색의 '박정희 영화'는 과연 어떤 꼴일지 자못 궁금하지 않은가. 심지어 <그녀에게>는 육영수 여사 곁에 머무는 보좌관의 눈을 통해 바라 본 멜로드라마인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 우파' 영화? 부디 꼭 완성하시기를

2010년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포화속으로>는 그저 그런 반공물로 인식됐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정부 들어 <포화속으로>를 비롯해 <전우> <로드 넘버 원> 등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서사극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절정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에 대한 우리 군의 구출 작전을 극화할 것으로 알려졌던 <아덴만의 여명>이었다. 제작 소식만 타진된 가운데 촬영 소식이 오리무중인 이 영화는 이명박 정부의 치적을 액션과 신파로 버무릴 소재로서 일사천리와 같이 영화화 소식이 타전된 케이스다.

그러니까 박찬욱․봉준호 감독과 같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감독들의 작품들이 '좌경화'로 낙인찍는 현 정부에서는 오히려 단순히 전쟁영화의 외피를 쓴 작품들이 오해를 받는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퍼스트 레이디 - 그녀에게>에서 육영수 여사를 연기하는 배우 한은정

<퍼스트 레이디 - 그녀에게>에서 육영수 여사를 연기하는 배우 한은정 ⓒ 코어콘텐츠미디어


재미있는 것은 <그녀에게>는 처음부터 이러한 이념적 오해나 공격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재나 유신 등의 역사적 판단이나 맥락을 거세한 채로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따를 것으로 보이는 <그녀에게>는 분명 대선 전 박근혜 의원 지지자들에게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최적화된 영상물이다. 그 의도가 너무나도 순수하고 투명하다고 할까.

이 영화를 기대(?)하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직 촬영도 들어가지 않은 이 영화를 12월에 개봉한다는 전략을 짠 영화사의 무리수에 어떤 꼴의 결과물이 나오게 될까. <괴물>이나 <공동경비구역 JSA>와 같이 칸과 베를린 영화제에 진출하고, 또 흥행 신기록을 수립한 독창적인 웰메이드 영화들을 '좌파 영화'라고 낙인찍는 이들이 <그녀에게>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아직 제작단계에 있는 <그녀에게>에 대한 궁금증은 사실 작품보다는 텍스트 바깥의 현실 때문이다. 현 정부와 유력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만들어낸 이 투명한 의도의 우파영화의 출현이 지닌 의미 말이다. 정치적 의도가 먼저 부각된 영화가 '작품'으로 거듭난 사례가 있었나 곱씹어보게 만드는 <그녀에게>. <아덴만의 여명>과 달리 캐스팅과 투자가 확정됐다는 이 작품이 꼭 완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 박근혜 박정희 감우성 한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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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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