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카르노 영화제와 전주영화제 포스터

로카르노 영화제와 전주영화제 포스터 ⓒ 전주영화제/로카르노영화제


로카르노영화제가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해임과 관련 전주영화제와의 관계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영화제가 로카르노영화제를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로카르노와의 협력이 중단될 경우 전주영화제의 위상 실추 등을 비롯한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주와 로카르노는 서로 성격이 비슷하고, 로카르노에서 상영됐던 20여 편의 작품들을 전주가 아시아프리미어로 끌어오는 등 깊은 유대 관계를 갖고 있다. 로카르노영화제 올리비에 페레 집행위원장은 올해 전주영화제를 찾기도 했다.

"영화제에서는 영화를 보는 것, 놀이공원 아니다"

지난 5일,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트위터를 통해 영화제로부터 해임 통보 받았다는 사실을 알린 후 "해임 통보한 위원장님 말에 따르면 전주지역 언론들이 이사회를 압박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해임 사유로 논란이 됐던 지역신문 기사에 대해 "나는 기자회견장에서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도 트는 축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영화제'라고 이야기했는데, 지역신문 기자는 내가 '영화제가 영화만 틀면 됐지'라고 말했다고 썼다"고 토로한 바 있다. (관련기사:JIFF 프로그래머 해임 논란...지역 언론 개입?)

 전주국제영화제 유운성 프로그래머

전주국제영화제 유운성 프로그래머 ⓒ 전주국제영화제

이번 일과 관련해,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9일 블로그에 "로카르노영화제 집행위원장 올리비에 페레가 전주시와 영화제에 보낼 항의서한을 준비 하고 있음을 메일로 알려왔다"며 "복직이 이뤄지지 않으면 '로카르노와 전주영화제와 사이의 일체 관계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전했다.

로카르노 영화제는 전주영화제가 제작하는 <디지털삼인삼색> 작품들을 해마다 소개해 왔고 전주에서 상영됐거나 만들어진 작품들이 해외로 나가는 발판 구실을 해 왔다.

유 프로그래머는 "로카르노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인들도 전주의 전격적인 프로그래머 해임에 놀라워하며 재고를 촉구하는 뜻을 메일이나 SNS를 통해 전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디지털삼인삼색 2012>에 참여한 중국 잉량 감독은 SNS에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해임에 대한 결정을 재고해 주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잉량 감독은 이번 전주에서 상영된 <아직 할 말이 남았지만>으로 인해 중국 정부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다. 그는 디지털삼인삼색 기자회견 및 핸드프린팅 과정에서 발생한 지역신문 사진기자의 무례한 횡포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기자 주- 당시 한 사진기자는 촬영 중 영화제 스태프가 몸을 스쳤다는 이유로 "기자를 쳤다"며 실랑이를 벌였다.)

올해 전주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이었던 포르투갈의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 감독도 "지난 폐막 기자회견에서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지역 언론에 대답한 말이 전적으로 옳다. 영화제에서는 영화를 보는 것이지 놀이공원 같은 게 아니다"라며 "영화제 측이 불공정한 결정을 재고해 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한국 영화를 해외에 적극 소개하고 있는 미국 평론가 겸 저널리스트 달시 파켓도 "전주영화제가 유운성 프로그래머를 내보낸 것은 사소한 정치적 이유 같은 생각이 든다"며 "안 좋은 일"이라고 밝혔다.

 전주영화제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중국 잉량 감독

전주영화제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중국 잉량 감독 ⓒ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해임은 국내 영화제의 취약한 토대 보여줘"

해외 영화인들뿐만 아니라 국내 영화계 인사들도 지역 언론의 압박에 굴복한 전주영화제의 행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단편경쟁 심사위원으로 폐막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윤성호 감독은 "지역 언론이 폐막 기자회견 발언을 왜곡했다"며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주장에 대해 "그의 주장이 옳다. 당일 동석했던 자격으로 전적으로 사실에 근거했음을 공증하고 싶다"고 밝혔다.

국내 영화제의 한 프로그래머는 "지역 언론이나 토호 세력들의 압박은 어느 곳이나 있지만 민병록 집행위원장이 이를 잘 막아냈어야 했다"며 "8년 동안 영화제의 중심에 있던 프로그래머를 갑자기 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전주영화제 국제경쟁 심사위원이었던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해임이 기자회견장의 발언 때문이라면, 나 또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 같은 이야기를 했을 거란 말을 돌려주고 싶다. 그 말이 문제라면 그건 개인이 아닌 영화적 쟁점으로 다뤄야한다. 논의가 필요한 것을 해임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회견 답변을 들으며 그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걸 느꼈는데, 우려한 일이 벌어졌다"고 개탄하고 "슬픈 일은 아직도 영화제에서 영화외의 볼거리를 찾아야한다는 것이 쟁점이 되는 일이다. 그건 영화외의 볼거리를 영화제에서 찾으려하는 저급한 언론에게나 쟁점이다. 당연한 말을 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할 거란 걸 여전히 예감한다는 게 슬프다"라고 덧붙였다.

 전주영화제 폐막 기자회견에 심사위원의 일원으로 참석한 윤성호 감독(좌측 두번째). 전주국제영화제 자료사진

전주영화제 폐막 기자회견에 심사위원의 일원으로 참석한 윤성호 감독(좌측 두번째). 전주국제영화제 자료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최근까지 영화 분야를 담당했던 중앙 일간지의 한 기자 역시 트위터를 통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유운성 프로그래머에 대한 부당한 해임은 번듯해 보이는 한국의 국제영화제가 사실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놓여있는지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스태프, 시네필의 열정이 담긴 이 공간은 한 줌의 권력자들이 맘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부산영화제가 비교적 탈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외부의 부당한 요구와 압력을 온갖 수단으로 막아내면서 영화제의 사람과 정체성을 지켜낸 집행위의 뚝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전주는 외부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핵심 인력을 덜컥 희생양으로 내주었다"고 비판했다.

"지역 언론 횡포는 지역 문화축제 실무자들 대다수가 공감"

이 같은 대내외적인 비판 여론에 전주영화제 측도 부담을 느낀 듯 공식입장을 통해 '이 사안에 대해 전주국제영화제가 보여준 매끄럽지 못한 소통방식에 대한 질책과 비판은 겸허히 수용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파문의 확산을 꺼린 듯 해임에 대한 공식입장을 지역 언론사에만 보냈고 중앙 언론의 경우 요청하는 언론사들에게만 보내 언론보도가 최대한 적게 나가도록 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주영화제 측의 입장을 충실히 전하고 있는 지역 언론들뿐이다. 영화제를 압박했다고 지목된 지역 언론들은 "폐막 기자회견장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해임됐다"며 영화제 쪽 입장을 중심으로 보도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북 민주언론운동협의회는 8일 발표한 브리핑을 통해 "영화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평가 차이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지만 그런 시각 차이가 차이로 끝나지 않고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이야기한 것처럼 해임 과정에 지역 언론이 부당한 입김을 행사했다면 지역 언론은 이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전주지역 다른 문화 축제의 한 실무자는 "영화제의 유 프로그래머를 알지 못하지만 그가 언급한 지역 언론에 대한 지적은 이쪽 분야에 있는 사람들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다"며 "감투를 쓴 듯 횡포를 부리는 기자들이 적지 않고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는 토호세력들이 문화행사 방향 등에 외압을 행사하는 것은 다들 인식하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지역 언론을 토호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가 힘든 분위기"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지역 언론들의 전횡이 제대로 알려져서 바로잡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유운성 해고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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