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모든 것> 공식포스터(또다른 버젼). 싫지않은 두 남자가 내 손아귀에 있다. 어느 여자인들 안좋을수 있을까

<내 아내의 모든 것> 공식포스터(또다른 버젼). 싫지않은 두 남자가 내 손아귀에 있다. 어느 여자인들 안좋을수 있을까 ⓒ 수필름, 영화사 집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흥행세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는 평가다. 비록 <맨 인 블랙3>의 개봉으로 주춤했지만, 앞서 올 상반기 흥행 1위 후보인 <어벤져스>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개봉 7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본 기자가 직접 보고 난 느낌은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클래식'이랄까, <건축학개론>이 '한국 멜로의 클래식'이었듯이 말이다. 물론 '코미디'기 때문에 <건축학개론>보다 더 웃기고 유쾌하다. 극장 안에 '하하하' 웃는 소리는 들려도 '엉엉' 우는 소리는 안 들린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정인이란 캐릭터다. 임수정은 한국 로맨틱 코미디 역사상 가장 독설에 강한 여주인공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독설이 다가 아니다. 그녀는 못하는 게 없다. 평범한 주부에서 일약 라디오 스타가 된다. 평소 독서와 예술을 가까이하며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 중 하나인 설거지를 비롯해 요리면 요리, 소신이면 소신, 내세울 게 참 많은 여자다.

 정인(오른쪽, 임수정 분)은 남편 두현(이선균 분)을 일상속에서도 유혹한다. 두현은 아마도 유혹받는게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정인도 느껴보라고 성기를 부른걸까

정인(오른쪽, 임수정 분)은 남편 두현(이선균 분)을 일상속에서도 유혹한다. 두현은 아마도 유혹받는게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정인도 느껴보라고 성기를 부른걸까 ⓒ 수필름, 영화사 집


그렇다. 정인은 여자들의 '수퍼히어로'다. 여자들의 진짜 현재며 미래다. 그녀는 지금까지 세상이 만들어왔던, 보이는 아름다움을 위해 많은 걸 참아온 '가짜 여자'와 정반대다. 이 영화가 나온 건 시대의 흐름이다. 이제 여자들은 내 남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정인을 통해 진짜 내 모습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막혀있던 남녀 소통의 벽을 허물 수 있다. 남녀커플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서로 마음에 있고 말하지 못한 얘기들을 나누며 더 가까워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 <미술관 옆 동물원>(이정향 감독, 1998)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 역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이다.

 정인은 남편 두현의 회사내 입지를 위해 부상당했음에도 회식 자리에 나타난다. 그것도 아주 아름답게 꾸민채로. 이런 여자의 마음을 남자들은 몰라주면 안된다

정인은 남편 두현의 회사내 입지를 위해 부상당했음에도 회식 자리에 나타난다. 그것도 아주 아름답게 꾸민채로. 이런 여자의 마음을 남자들은 몰라주면 안된다 ⓒ 수필름, 영화사 집

사랑은 질투다. 다정한 커플을 볼 때 씁쓸함을 느낀다면 그건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 사람이 나에게 그런 다정함을 보여주지 못할 때 우리는 섭섭함을 느낀다. 그런 느낌이 질투다. 사랑하기에 질투도 한다.

두현(이선균 분)은 질투를 느껴야 했다. 잃어버린 정인에 대한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 그래야 했다. 그가 택한 방법(다른 남자에게 아내를 유혹하게 하는 것)은 언뜻 무리수처럼 느껴지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할 정도로 두현은 절박했다. 정인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은 그런 극단적인 묘수를 쓰게 했다.

사실 이 영화가 가진 약점이 그것이다. 아내가 지겨워졌다고 해서 이혼하려는 두현의 '철없음'과, 이혼을 위해 낯선 남자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하는 두현의 '지질함'. 하지만 두현의 장점은 그런 영화의 약점을 덮어버릴 만큼 확실히 존재한다.

두현이 정인에게 성기를 만나게 한 이유도 그동안 정인이 사랑이 식어버린 자신과 살며 느꼈을 외로움, 공허함, 불안함을 이제 자신이 느껴보려는 것이다. 소문난 카사노바 성기(류승룡 분)에게 정인을 유혹하게 해놓고, 두 사람의 뒤를 밟는 건 정인이 걱정돼서다. 또한, 진정 철없고 지질하다면 그는 변화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특유의 표정은 그대로지만 정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자신 안에 있던 사랑을 되찾아서다. 그렇게 그는 극단적인 묘수를 감수함으로써 마침내 되찾고자 한 사랑을 되찾은 것이다. 그리 보면 두현은 참 스마트한 사람이다. 어쩌면 성기보다 더 매력적인 남자다. 게다가 때때로 귀엽기까지 하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정인과 만나게 된 성기(류승룡 분)다. 여성관객들의 성기에 대한 호응도가 높다. 여성관객들이 성기를 좋아하는 건 그가 정인으로 하여금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성기는 정인에게 그렇게 말한다.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을 거니까, 나는 오히려 편하게 당신과 가까워질 수 있다." 이는 언뜻 들으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카사노바인 성기에게는 친숙한 대사일 것이다. '밀당'의 원칙에 부합되는 말이니까. 

