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예능계 왕좌의 자리를 다투고 있는 유재석(왼쪽)과 이경규

10년 동안 예능계 왕좌의 자리를 다투고 있는 유재석(왼쪽)과 이경규 ⓒ SBS, KBS


일요 예능 판도가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 KBS <1박 2일> 시즌 2와 <남자의 자격>이 주춤한 가운데 SBS <런닝맨>과 <정글의 법칙>이 일요 예능시장을 순식간 장악했다. 일요 예능 패권을 두고 두 국민 MC 이경규와 유재석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000~2004년 : 이경규의 시대, 침묵했던 유재석

이경규와 유재석은 사적으론 상당히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MC로 보자면 한 치의 양보도 허하지 않은 치열한 라이벌이었다. 흔히들 유재석과 강호동을 라이벌이라고 칭하곤 하지만 둘은 한두 번을 제외하곤 동시간대 시청률 경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독 이경규만은 유재석과 예능 패권을 두고 피 말리는 접전을 계속해 왔다. 2000년대 들어 유재석이 등장한 이래 이 공식은 변함없이 유지됐다.

2000년대 초반 <일밤>의 수장 이경규는 타 방송 주말 예능을 초토화 시킨 전설적 인물이었다. 이경규-김용만-신동엽-박경림으로 구성됐던 <일밤>의 '건강보감'은 3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에 비해 유재석은 <로드쇼 힘나는 일요일>을 시작으로 <헌혈합시다> <황금보물선을 찾아라> <날아라 번지왕> <유재석의 장롱면허 탈출대작전> <유재석의 조용한 가족> <스타 서바이벌 만찬> <티비 해결사> <대한민국 만세> <사랑의 쌀나누기> <유재석의 금연학교> 등으로 이경규에게 도전했지만 모두 참패로 끝났다. '건강보감' 한 편에 무려 11개의 프로그램이 날아간 것이다.

이경규의 압도적인 우세승은 2000년대 중반까지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건강보감'의 대히트 뿐 아니라 <대단한 도전>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대단한 도전>은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초기작이기도 하다.

유재석은 <대단한 도전>의 아성을 깨뜨리기 위해 <천하제일 외인구단> <운명의 바퀴> <건강남녀> <태극기 휘날리며> <스타 올림피아드> <유재석의 감개무량> 등 무려 6개의 코너를 출범시켰지만 번번이 시청률 면에서 쓴맛을 봤다. 적어도 2004년까지 이경규가 유재석에게 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셈이다.

2005~2007년 : 유재석의 시대, 슬럼프에 빠져든 이경규

그러나 2005년부터 점점 판이 흔들렸다.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판을 뒤흔든 첫 시발점은 <엑스맨>의 탄생이었다. 주말 예능 시간대에 이경규가 가지고 있는 압도적 위상에 위기감을 느낀 유재석과 강호동이 <공포의 쿵쿵따>에 이어 두 번째 결탁하며 이경규의 시대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위기감이 고조된 이경규는 결국 유재석을 제압하기 위해 최후의 카드를 내놓기에 이른다. 바로 이경규의 대표 킬러 콘텐츠인 몰래카메라였다. <돌아온 몰래카메라>의 등장은 일요 예능 판도를 다시금 뒤흔들었다. 유재석 때문에 한동안 진땀을 뺐던 이경규는 2006년 들어 <돌아온 몰래카메라>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에 대항해 유재석은 < New 엑스맨 > <하자GO> <옛날 TV> 등을 시도했지만 역전에 실패한다.

 MBC <무한도전> 멤버들

MBC <무한도전> 멤버들 ⓒ MBC


그러나 이경규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토요 예능시장' 에서 유재석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으며 오랜 슬럼프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으로 토요 예능을 장악한 유재석은 막강한 '국민 MC'의 위엄을 떨치며 리얼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개척자가 됐다.

유재석의 선전에 자극을 받은 이경규는 전통적 콤비인 김용만과 함께 <라인업>을 출범시켰다. 이경규는 <라인업>에 자신의 예능인생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상당한 애착을 보였다. 허나 캐릭터 쇼와 리얼 버라이어티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이경규는 갈팡질팡했고, <라인업>은 점차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라인업>의 실패는 곧 이경규의 실패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 시기에 그는 일요 예능에서도 '제자' 강호동의 <1박 2일>에 불의의 일격을 맞으며 <일밤>에서 물러나는 사상 최대의 치욕을 맛본다.

이경규가 방송 인생 최고의 슬럼프에 빠져드는 와중에 유재석은 주말 황금시간대를 모두 잡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무한도전>과 <패밀리가 떴다>의 흥행 돌풍이 시작된 것이다. 과거 이경규의 자리를 유재석이 모두 꿰찼다 할 만큼의 성적이었다.

2009~2012년 : 이경규-유재석 정면승부, 격변하는 예능계

 KBS <남자의 자격>

KBS <남자의 자격> ⓒ KBS


와신상담한 이경규는 2009년 이를 갈고 <남자의 자격>으로 주말 예능에 복귀해 판을 흔들었다. 동시간대 경쟁작이었던 <패밀리가 떴다>를 턱밑까지 추격하며 하락세를 가속화 시킨 것이다. 결국 <패밀리가 떴다>는 이경규의 일격을 받고 1년 8개월의 방영을 끝으로 종영이 결정됐다. 이경규로선 일요 예능의 절대강자 타이틀을 회복한 쾌거였다.

그런데 2년 만에 예능계가 다시 변모하고 있다. 강호동이 연예계를 잠시 떠나있는 사이, 게임쇼에 미스터리와 추리를 독특하게 결합시킨 유재석의 <런닝맨>이 특유의 긴장감을 살리며 일요예능을 장악했고, 이경규의 <남자의 자격>은 지루한 내용 전개와 별 볼일 없는 미션 수행으로 점차 시청자 층이 무너지고 있다. 멤버 교체가 단행될 만큼 최악의 상황이다.

재밌는 것은 이와 반대로 월요 예능은 이경규의 <힐링캠프>가 유재석의 <놀러와>를 더블스코어 차로 따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규가 주중을 장악한 사이 유재석이 주말을 탈환한 셈이다. 두 국민 MC의 라이벌 전이 점입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2010년 <KBS 연예대상> 수상 당시 유재석-이경규-강호동

2010년 수상 당시 유재석-이경규-강호동 ⓒ KBS


이제 이경규와 유재석 모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2008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유재석 때문에 슬럼프를 맞게 된다는 건 '예능 본좌' 이경규에겐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어떤 식으로든 팀을 재정비해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유재석 역시 8년을 바친 <놀러와>를 이경규 때문에 버릴 순 없다. 이경규-유재석 모두 시험대에 올라선 것이다.

명불허전, 백전노장, 예능본좌 이경규와 금세기 최고의 국민 MC, 흥행보증수표로 평가 받는 유재석. 10년 동안 이어진 치열한 라이벌 전은 2012년 어떻게 전개될까. 예능 판도를 뒤흔드는 그들의 정면 대결의 결과가 자못 궁금해진다.

이경규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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