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에 개봉한 영화 <비밀>은 "딸의 몸속으로 아내의 영혼이 돌아왔다"는 흥미로운 문구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빙의'라는 현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빙의란, 한 사람의 몸으로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오는 현상으로, 사람들에게 신비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요소로 적절하지요.

그러나 <비밀>에서 진짜 주목해야 할 문구는 "사랑하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일 것입니다. 무엇이 비밀이란 것인지, 왜 그 비밀이 '사랑'을 이유로 지켜져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단지 빙의라는 신비로운 현상에서 그치지 않고, 이 영화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습니다.

나오코의 영혼이 모나미의 몸으로 들어오다

제사에 참석하고 스키도 탈 겸, 버스로 이동하고 있던 나오코(키시모토 카요코 분)와 모나미(히로스에 료코 분) 모녀는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전복사고를 당합니다. 두 사람은 사경을 헤매다 결국 어머니 나오코의 숨이 끊어지고 딸 모나미가 극적으로 살아나지요. 그러나 깨어난 모나미는 내가 죽은 것이냐고 묻습니다. 알고 보니, 모나미의 몸속에 나오코의 영혼이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오코(이제부터 모나미 몸속에 들어간 나오코의 시점으로 그려지므로, '나오코'라고 쓰겠습니다)와 남편 헤이스케(코바야시 카오루 분)는 한 동안 빙의 현상에 대한 혼란을 겪지만, 차차 익숙해져갑니다. 헤이스케는 늘 보아왔던 나오코의 모습이 아니어서 하는 행동이 조심스러워지지요. 그러다가 찌개의 맛이라든가, 자신의 턱 밑을 손으로 쓸어보는 습관이라든가, 집안일 하는 모습 등 사소한 습관들을 보고는 그녀가 나오코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영혼이 들어온 후, 점점 벌어지는 간극

나오코는 "밖에선 모나미로 살아가야 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대신, 집에선 변함없는 당신의 아내라고 얘기하지요. 헤이스케의 걱정과는 달리, 나오코는 고등학생으로서의 생활과 주부로서의 생활을 잘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수학은 모나미의 두뇌 덕분에 술술 풀렸고, 친구들끼리의 생활도 꽤나 즐거운 나날이었지요.

나오코는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모나미의 몸을 빌려 해보고자 합니다. 으레 부모님들께서 "내가 너만큼만 젊었으면 전교에서 1등 한다"는 말을 하시지요. 공부뿐이겠습니까. 친구들과 마음 놓고 놀기, 연애하기 등 젊었더라면 하고 싶었던 일들에 대한 미련이 한둘이시겠습니까. 나오코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뇌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그래서 왜 자신과 모나미가 이렇게 되었는지 밝혀보고 싶다고 말하는 나오코는 의학대학에 당당히 합격합니다. "나 아니면 붙을 사람 아무도 없다"고 할 만큼 자신감이 넘쳤지요.

문제는 그 날 밤부터 일어납니다. 합격 축하 기념으로 초밥 집에 갔다가 거나하게 취해 온 나오코를 눕히고 옷을 벗겨주던 헤이스케는 문득 이 몸이 모나미의 몸이란 것을 의식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다 나오코와 눈이 마주치지요. 부부로서 가지는 섹스의 욕구가 서로 마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섹스를 원하는 나오코에게 헤이스케는 머뭇거리며 말합니다. "모나미의 얼굴을 하고 그러지 말라"고 말이지요. 이 때 그녀는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자신은 나오코이지만, 나오코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사실을 또 한번 깨닫는 계기는 바로 모나미의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오코의 아버지 집에서 생겨납니다. '모나미의 대학 합격 축하' 자리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모나미'가 먹고 싶어 했던 메밀국수를 끓여오고, 나오코는 눈물을 쏟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요. 나오코로 살면서 별로 의식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손맛과 사랑을, 모나미의 몸으로 와서야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즉 나오코로 외부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을 '모나미'로 부르는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줄 때, "아버지(헤이스케)가 좋은 사람이 생기면 축하해주자"는 말에서 남편의 아내로서도 살아가기 힘들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나오코'라는 자기 자신의 존재와 소외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헤이스케도 비슷한 소외감을 점점 느끼게 됩니다. 나오코가 대학에 들어간 후 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싱그러운 젊음, 그 누가 충만하게 누리고 싶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공부도 해보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어보고, 동아리 활동도 해보면서 대학 생활을 만끽하는 나오코에 비해 헤이스케는 텅 비어버린 집을 공허하게 바라보는 일이 잦아집니다. 늘 마당의 화분들에 물을 주곤 하던 그녀의 모습 대신에 쓸쓸히 돌아가는 스프링클러가 이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요트 동아리에 들어간 나오코에게 관심을 가진 '소마'라는 선배의 존재를 알게된 헤이스케는 야릇한 질투감을 느낍니다. 젊은 남자의 접근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겠지요. 몰래  '소마'라는 학생의 전화번호를 뒤지다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그의 감정은 아마도 사라진 젊음에 대한 쓸쓸함일 것입니다.

