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늪>의 여주인공, 하나메.

<인스턴트 늪>의 여주인공, 하나메. ⓒ 미키 사토시


주인공 하나메의 유일한 기호식품은 '진흙 초코렛 차'다. 우유를 조금만 부어 질퍽질퍽하게 타먹는다. 이 질퍽한 느낌이 마치 늪의 느낌과 비슷하다. 늪이 그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 '진흙 초코렛 차'도 하나메의 모든 시름을 잠시나마 빨아들인다.

하나메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준 물건들을 하나씩 늪에 던져버렸다. 어머니와 자신을 두고 집을 나가버렸다는 게 이유고, 그 상처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하나메의 상처를 치유해주는데에 모든 플롯과 내러티브를 집중한다. 하나메의 어머니도 상처가 있다. 이를 치유하기위해 하나메는 짧은 일탈을 시도한다. 사랑도,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망한 인생인 그녀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어머니의 옛사랑을 찾아나서게 된다.

영화는 <이웃집 토토로>같이 예쁘고 앙증맞은 글씨체의 화면으로 시작하며 관객에게 호감을 준다. 감독은 관객이 뭘 원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첫 화면에 이어서 하나메의 지루한 일상을 빠른 몽타쥬로 보여주며 관객의 관심을 끈다.

 펑크 록커남(왼쪽)은 하나메에게 둘도없는 조력자가 된다.

펑크 록커남(왼쪽)은 하나메에게 둘도없는 조력자가 된다. ⓒ 미키 사토시


이 영화는 흥미로운 구석이 참 많다. 하나메의 어머니는 '갓파'(일본 고유의 요정같은 괴물. 상상의 존재다)를 봤다고 좋아한다. 그때부터 이 영화에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이 더해진다. 일상적이면서도 동화같은 환상적인 분위기 말이다. 어머니가 사고로 입원하고나서 찾게 된 어머니의 옛사랑은 고물상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하나메는 펑크 록커남을 만나고 또 한명의 수상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펑크 록커남은 하나메를 이유없이 돕는다. 이런 관계는 캐릭터 설정이 헐겁다는 인상도 줄수있고, 둘의 사이에 전형적인 로맨스 장르의 코드가 개입된다고 볼 수도 있다.

당초 어머니의 옛사랑을 찾으면 어머니와 다시 연결되는 식의 전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으면 실망했을 텐데 이 영화는 역시나 관객에게 실망을 주지 않는다. 어머니의 옛사랑은 내러티브의 안중에도 없게 되고, 영화는 하나메가 되찾고 싶어하는 게 무엇인지에 신경을 기울인다. 관객은 만화 주인공 같은 하나메의 비일상적 캐릭터 때문에 그녀가 뭘 하기 위해 펑크 록커남과 동행하는지 잊은 듯 보여도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의 옛사랑이 수상한 여인과 새출발 하기 전에 하나메에게 비밀의 장소에 가보게 하는데, 그 장소에서 발견한 흙더미가 인스턴트 늪이라는 것도, 펑크 록커남과 하나메가 나중에 함께 용을 보는 것도 다 하나메에게 '망한 인생도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장치가 된다.

어릴때 혼자 소중히 여겨 집착했던 구부러지고 녹슨 못을 다른 이에게 보냄으로써 하나메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작별한다. 한때 괴상한 인형가면을 뒤집어 쓰고 서서 지나던 동네 주민을 놀래키기도 했던 그녀의 외로움도 어머니의 옛사랑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어머니가 깨어나고, 잃어버렸던 애완동물이 돌아오고, 펑크 록커남과 동업을 하게 되면서 사라지게, 아니 잊혀질 수 있게 된다.

삶이 홀가분해진 하나메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관객을 향해 외친다. 삶이 좋은 것만으로 가득 하지는 않지만 행복해질 수 있는 거라고. 이 부분에서 관객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이다. 뻔히 아는 내용을 뭐하러 강조하느냐는 반응과, 흐뭇한 미소로 그녀의 외침에 관대해지는 반응이다.

본 기자는 결국 후자의 반응을 보였다. 워낙 하나메가 행복해지길 바랬는데 그 바램을 이뤄주기 위해 영화적 허용(디제시스 속에서만 존재가 허락되는 비개연적일 수 있는 환상성을 뜻함. 디제시스는 영화속 현실을 말한다)의 최고봉이라 할수 있을 '용의 승천'까지 사용한 감독의 의중에 감복했다.

하지만 하나메의 행복이 곧 관객에게 치유로 다가온다는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메라는 캐릭터의 중독성이 관객이 그녀를 통해 '대리 치유'를 받게 해준다. 이 영화는 다소 유니크하지만 사랑스럽고 따뜻함이 배어있는 '코믹 힐링 무비'다. 보고나면 기분 좋아지니 강력 추천하고 싶다. 일본 영화는 무조건 싫은 분 아니라면 보셔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덧붙이는 글 영화 <인스턴트 늪> 상영시간 120분. 12세 관람가.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에서 주최한 상영회에서 보았습니다. 일본영화 여러 작품을 무료로 상영하고 있는데요, 6월 22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관심있으신 독자님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정보는 http://www.jpf.or.kr/ 이곳에 가시면 찾으실 수 있답니다.
인스턴트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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