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모든 것 이 포스터는 매우 훌륭하게도 영화의 형식과 내용을 매우 요약적으로 잘 보여준다.

▲ 내 아내의 모든 것 이 포스터는 매우 훌륭하게도 영화의 형식과 내용을 매우 요약적으로 잘 보여준다. ⓒ <내 아내의 모든 것>

보통 로맨틱 코미디는 혼사 장애를 다룬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계급의 차이에서 오는 다양한 갈등을 겪고 극복한 뒤에 결혼함으로써 갈등은 해소된다. 대개 이 갈등에는 제3자의 개입이 나타난다. 예컨대 돈 많은 여자의 아버지라든가 남자의 헤어진 애인이라든가. 그러나 장르는 언제나 진화하는 법.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일단 운명적으로 만난 남녀의 결혼을 후딱 해치우고 나서 갈등을 제시하고 우여곡절 끝에 헤어질 위기에 놓인 남녀를 재결합시킨다.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변주의 재미를 주었다고나 할까.

이야기는 단순하다. 요리를 공부하던 연정인(임수정 분)과 내진 설계를 공부하던 이두현(이선균 분)은 학생 시절 일본 나고야에서 만난다. 지진이 일어나던 날 만난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지고 낭만적인 연애 시절을 거쳐 결혼에 골인한다.

7년 후 둘은 안정된 중산층 부부로 남부럽지 않게 잘살고 있다. 그러나 이두현은 아내에게 점점 애정을 잃는다. 그건 아내가 연애 시절과 달리 너무나 시끄럽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두현이 아내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게 하려고 매우 길게 연정인의 엽기적인 언행을 보여준다. 하지만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나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연정인을 두려워할 남자가 어디 있으랴. 두려워하는 척은 할 수 있어도.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희극적인 도약을 감행한다. 

연정인 혹은 임수정 아무리 잔소리가 많고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해도 누가 이런 아내를 마다하랴.

▲ 연정인 혹은 임수정 아무리 잔소리가 많고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해도 누가 이런 아내를 마다하랴. ⓒ <내 아내의 모든 것>



이두현이 연정인을 떨쳐내기 위해서 희대의 카사노바 장성기(류승용 분)를 고용한다는 것. 물론 이 고용 계약은 갑과 을이 명확한 권력관계가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대단히 희극적이다.

이두현은 아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리스트로 만들어 장성기에게 제공하고, 장성기는 그것을 토대로 연정인을 유혹한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하듯이 장성기가 연정인을 진짜로 유혹할 때쯤 이두현은 장성기에게 그만두어 달라고 요구한다.

잊고 있었던 아내의 매력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 그러나 관객은 연정인의 매력을 잊은 적이 없다. 이 사이에서 <내 아내의 모든 것>은 활력을 얻는다. 장성기가 직업윤리를 저버리고 진짜로 연정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아내-남편-고용인은 진짜 삼각관계에 빠져버린다.

애매한 갑과 을 이두현과 장성기,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얄궂은 관계를 보여주는 한 컷.

▲ 애매한 갑과 을 이두현과 장성기,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얄궂은 관계를 보여주는 한 컷. ⓒ <내 아내의 모든 것>


그다음 이야기를 여기에 쓰는 건 이 영화를 보게 될 예비 관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결말에 이르는 우여곡절은 생략하기로 하자.

어느 시인은 '사랑에 대한 습관이야말로 사랑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라이트 버전이라 할 '아주 오래된 연인들'(16년 전의 노래!)에서 '공일오비(015B)'는 연애마저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리면 얼마나 지루한 것인지 유쾌하게 설파한 적이 있다. 그러니 일상을 공유하는 부부는 어떻겠는가. 부부야말로 아주 사이가 좋더라도 '아주 오래된 연인' 아닌가.

이 영화는 '아주 오래된 연인'인 부부에게 '지겨움'이라는 지진이 일어날 때 어떻게 그것에 대응할지 웃으면서 알려준다. 말하자면 부부라는 지층에 균열이 생겨 지진이 일어날 때를 대비한 내진 설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건축학개론'이라고나 할까. 

카사노바의 유혹 처음엔 의뢰받은 작업(?)이었지만 곧 진짜 사랑에 빠져버리는 장성기. 류승룡의 '핑거 발레'는 이 영화의 웃음 폭탄 중 하나이다.

▲ 카사노바의 유혹 처음엔 의뢰받은 작업(?)이었지만 곧 진짜 사랑에 빠져버리는 장성기. 류승룡의 '핑거 발레'는 이 영화의 웃음 폭탄 중 하나이다. ⓒ <내 아내의 모든 것>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막판에 잠깐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그 '가벼움'을 위한 전략적인 세팅이 모두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예컨대 이혼을 고려하면서 이두현은 부모나 다른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이두현과 연정인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둘 사이에는 불임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그다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연장선에서 연정인의 흡연 또한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건강을 챙기라고 녹즙을 아침마다 남편에게 짜 주면서 담배를 피우며 불임을 걱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장성기의 부유함은 이 영화의 희극성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궁금증만 자아낸다.

이강백의 희곡 <결혼>에 나오는 사기꾼처럼 모든 것이 자기 것이 아니면서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이러한 불만족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내 아내의 모든 것>은 계속되는 잔재미와 깨알 같은 웃음으로 충만한 훌륭한 코미디다.

내진설계 혹은 추억 <내 아내의 모든 것>에는 지진이 모두 세번 일어난다. 둘의 만남이 있었던 나고야에서, 둘이 부부로 있는 한국에서. 그리고 두 부부 사이에서.

▲ 내진설계 혹은 추억 <내 아내의 모든 것>에는 지진이 모두 세번 일어난다. 둘의 만남이 있었던 나고야에서, 둘이 부부로 있는 한국에서. 그리고 두 부부 사이에서. ⓒ <내 아내의 모든 것>


덧붙이는 글 어느 영화보다도 임수정이 예쁘게 나왔고, 류승룡은 이제 악역이 아니라 희극 배우로서 더 주목받지 않을까 싶다. 이선균은 올해 복 터졌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임수정 이선균 류승용 민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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