외부 활동에 빠져 있는 나오코가 자신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혹시나 누가 마음에 든 건 아닌지 신경 쓰인 헤이스케는 그녀의 방에 도청장치를 설치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에게 가부장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전화를 받을 때면 거실에서 도청장치로 훔쳐 듣고, 자기가 직접 퍼 담던 밥을 굳이 그녀에게 시켜서 퍼 담게 하지요. 분명 나오코는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확실히 해두기 위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불안과 갈등은, 나오코가 자신의 방에 도청장치가 있었음을 알고 나서 폭발하게 됩니다. 그들의 대화를 잠깐 옮겨보겠습니다.

"내겐 밝고 즐거운 미래가 하나도 없잖아?"
"내가 있잖아. 나 하나로 부족해?"
"그러는 당신은… 나 하나로 만족해?"
"무슨 뜻이야?"
"말해봐. 솔직히 말해 줘. (…)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마!"
"내가 당신을 괴롭히고 있어?"
"내 아내 나오코는 어디로 간 거야!"
"나도 모나미로 살 수 밖에 없잖아!"
"모나미는 착한 아이였어! 당신처럼 거짓말쟁이에다 헤픈 여자가 아니었다고!"
"그래, 그때 내가 죽었어야 했어."

괴로워하는 헤이스케. 그를 보며 더욱 괴롭고 착잡해지는 나오코. 이 갈등 상황을 어떻게든 무마해보고자 나오코는 섹스를 제안합니다. 저번에 하지 못했으니 이번에 해보면서 서로에게 가진 갈등과 시련을 풀어보자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갈등하던 헤이스케는 결국,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말하며 끝내 그녀와 섹스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모나미의 몸이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장애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나미는 두 사람의 사랑하는 딸이었으니까요. 어찌 하려해도 어찌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두 사람은 조용히 지나갈 뿐입니다.

그 사람의 자리를 지켜주기

영화 초반부터 간간이 등장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나오코 모녀의 사고 당시 버스를 몰았던 운전기사의 아들입니다. 그 청년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러 나왔지만 아버지를 욕보이는 누군가에게 "아버지는 살인자가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두 번째 섹스가 실패한 날 이후, 헤이스케는 청년이 부지점장으로 있다는 라면 가게에 들러 청년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야기인 즉슨, 원래 자신은 운전기사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다른 남자에게서 가진 아이가 바로 자신인데, 아버지(운전기사)는 그것도 모르고 결혼했다가 후에 어머니가 사실을 털어놓았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어머니는 급속도로 망가졌고 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자신은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아버지가 자신을 맡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2년 전에,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아버지가 그녀에게 생활비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헤이스케는 나오코가 어쩌다 듣게 된 운전기사의 마지막 대화를 들려줍니다. "가족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 날 밤, 헤이스케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모나미." 나오코를 모나미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 "네겐… 네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어." 그 말을 들은 나오코는 눈물 젖은 얼굴로 뛰쳐나가지요. 네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대상은 '모나미'. 헤이스케는 알았을 겁니다. 모나미를 모나미답게 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나미 그 자신으로, 주체적인 자신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헤이스케의 말이 이해는 되는데, 하나 의문점이 생깁니다. 흐름 상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헤이스케가 나오코에게 이 말을 했는데, 그렇다면 이 앞뒤 장면이 어떤 의미로 연결되는 것일까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이스케가 청년에게 전해준 "가족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가족을 이루는 모두를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미우나 고우나 가족은 가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의 가족은 거의 파탄까지 이르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 아닌 아들을 맡아 키웠고, 망가져버린 어머니를 끝까지 챙깁니다.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 가족인 것이라면, 가족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고유한 자리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 아들은 아들의 자리, 딸은 딸의 자리. 가족 내에서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자리 자체의 의미를 되새겨볼 때, 가족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란 말은 성립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자리에 있고, 그 자리를 서로가 지켜주는 것.

