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 어느새 상반기의 마지막 달입니다. 올해는 그 어느해보다 영화들의 개봉이 풍성한 편인데요, 이쯤에서 지난 6개월여 동안 개봉했던 영화중 화제작들을 돌아보고자 작은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름하야 <2012년 상반기 개봉영화 '내맘대로' 시상식>. 이 시상식은 스피디합니다. 후보작 없이 바로 수상작을 발표합니다. 함께해 보실까요? (수상작은 각각 2012년 1월부터 6월 사이에 극장에서 개봉했고, 6월 6일 현재까지 상영했거나 상영중인 영화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편집자말]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임수정(왼쪽)과 <은교>의 김고은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임수정(왼쪽)과 <은교>의 김고은 ⓒ 영화사 집, 정지우 필름


[여우주연상]

올해 우리 여배우들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선보였지만, 그중 두 명의 수상자로 압축시키느라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임수정, <내 아내의 모든 것>
김고은, <은교>

두 배우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전작보다 발전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임수정은 더 이상 알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소녀 같은 배우가 아닙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확실히 성장한 그녀는 이제 그 매력을 누구나 알 수 있게 됐죠. 자신에게 잠재되어있던 또 다른 캐릭터를 끌어냈습니다.

김고은은 올해 신인 여배우중 단연 손꼽히는 배우입니다. <건축학개론>의 '납뜩이' 조정석과 함께 충무로 캐스팅 1순위에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첫 장편영화 데뷔작인 <은교>에서 관객들은 입을 모아 그녀가 은교 자체였다고 칭찬했습니다. 나이도 경력도 많지 않은 그녀가 쉽지 않은 내면연기를 해낸 것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녀의 전작인 단편 <영아> 역시 화제를 불러 모았지만, 아무래도 그녀 역시 전작보다 발전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감독상]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도 하죠. 올해는 신인급 감독과 전작의 명성을 이어갈지 주목되는 감독들의 작품이 고르게 선보이고 있는데, 관객들 사이에선 전작의 명성에 비해 실망을 안겨주는 중견 감독의 작품들이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전작을 뛰어넘는 신작을 내놓아 주목을 받은 감독이 있습니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지영 <부러진 화살>
정재은 <말하는 건축가>
장 피에르 주네 <믹막: 티르라리고 사람들>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 포스터.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 포스터. ⓒ 아우라 픽쳐스


먼저 정지영 감독입니다. 올해 나이 만 65세. <남부군> <하얀 전쟁>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으로 1990년대 한국영화계의 인기감독이었던 그는 1998년 <까> 이후 연출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근 14년 만에 컴백한 그의 작품은 판사에게 석궁을 쏜 교수의 실화를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짜임새 있는 각본과 연출은 실화의 화제성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대단한 호응을 얻었죠. 안성기와 문성근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었습니다. 국내 영화에서 그리 많이 성공적이지는 못해온 법정 영화 스타일을 무리 없이 추구했고, 이 영화의 흥행으로 실제의 '석궁 사건'이 적잖은 논쟁을 낳기도 했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공백 끝에 내놓은 연출작이 이렇게 성공했다는 점이 기쁜 일입니다. 그의 성공으로 인해 충무로 다른 중견감독들의 컴백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말하는 건축가>의 정재은 감독입니다. 정 감독은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데뷔작으로 충무로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었죠. 개봉 당시인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는 같 은해 개봉한 <친구>와 함께 '한 관객이 여러 번 관람하기'라는 하나의 관람트렌드를 선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인권을 소재로 한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2003)과 김강우 주연의 <태풍태양>(2005)을 연출했던 그는 한동안 신작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7년여 만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말하는 건축가>입니다.

<말하는 건축가>는 한 건축가의 삶을 통해 사람을 위하는 건축이란 무엇인지 보여준 다큐멘터리 영화인데요. 정재은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돌아온 것이 신선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주인공인 건축가를 그리워하게 되고, 그의 철학과 삶에 감동하게 되는 영화라는 게 관객들의 주된 반응입니다. 개봉한 이후에 상영관이 많거나 홍보가 널리 행해지지 않았는데도 오랜 기간 조용히 흥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끝으로 이 시상식의 유일한 외국인 수상자, <믹막: 티르라리고 사람들>의 장 피에르 주네 감독입니다. 주네 감독은 전작인 <델리카트슨 사람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아멜리에>로 국내외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지요. 워낙 전작들이 화려했던지라 오랜만에 나온 신작이 실망을 안겨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답니다.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괴기스러운 사람들이 정의롭게 사랑스러운 티르라리고 사람들로 바뀌었고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아멜리에>가 지니고 있던 '깨알재미' '일상을 재밌게 만드는 상상력' '동화 같은 따스함' 등의 키워드를 담았고요,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정치적으로도 약자가 힘을 합쳐 악한 강자를 무너뜨린다는 올바른 메시지를 유쾌 상쾌 통쾌하게 그려냈지요. 그의 이런 대단한 컴백이 놀라워 감독상을 주지 않을 수가 없네요. 

