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은 1950년대 초반, 미국에 불어닥친 '공산주의자 사냥 열풍'의 과열에 맞서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와 진실보도를 위해 싸운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우'의 실화를 다루었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굿 나잇 앤 굿 럭'은 극중 주인공인 에드워드 머로우가 미국 CBS 방송사의 TV 시사보도 프로그램 <시 잇 나우(See It Now)>의 진행자로서 방송을 마무리하며 늘 하던 클로징멘트다. 에드워드 머로우는 그의 독특한 진행방식과 화법, 마무리 인사말로 시청자들에게 개성있는 앵커로 각인되었으며, 진실을 추구하던 언론인이었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쓴 광풍, '공산주의자를 때려잡자'

 ▲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의 한 장면.
ⓒ (주)유레카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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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정부 내에서 200명 이상의 공산당원이 활동 중입니다! 바로 내 손 안에 그 명단이 있습니다!"

공산권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던 1950년대, 미국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가 던진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미국이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여러 차례 겪었던 당시, 정부 기관에까지 공산주의자가 존재한다는 이 짧은 문장은 미국인들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매카시 의원의 발언 이후, 4년간 미국은 소위 '빨갱이 때려잡기' 광풍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매카시 의원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 정부기관 내에서 활동 중인 공산당원의 명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뚜렷한 증거없는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를 집요하게 이용했다. 그는 가장 민감한 주제 중 하나인 안보의식을 무기로, 정치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걸쳐 '국가를 위협하는 반 사회적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는 작업에 열을 올린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는 공산주의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 무고한 국민들까지도 '빨갱이'로 몰리게 된다. 하지만 언론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이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에게 비판을 제기했다가 빨갱이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회 전체에 퍼져있었던 것이다.

이 광기어린 마녀사냥에 맞서 진실보도를 외치며 언론인의 양심을 보여준 인물이 바로 '에드워드 머로우'였다. 그는 '마일로 라둘로비치'라는 공군 중위가 부당하게 공산주의자로 몰려 군인 신분을 잃고 쫓겨난 사건을 폭로한다. 이에 매카시 의원이 '머로우는 공산주의자이고, 나를 비롯한 반공세력을 음해하려는 의도로 공격한 것이다'라고 반박하면서 사건은 더욱 커지게 된다. (매카시 의원의 이 발언은 아무런 증거없는 모함이었으며, 자신을 비판한 언론인에 대한 탄압에 불과했다.)

 ▲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의 한 장면.
ⓒ (주)유레카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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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히 권력에 맞선 언론인이었던 머로우와 그의 뉴스팀은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공군 대령들이 찾아와 방송을 내보내지 말 것을 강요하는가 하면, 매카시 의원은 머로우를 공공연하게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고, 그가 진행하던 시사프로 <시 잇 나우>는 광고주와 마찰을 빚게 된다. 방송사는 압박을 견디다 못해 프로그램을 사실상 폐지하는 조치까지 내린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방송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도를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진실의 가치를 믿은 것이다.

"우린 두려움에 떨며 살 순 없습니다. 역사와 종교를 고찰해보면 두려움 때문에 혼란의 시대로 빠져든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겁쟁이의 후손이 아니며 표현하고, 기록하고, 동참하길 겁내는 자의 후손도 아니며 억지주장을 관철하려는 자의 후손도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참된 언론이 지향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려는 권력들의 탄압에도 끝내 진실을 보도하려는 의지 말이다.

몰락한 매카시즘, 2012년 대한민국서 부활하다

매카시는 결국 몰락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매카시즘은 여전히 세상에 남아 떠돌다가 대한민국으로 건너온 듯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정권이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무고한 사람들마저 부당하게 처벌했고, 당시 언론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최근에 당시 간첩사건으로 처벌받은 사람들 중 일부는 고문 끝에 혐의를 인정한 것이 드러나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 매카시즘은 2012년에도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최근 여당 의원들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종북주의자, 간첩 출신들이 국회의원이 되려한다 -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
국회에 (국가보안법)법 위반자가 30명이나 된다 -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그렇다면 거론한 인물들이 누구인가'하고 묻는 물음에 뚜렷이 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막연히 '간첩이 국회에 존재한다'는 발언만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심을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마치 1950년대의 미국에서 매카시 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의 한 장면.
ⓒ (주)유레카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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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정치적 공세와 탄압으로 반대세력을 잠재우려 했던 조셉 매카시 의원. 매카시즘의 창시자였던 그가 결국 진실이 밝혀지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음을, 2012년 '신' 매카시즘을 앞세운 대한민국 보수 정치인들이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연출·각본·조연 맡은 조지 클루니...언론 정의를 말하다

이 영화는 조지 클루니가 조연으로 출연은 물론, 각본과 연출까지 맡으며 다방면에서 그의 실력을 드러낸 영화이다. 삽입되는 당시 매카시 의원의 실제 영상들에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해 영화 전체가 흑백으로 제작되었지만 세련된 화면구성을 느낄 수 있고, 중간중간에 흘러나오는 재즈풍의 음악들은 담백하고도 잔잔히 흘러가는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살려준다.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로 60여년 전의 사건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걸까.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과 에드워드 머로우의 역사적인 대결을 보여주며,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국민들을 공포심으로 억누르고 지배하려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그보다 더 나은 정치인과 정치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역시도 그러한 국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임을 떠올린다.

현재 MBC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정부 여당의 낙하산 인사로 인해 언론 비판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으며, PD수첩을 비롯한 시사 프로그램들은 다수 폐지 또는 중단되었고, 제작자들이 부당한 사유의 징계를 받거나 해고된 상태이다. 정부가 비판의 목소리를 탄압으로 잠재우려 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방송인들은 언론의 자유를 위한 길고도 힘든 무임금 파업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공정 언론을 되찾기 위하여 애쓰는 2012년의 대한민국 언론인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로부터 또 다른 에드워드 머로우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TV는 우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계몽하고 영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는 한, TV는 번쩍이는 전깃줄 상자에 불과합니다.
- 에드워드 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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