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관중들의 열기가 가득찬 문학 야구장

만원 관중들의 열기가 가득찬 문학 야구장 ⓒ 심재철


70년대에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종종 성동원두(옛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을 찾아 고교야구의 열기를 가까이에서 느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야구장은 88 올림픽 시절 한국과 미국의 맞대결이 펼쳐진 잠실이었다. 시범 종목이었지만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이만큼 흘러 24년만에 야구장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줄곧 K리그 팬으로 살아온 나는 A매치 휴식기 덕분에 모처럼 리그 일정이 없었고 직장 동료들과 함께 2일(토) 저녁 인천 문학경기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안방으로 쓰던 축구장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겉모습만 익숙한 곳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사람이 많이 몰렸다. 인터넷 예매로 일반석(비지정석) 티켓은 받았지만 입장하는데 시간도 꽤 걸렸고 동료 한 사람은 경기장까지 2분 남겨놓았다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듣고 실제 주차할 때까지 50분이나 걸렸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방문 팀 KIA 타이거즈의 응원단

방문 팀 KIA 타이거즈의 응원단 ⓒ 심재철


물론 경기 시작 시간인 오후 5시 임박해서 도착한 내 잘못이 컸다. 하지만 표를 들고도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한참이나 인파에 휩쓸려 걸어다녀야 하는 상황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통로 계단 양쪽 끝에도 촘촘하게 앉아 있는 팬들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야구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 궁금증은 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도중에 그리 어렵지 않게 풀렸다. 자기 팀을 상징하고 있는 막대풍선을 흔들고 때리는 것도 모자라 선수 이름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은 응원가를 따라부르는 대다수 팬들의 열정 바로 그것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온 어린이 팬의 반응 하나하나가 내 눈에는 모두 흥미로웠다. 타구의 방향, 그 결과, 수비수들의 멋진 조직력에 풍선을 때리는 것 말고도 겅중겅중 솟구쳐 올랐다. 덩달아 희열이 느껴질 정도였다.

결승점은 일찍 만들어졌다. 2회말 2사 1루의 기회에서 SK 와이번즈 왼손 타자 임훈 선수가 오른쪽 외야수가 못 잡을 정도로 멋진 2루타를 때렸고 볼넷으로 걸어나갔던 안치용 선수가 빠른 주루 플레이를 자랑하며 홈 베이스를 밟았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상적인 선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승리 투수가 된 SK 와이번즈 왼손잡이 김광현이었다. 야구 지식이 해박한 동료의 조언에 따르면 부상을 딛고 거의 1년만에 1군 마운드에 올라온 것이란다. 마침 그 때 DMB 화면으로 그가 안산공고에서 뛰던 시절의 인상깊은 영상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9회초 KIA 타이거즈 대타 최희섭 선수의 삼진 순간. 투수는 박희수 선수.

9회초 KIA 타이거즈 대타 최희섭 선수의 삼진 순간. 투수는 박희수 선수. ⓒ 심재철


내가 마지막으로 야구장에 갔던 1988년 여름에 태어난 바로 그 김광현 선수가 마침 감격의 승리 투수가 된 것이다. 4회초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되었다. 스트라이크만큼이나 볼이 많았던 김광현이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태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도 똑똑히 봤다. KIA 타이거즈 선두 타자 안치홍의 영리한 플레이가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낸 것. 이어진 이범호의 안타와 나지완의 희생 번트도 일품이었다. 번트 공격이 얼마나 섬세함을 말하는지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김광현은 1사 만루라는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놀라운 집중력으로 방문 팀 팬들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7번 타자 김주형을 1루수 파울 타구 아웃으로 잡아낸 공도 그 묵직함이 멀리까지 느껴졌고 8번 타자 김상훈을 삼진으로 끝내는 순간에는 SK 와이번즈 팬들 모두가 그의 이름을 외치는 듯했다.

 최희섭 선수를 들여보내고 승리를 눈앞에 둔 SK 와이번즈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최희섭 선수를 들여보내고 승리를 눈앞에 둔 SK 와이번즈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 심재철


옆에 앉은 직장 동료의 예언처럼 최희섭이 KIA 타이거즈의 대타로 나왔다. 그런데 9회초 원아웃 상태라 너무 늦었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SK 와이번즈 마무리 투수 박희수의 공도 김광현 못지 않게 묵직한 느낌으로 포수 미트에 꽂혔다. 거포라 불리는 최희섭이 그냥 서 있다가 물러난 것이다.

내 예상보다 빠르고 알차게 운영되는 야구장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색다른 응원 문화도 자리잡고 있었다. 훌륭한 투수들의 실력 덕분에 전체 운영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낀 것이겠지만 경기 내내 의자도 아닌 계단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며 야구를 즐기는 관중들의 표정을 보고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도 있었다.

팬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불러모으는 긍정적인 응원 문화는 K리그 구단들도 연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외치는 것을 골문 뒤의 서포터즈에게만 맡길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K리그 팬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방방곡곡에 자리잡은 16개의 K리그 경기장 관중석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특히, 90분 내내 팬들을 한눈 팔지 못하게 하는 박진감은 축구장만의 매력 중 하나다.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K리그의 역사가 한 켜 한 켜 쌓인 뒤에는 지금의 야구장처럼 팬들의 발길이 넘쳐날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축구장만의 다른 매력에 더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뜰 것이기 때문이다.

K리그는 오는 9일 저녁 탄천종합운동장(성남 천마 FC vs 경남 FC)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내 마음은 벌써 20일 저녁 FA(축구협회)컵 16강 토너먼트(인천 유나이티드 FC vs 고양 국민은행)가 열리는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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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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