[작품상]

보통 시상식에선 작품상을 제일 마지막에 발표하지만, 과감히(?) 중간에 발표합니다.

 <건축학개론>의 주역들. 이용주 감독, 이제훈, 배수지, 엄태웅, 한가인(윗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건축학개론>의 주역들. 이용주 감독, 이제훈, 배수지, 엄태웅, 한가인(윗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 명필름



<건축학개론>

그렇습니다.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은 역시 <건축학개론>이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선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흥행으로 보나, 관객과 평단의 반응들로 보나 최고의 화제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한 말씀만 덧붙이자면, 이 영화에 한가인의 아버지와 엄태웅의 어머니가 나오지 않았다면, 아무리 납뜩이가 웃겨주었어도 그렇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진 못했을 거라는 점입니다. 왜냐고요? 우리 관객들은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할 줄 아는, 효녀 효자들이니까요. 진담입니다. 

[누리꾼 인기상]

요즘 개봉 영화들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납니다. 재밌는 영화는 극찬을 아끼지 않지만, 재미없는 영화는 가차 없이 비난을 퍼붓는 게 누리꾼들이죠. 그런데 올 상반기 영화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수상작을 발표할까요.  

 <언터쳐블: 1%의 우정>

<언터쳐블: 1%의 우정> ⓒ (주) 블루미지

<언터쳐블: 1%의 우정>

이 영화가 '누리꾼 인기상'을 받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봉 후 상영하는 동안 내내 누리꾼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호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그렇게 칭찬일변도인 누리꾼들의 평점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 영화를 비난하는 누리꾼을 단 한명도 못 보았다면, 거짓말일까요. 하지만 정말 그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한 누리꾼들의 애정은 뜨거웠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가 그렇게 인기를 얻은 건, 영화의 아이디어 설정 자체가 훈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자인데 몸이 불편하고 나이든 사람과, 가난한데 몸이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 서로를 사람답게 대하며 우정을 나눈다는 설정은, 이 사회에 놓여있는 여러 계층 간 갈등과 소통의 부재감을 불식시켜 버리는 느낌을 선사하거든요. 그런 설정이면서도 유쾌하고, 억지로 재미나 감동을 주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누리꾼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원인이었습니다. 

자 그리고 끝으로, 세 부문을 더 시상하자면요.

[흥행상] <어벤져스>

[각본상]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여운상] <은교>

흥행상이야, 올 상반기 최다관객수를 기록한 <어벤져스>인 것이고요, 각본상은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돌아갔습니다. 흥행 성공한 이유가 배우들의 호연 때문인데 그건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죠. 시나리오가 쉽고 재밌게 쓰였기에 배우들이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처음부터 무리 없이 읽히더군요. '살아있네'를 비롯해 간결한 대사들도 재밌었고요.

한편 이 시상식에서 또 중요한 부문 중 하나가 바로 이 '여운상'입니다. 여운상은, 보고나서 가장 오래도록 여운이 남은 영화에 주는 상인데요, 역시 여우주연상 부문만큼 수상작을 결정하기가 어려웠지만 결국 '나이 들어갊'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영화 <은교>에 영예가 돌아갔습니다.

<은교>로 인해서 많은 관객 분들이 나이 들어가며 느끼는 외로움에 공감하고, 지금 아직까지 젊은 자신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더군요. 여하튼, 관객 수나 선정적 마케팅 논란을 떠나서 참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설 원작을 영화로도 잘 만든 하나의 사례가 되기도 했고요. (이런 칭찬은 원작소설의 박범신 작가가 SNS를 통해 밝힌바 있죠.)

그렇습니다. 칭찬하기. 이 시상식은 칭찬하기 위해서 기획된 것입니다. 칭찬하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남은 2012년도 많은 칭찬을 주고받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영화들이 개봉할 테니 하나씩 봐주면서 영화가 좋을 시엔 아낌없는 칭찬을 나눠보자고요. 이상으로 <2012년 상반기 개봉영화 '내맘대로' 시상식>을 모두 마칩니다. 

상반기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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