다시 나오코와 헤이스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가족원 각자의 자리를 생각해볼 때, 나오코는 이미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들어와 있던 셈입니다. 비록 나오코가 죽기는 했지만, 산 자는 죽은 자를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갈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나오코는 죽은 자임에도 어머니라는 자리는 계속 유지하며 산 자들의 기억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모나미 만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나오코 때문에요. "네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한 헤이스케의 말은, 어찌 보면 "당신은 이제 당신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정도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바로 다음 날, 마법처럼 들리는 말. "아빠." 모나미가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하면서. 정확히는 모나미와 나오코가 모나미의 몸 속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모나미가 되었다가, 다시 자고 일어나면 나오코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고 나서 당분간은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나오코는 말하지요. "난 이제 사라져야겠지?" 헤이스케는 "무슨 소리야, 셋이서 행복하게 살자."고 하지만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모나미가 되었을 때, 헤이스케에게 미사키 등대에 데려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곳은 나오코와 헤이스케가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던 장소. 이제 정말 이별임을 직감한 헤이스케는 모나미가 다시 나오코로 변했을 때, 그녀를 등대로 데리고 갑니다. 자신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 나오코는 잠이 들면서 떠나가게 되고, 잠이 깬 후 모나미는 엄마의 몫까지 열심히 살리라 다짐합니다.

마지막의 반전, 나오코의 사랑

그 이후, 모나미는 운전기사의 아들인 청년과 결혼하게 됩니다. 식이 끝나고 헤이스케와 단 둘이 남는 모나미. 모나미는 키워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헤이스케의 턱으로 가져갑니다. 딸의 손길을 느끼고 있던 헤이스케는 갑작스러운 당혹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턱을 쓸어주던 행동은 나오코와 자신만이 하던 습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나오코는 쭉 나오코 자신 그대로였던 것이지요. 결국 나오코와 청년이 결혼한 게 되어버립니다.

이 결말을 두고 관객들의 많은 설전이 있었습니다. 나오코가 남편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는 쪽이 한 축이고, 나오코가 이기적이었다는 쪽이 또 다른 축입니다. 원작자나 감독이 아닌 이상 무엇이 진짜 맞는 의견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저는 전자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마지막, '결혼'으로 끝을 맺는 것은 제 생각에 두 가지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첫번째로는 남편 헤이스케를 너무도 사랑했다는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앞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하는 부분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나오코가 모나미의 몸으로 들어감으로 인해 나오코 자신도 힘들었지만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할 만큼 헤이스케도 힘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헤이스케에게 새 사람이 생겼을 때 축하주자고 할 때, 그리고 모나미의 담임선생과 가까워진 모습을 보았을 때 나오코는 깊은 생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헤이스케는 나오코 당신 밖에 없다고 늘 이야기 해왔기 때문입니다. 자신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서, 남편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나오코가 떠나준 것이 바로 엔딩의 첫 번째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남편을 사랑한 만큼 딸 모나미를 사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코는 모나미의 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않은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이상 자신은 계속 나오코일 뿐입니다. 그러나 결혼으로 남편의 곁을 떠나게 되면 자신이 나오코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편과 자신만이 '나오코'의 존재를 알고, 다른 이들은 자신을 '모나미'로 알게 될 것입니다. 모나미를 모나미로 살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사랑. 그래서 엔딩 장면은 자신이 뺏어버린 모나미의 자리를 되돌려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나오코인 자신을 눌러두고 살면서 모나미로 살아가야 하지요. 맨 마지막에 면사포를 쓰고 웃는 듯 울고, 우는 듯 웃는 나오코의 얼굴이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영화 <비밀>은 이미 많이 통용되고 있는 '빙의'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여운이 깊게 남습니다. 기묘한 현상 이후로 겪게 될 상황들과 그에 따른 인물들의 감정선이 섬세하게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중간 중간에 배치되는 유머러스한 장면들과 소품의 상징성 등이 여운을 더해줍니다. 무엇보다 엔딩의 반전, 그리고 사랑과 가족, 덧붙여 젊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비밀>이라는 제목조차 나오코가 나오코로 남았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비밀이라는 것인지, 나오코가 헤이스케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지 않은 비밀인지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될 여지를 주지요. 어쩌면 관객에게조차 비밀일지 모릅니다. 사랑하기에 서글픈 비밀. 혹은 그 외의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비밀. <비밀>은 그렇게 다가옵니다.

비밀 사랑 자리 빙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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