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 포스터

영화 <건축학개론> 포스터 ⓒ 명필름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봄날, 만발하여 흩날리던 꽃잎처럼 수백만 관객의 가슴 속에 '첫사랑'을 아름답게 수놓은 영화가 있었다. 바로 3월 22일 개봉하여 약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건축학개론>이다.

풋풋한 스무 살의 두 남녀가 같은 대학교에서 '건축학개론'을 듣게 되고, 같은 동네인 서울 '정릉'에서 살면서 친해지다가 서로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리고 순수했던 그들은 조심스러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고, 서로 좋아했음에도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엇갈리고 만다.

짝사랑으로 가슴 아프게 끝나 서로 잊은 채로 살아가던 그들은 15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 재회한다. 영화는 그들의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보며 주면서 첫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련한 기억... '첫사랑의 추억'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 명필름



누군가 그랬다. 애석하게도 사랑은 아픈 것이고, 더욱 슬픈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꼭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이라고. 특히나 첫사랑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나이에 계산없이 순수하게 누군가를 만나서 좋아하게 되는 첫 사랑.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경험은 언제나 설레임으로 시작하여, 때로는 아프고 슬프게 끝이 난다. 마치 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주인공인 승민과 서연은 스무살, 같은 대학교에서 듣게 된 '건축학개론' 강의로 알게 된다. 사는 동네까지 같았던 그들은 레포트로 나온 '동네 여행'을 함께하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승민이 먼저 서연을 짝사랑하게 되고, 진심을 표현하지 못한 채로 시간은 흐른다.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연도 착하고 순수한 승민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친구 사이의 우정을 넘어서는 감정이 싹트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승민은 같은 과 선배와 서연의 사이를 오해하게 되고, 상처받은 마음에 그녀를 차갑게 밀어내버린다. 고백하기 위한 선물로 들고 갔다가 그녀의 집 앞에서 내팽개친 건축 모형처럼, 승민의 짝사랑은 그렇게 슬픈 결말로 잊혀지는 듯 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 명필름



둘은 15년 뒤에 다시 만나게 된다. 건축학을 전공한 승민이 서연의 집을 지어주기로 했던 약속을 이유로 서연이 승민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건축 일을 하고 있던 승민은 결국 그녀의 집을 지어준다. 실은 승민은 15년 전의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서연의 기대와는 다르게 긴 시간이 흐른 뒤, 재회한 둘은 많이 변했다. 서연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고, 승민 역시 같은 직장 후배와 결혼을 앞둔 상태다. 과거의 순수했던 모습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져 버렸고, 첫사랑의 기억은 가슴 한 켠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조용히 먼지 쌓여가고 있을 뿐이었다.

영화는 승민이 서연의 집을 완전히 허물지 않고 재건축하는 과정과 동시에, 15년 전 두 사람이 서로의 첫사랑을 쌓아가던 그 순간들을 번갈아가며 조금씩 보여준다. 집을 짓듯이 조금씩 감정을 쌓아가는 것, 과거의 승민과 서연이 미처 서로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순수했던 마음들. 그 안타까운 감정의 엇갈림을 한 장면 한 장면 보고 있으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 본 첫사랑...

스무살 승민은 돈이 많고 잘생긴 같은 과 선배와 서연의 사이를 오해하여 분노한다. 자신보다 월등히 잘난 선배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그녀를 선배에게 빼앗겨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승민이 화를 삭히기 위해 걷어 찬 자기집 대문은 보기 싫게 벌어지고, 발길질에 망가진 철제 대문을 15년 뒤에 그가 담배를 피러 나왔다가 우연히 바라보게 된다.

대문은 세월이 지나 그 모습 그대로 벌어진 채로 녹이 나 았다. 과거의 발길질을 후회하는 승민이 15년이나 시간이 흘러 버린 뒤에 다시 대문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 손으로 누르며 애를 써 보지만 소용이 없다. 극 중에서 그가 회상하는 첫사랑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서연에게 감정을 표현해 보지도 못하고, 오해로 비뚤어진 마음으로 멀어진 승민의 짝사랑은 그가 당시 바라곤 했던 것과는 너무나 벌어져 있다. 그리고 잔뜩 녹슬어 버린 기억은 이제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고, 그는 결국 대문 앞에서 혼자 울음을 터뜨린다.

마침내 집이 완공되었을 때, 승민과 서연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끝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쓸려/ 그저 뒤돌아본 채로 떠밀려왔지만/ 나의 기쁨이라면 그래도 위안이라면/ 그 시절은 아름다운 채로 늘 그대로라는 것 (김동률 - '귀향'중에서)

영화 음악으로 삽입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라는 노래는, 그 잔잔한 멜로디와 가사가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살려준다. 가수 김동률의 낮은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애틋한 옛사랑의 예찬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김동률의 다른 노래를 떠올렸다. 바로 <귀향>이다. 위에 적어놓은 가사처럼, 우리는 야속하게도 흘러가버린 시간에 의해 첫사랑으로부터 멀어졌지만, 그 시절의 기억만큼은 늘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지 않은가.

어찌보면 슬프기도 한, 가슴 아련해지는 첫사랑의 추억. 그때로 되돌아갈 순 없지만, 순수했던 시절을 회상해보면 희미한 웃음을 짓게 된다. 시간은 우리를 점점 더 먼 곳으로 데려가 버리지만, 첫사랑이 주는 추억의 힘으로 우린 다시 삶을 살아간다. 가슴 속에 남아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그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건축학개론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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