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은 동성애자들의 사랑과 결혼을 유쾌하게 담았다.

영화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은 동성애자들의 사랑과 결혼을 유쾌하게 담았다. ⓒ 청년필름


국경도 나이도 다 초월하는 게 사랑이라 했다. 후텁지근한 여름을 더 뜨겁게 해줄, 이열치열 사랑영화를 찾았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초월하는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이 눈에 들어왔다. 동성 애인과의 결혼 선언을 한 김조광수 감독이 만든 두 동성 커플의 결혼 이야기라니 얼마나 뜨거울까. 잔뜩 기대가 됐다.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선 우선 몇 개 안 되는 상영관의 상영시간을 확인하는 꼼꼼함이 필요했다. 아직까지 동성애를 드러내놓고 거론하기 힘든 우리 사회의 현재를 보여주는 듯 꽁꽁 숨은 상영관을 찾아야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소재 때문에 배급과 캐스팅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밝힌 김조광수 감독은 영화를 "일부러 밝게" 만들었다고 했다. 관객들이 모든 내용에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반만이라도 웃을 수 있길 바란다는 그의 말처럼 두결한장은 현실을 뛰어넘는 퀴어영화의 유쾌함을 보여준다.

극중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 멤버들이 서로를 '이년아'라고 부르며 수다를 떠는 모습은 살갑다. 시골에서 올라온 게이, 티나(박정표 분)는 지보이스 멤버들을 만난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며 행복에 젖는다. 게이 민수(김동윤 분)와 레즈비언 효진(류현경 분)이 위장결혼 후 민수 부모님과 부딪히는 여러 에피소드들도 무겁지 않다.

영화를 보면서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짝사랑하는 그(그녀)를 바라볼 때의 아픔, 막 연애를 시작할 때의 설렘에 동성애자, 이성애자의 구분은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영화 속 민수와 효진이 각자의 애인과 함께 축제 같은 결혼식을 올릴 때쯤엔 한국에서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날을 그려보게도 된다.

의미 있고 발랄한 영화임은 분명한데... 반만 웃었다

 <두결한장>은 사랑에는 동성애, 이성애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두결한장>은 사랑에는 동성애, 이성애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 청년필름


 <두결한장> 속 게이코러스 '지보이스' 멤버들.

<두결한장> 속 게이코러스 '지보이스' 멤버들. ⓒ 청년필름


<두결한장>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발랄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지는 못했다. 김조광수 감독의 말처럼 반만 웃었다. 의사인 민수가 병원에서 동성애자임이 밝혀질까봐 두려워하는 모습도,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목격하고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는 장면에도 100% 공감하진 못했다.

깔깔거리다가 갑자기 사건을 겪고 침울해졌다가 다시 웃음을 찾는 스토리가 너무 극과 극을 오가서 꼭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106분이란 러닝타임은 겹겹이 쌓여 있는 동성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깨는 이야기를 닮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또 동성애자 개개인이 짊어졌을 삶의 무게를 우리가 공유할 기회가 그동안 너무 부족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이 있다. 그때 남성과 여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와 '끼리끼리'를 찾아갔다.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양 사무실 앞에서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거기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눴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인터뷰했던 이들의 얼굴을 대부분 담지 못했던 건 기억한다. 그들의 뒷모습 혹은 바닥을 짚은 손을 배경으로 목소리만 담으면서 의아했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찾겠다고 앞에 나선 사람들인데도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네. 도대체 우리 사회의 동성애 포용점수는 몇 점인 거야?'

15년도 넘은 이야기이니 100점 만점에 10점도 안 됐을지 모른다.

영화로 채우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같은 이름의 만화를

 박희정이 네이트에 연재하고 있는 만화 <두결한장>은 영화 <두결한장>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확장시켜 보여준다.

박희정이 네이트에 연재하고 있는 만화 <두결한장>은 영화 <두결한장>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확장시켜 보여준다. ⓒ 박희정


그 후 몇 년이 지나 독립영화제 자원봉사를 하면서 퀴어영화제팀과 종종 어울렸다. 성소수자들의 삶을 담은 영화들을 모아 영화제를 할 정도로 세상은 진보했고 퀴어영화제팀 사람들도 스스럼 없었다. 가까이 지낸 남성 동성애자들은 언니처럼 편안했고 영화제 뒤풀이 때 흥겨운 노래가 나오자 바로 일어서서 춤을 추는 그들의 자유분방함이 좋았다.

그럼에도 가끔 내게는 그들을 옥죄는 세상의 시선이 느껴졌다. 밖으로 다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더 절실한 애틋함도 전해졌다. 그 숨은 결들을 상업영화에 다 담긴 쉽지 않았을 게다.

영화로 채우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만화를 보자. <호텔 아프리카>의 작가 박희정이 영화 <두결한장>을 원작으로 한 또 다른 <두결한장>을 네이트 웹툰으로 연재하고 있다. 영화에 담기지 못한 민수가 게이 할아버지 환자에게 갖는 애정과 외면이란 모순된 감정의 근원을 짐작케 되고, 레즈비언인 효진-서영 커플의 이야기도 좀 더 풍부하다.

물론 만화 <두결한장>이 더 와닿는 이유는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106분 동안 스크린을 채웠던 예쁘고 짠한 사랑 이야기가 또 다른 <두결한장>으로 이끌었다. 곧 그 <두결한장>을  극장에서 더 찾기 힘들어질 것 같다. 얼마 없던 상영관에서도 벌써부터 영화를 내리고 있다.

이 영화의 상영기간이 현재 우리 사회의 동성애 포용점수를 보여준다고 하면 비약일까. 내 사고의 논리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극장가에서 좀 더 영화 <두결한장>의 스크린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우리 곁의 민수와 효진에게 다가갈 문을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만화 <두결한장>의 한 장면.

만화 <두결한장>의 한 장면. ⓒ 박희정


두결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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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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