물론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과장되어 있다. 아니, 우리가 그들을 과장되게 본다. 현실엔 정인처럼 훈녀같은 훈녀도, 두현같은 사랑스러운 지질남도, 성기같은 로맨틱한 카사노바도 모두 보통의 사람들로 보일 뿐이다.

 성기(왼쪽, 류승룡 분)는 이 시대의 외로운 싱글남을 코믹하게 그린 캐릭터다. 정인(오른쪽)과 그가 통할수 있었던 이유는 두 사람이 '외로움'이란 감정으로 공감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기(왼쪽, 류승룡 분)는 이 시대의 외로운 싱글남을 코믹하게 그린 캐릭터다. 정인(오른쪽)과 그가 통할수 있었던 이유는 두 사람이 '외로움'이란 감정으로 공감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 수필름, 영화사 집


지금껏 봐온 한국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 중 가장 '언변이 좋은' 정인.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여자의 마음을 몰라 지질하다는 소릴 들을 수밖에 없는 두현. 그리고 자신을  카사노바로 칭하며 뭇 여성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성기. 이 모든 캐릭터의 개성만으로도 충분히 웃기며 그들의 표정 하나, 대사 하나가 묘한 이 영화의 설정과 맞물려 있어 박장대소를 하게 만든다.

즉, 이 영화는 그런 얘기다. "당신의 배우자가 세상에 당신보다 더 좋은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당신과 사귀고, 당신과 결혼하는 게 아니다". 바로 당신을 사랑해서, 사랑하고 있어서 당신과 사귀고 결혼하는 것이라는 얘기. 누구나 아는 평범한 진리지만, 이를 잊고 살기가 참 쉽다.  

영화에서 결혼 권태기에 접어든 두현과 정인은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누가 봐도 부럽게 연애를 하지 않았던가? 그땐 분명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게 생겼다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본 기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두현과 정인의 그 설레는 느낌, 별것 아닌 대화지만 서로의 마음에 깊숙이 박히는 그런 '첨언밀어'와도 같은 말이, 그 뉘앙스가, 이미 말해주고 있다. 사랑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고. 다만, 세월에 가려 잠시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정인과 성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것인가

정인과 성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것인가 ⓒ 수필름, 영화사 집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사랑으로 뒤덮여 있는 느낌이다. 마치 <러브 액츄얼리>(리처드 커티스 감독, 2003)처럼 참으로 사랑스러운 영화이기에 관객들, 특히 여성관객들의 반응이 좋은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본 기자는 이 영화에서 슬픔도 느껴졌다.

본 기자가 이렇게 사랑스럽고 웃기는 '로코물(로맨틱 코미디물의 준말)'을 슬프다고 느꼈던 건 아무래도, 그런 게 사랑의 본질에 가까운 감정이기도 해서이지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달콤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외롭고 슬프기도 한 것이다. 세상에 기쁘기만 한 사랑은 없다. 사랑하는 사이끼리는 서로의 기쁨이든 슬픔이든 솔직한 감정을 공감하면 되는 것이며,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닫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날 외롭고 슬프게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기에, 그런 사랑이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를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다.

<어벤져스>를 함께봐 준 여자친구 혹은 아내를 위해 기꺼이 남성 관객들은 이 영화로 보답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내 여자친구 혹은 내 아내를 외롭지 않게,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한 여자를 외롭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사랑하는 여자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이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중대한 일인가?

그렇다, 그 정도로 중대한 일이다. 한 사람은 '소우주'라고 했다. 여자도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며,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것은 '소우주', 곧 온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에, 이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흥행은 충분히 이유 있다. 여성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 행복해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 영화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쉽다. 모름지기 재미란, '쉬움'에서 온다는 원칙을 이 영화가 새삼 되새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각본과 편집, 연출은 상당히 영리하고 기민하다. 조금이라도 지루해지거나 어색해지려 하면 바로바로 장면이나 분위기가 바뀐다. 워낙 풍성한 대사로 채워져 있는 영화라 그 대사가 비록 잘 안 들릴 때가 있지만, 스토리가 심플하고 캐릭터가 확실하기에 무난하게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듣는 들국화의 명곡 <매일 그대와>도 반갑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덧붙이면, 이 영화의 공동 각본가 허성혜는 과거 KBS 드라마스페셜 <헤어쇼>와 <큐피드 팩토리>로 시청자와 평단의 지지를 얻었던 드라마작가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그녀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상영시간 121분. 15세 관람가. 5월 17일 개봉.
내 아내의 모든 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