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기획 아이템을 내라고 성화다. 하지만 전 언론사에 있을 때 이미 기획기사 수백 개를 썼었다. 더 이상 이리저리 묶을 것도 없다. 더 이상 식상한 아이템으로 기획기사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 국장님이 내놓으란다. 와, '죽것다'. 다시 머리를 쥐어 짜낸 결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예 내가 영화를 만들어보자. 내가 영화를 만들며 느낀 것을 써 보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최재준 편집기사님. 무한한 재능으로 단편영화 <여기자의 하루>를 살려주셨다.

최재준 편집기사님. 무한한 재능으로 단편영화 <여기자의 하루>를 살려주셨다. ⓒ 조경이



지난 월요일(18일), 베니스 영화제 출품 공고가 떴다는 것을 확인하고 일요일까지. 7일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바쁘게 지나갔다. 
 
먼저 어렵게 연이 닿은 최재준 편집기사님을 화요일에 만났다. 최 기사님 역시 다음 작품을 하기 전에 딱 일주일의 시간이 있어서 이 작업에 참여해주기로 하셨다. 화요일 오후에 만나 데이터를 건네고, 현장 편집본을 보여 드렸다. 내가 원하는 편집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에 수요일과 목요일 낮까지 작업한 뒤 목요일 오후에 한 번 더 만나 최종적으로 편집을 완성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드디어 목요일.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기사님을 만났다. 편집된 영상이 혹시나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었다. 워낙 베테랑이기 때문에 잘해주실 것이라는 마음이 거의 90%였지만 말이다.
 
역시나 깜짝 놀랄만한 영상을 만들어 오셨다. 역시 영화는 편집의 미학인가. 하하하! 그런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초반 영상의 지루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임팩트 있는 영상이 탄생했다. 초반에 <여기자의 하루> 영상을 본 분들 대부분은 지루함에 치를 떨었었다.


 마지막 편집 확인하는 날, '연출 슈퍼바이저' 김보람 감독님이 직접 오셔서 함께 완성본이 나올 때까지 체크해주셨다.

마지막 편집 확인하는 날, '연출 슈퍼바이저' 김보람 감독님이 직접 오셔서 함께 완성본이 나올 때까지 체크해주셨다. ⓒ 조경이



목요일이 마지막 편집인 만큼 연출 슈퍼바이저 김보람 감독님도 함께했다. 뮤직비디오 등 많은 프로젝트로 시간을 내기 어려움에도 달려와 주셔서 감사했다. 김보람 감독님 역시 초반에 나온 영상을 보고 많이 걱정했는데 편집 이후에 훨씬 더 좋아졌다고 하셨다. 너무 감사했다.  
 
훨씬 더 좋아졌지만 편집에서 잘려나간 아쉬운 출연진을 다시 끼워 넣고 어느 부분은 짧게, 어느 부분은 더 길게. 미묘한 부분을 잡아가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오후 7시에 만났는데 11시가 다 되어서 헤어졌으니 말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마음에 드는 편집본을 받았다. 감사드립니다 최재준 기사님! 김보람 감독님!
 
금요일 오후 2시, 4시에는 홍대에서 각각 믹싱과 D.I(Digital Intermediate, 디지털 후반 작업)가 잡혀 있었다. 믹싱은 보통 3시간~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처음 해보는 후반 작업이라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예상치 못했다.
 
믹싱은 음반 제작자로도 활동하는 이종현 기사님이 맡아주셨다. 통화 소리, 소품들의 튀는 소리, 대사의 억양, 톤 등 모든 소리를 빠른 손으로 매끄럽게 잡아주셨다.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이번 <여기자의 하루>의 믹싱을 담당해주셨던 이종현 기사님.

이번 <여기자의 하루>의 믹싱을 담당해주셨던 이종현 기사님. ⓒ 조경이





믹싱이 끝나고 바로 상상마당 D.I 작업실로 이동했다. 오후 4시 약속이었지만 30분 정도 늦었다. 영화 <고지전><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건축학개론><은교><후궁> 등 요즘 흥행작은 거의 이곳을 거쳐 갔다. 앞으로 개봉할 <회사원><도둑들><내가 살인범이다>도 이곳에서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  상상마당 박진호 기사님과 정혜리 기사님이 재능 기부를 해주셨다. 쟁쟁한 상업 영화를 만지는 틈에 시간 내서 해주셨던 것. 
 
먼저 박진호 기사님이 아름다운 색감을 입히고 스포트라이트를 비롯해 명암을 조절해주셨다. 밋밋했던 영상이 살아났다. 이것 역시 신기할 따름. 공간을 더 따뜻하게도, 더 건조하게도 하는 마술이었다. 업계에서 가장 빠른 손을 지닌 분이라는 소문처럼 정말 빠르게 작업하셨고 그 결과 2시간 만에 엔딩 크레딧 작업까지 마무리됐다.
 
박진호 기사님은 "믹싱을 너무 급하게 했는지 조금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찜찜한 마음도 있었지만 믹싱도 끝났고, 시간도 없어서 "그냥 넘어갈게요"라고 하고 옆 사무실, 영어 자막을 입히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정혜리 기사님을 만났다. 이분 역시 영어 자막을 입히면서 "믹싱이 조금 안 맞다"고 말씀하셨다.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하자, 토요일에 나와서 작업해주겠다며 믹싱 기사님께 다시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라신다. 대박. 쉬어야 하는 주말에 나와 봐주시겠다니. 금요일에 다 끝내야만 하는 줄 알고 믹싱을 디테일하게 못 챙겼는데 토요일에 나와 주시겠단다. 
 
후반작업 D.I 재능기부를 해주셨던 상상마당의 박진호와 정혜리 기사님.

▲ 후반작업 D.I 재능기부를 해주셨던 상상마당의 박진호와 정혜리 기사님. ⓒ 조경이





믹싱하는 분에게 전화했다. 좀 더 디테일하게 잡아야 할 것 같다고 하자 토요일에 해주시겠단다. 찜찜했지만 내 마음대로 진행할 수 없어서 말하지 못했는데 옆에서 이렇게 잡아주셨다. 정혜리 기사님 감사합니다.
 
특히 정혜리 기사님은 토요일 오후에 최종적으로 마무리할 때까지 장장 5시간을 내주셨다. 미안하고 감사했다. 영상을 DVD 파일로 만들어서 일요일에 상상마당으로 가져다주시기까지 했다. 
 
그렇게 DVD가 나왔다. '7일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내가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틈틈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기태 촬영 감독님이 있어서 가능했다. 여기에 '신의 손' 최재준 편집 기사님, 이종현 기사님, 박진호 기사님, 정혜리 기사님의 힘이 컸다. 최종 믹싱 작업과 D.I 작업을 끝까지 지켜봐 줬던 이미진 음악 감독 또한 의지가 됐다. 
 
영진위 베니스 영화제 마감일인 25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고려대역 인근 영진위를 방문했다. 1시 30분께에 영진위 2층 국제사업센터 유럽 담당자 전윤형씨에게 DVD 2장을 전달했다.  베니스행을 위해서 장편, 단편을 통틀어 약 80편 정도가 영진위에 접수됐다고 했다. 단편 부문은 어느 정도 접수되었냐고 물어보니, 오늘이 접수 마지막 날이라서 아직 체크는 하지 못했다고.
 
선배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월요일부터 딱 7일 만에 모든 일이 마무리됐다.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감사한 일이 넘쳐났던 시간들. 베니스에 진짜 가느냐 가지 못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함께해준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린다. 


 25일 영진위에 단편영화 <여기자의 하루>를 접수했다.

25일 영진위에 단편영화 <여기자의 하루>를 접수했다. ⓒ 조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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